유럽 “꺼진 원자력 다시 보자”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8.04.14 15: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가 오르자 체르노빌 사고 이후의 ‘발전소 폐쇄’ 입장 재검토…지구 온난화 해결책으로 거론

 

19 86년 4월에 발생한 옛 소련(현재 우크라이나 지역) 체르노빌의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 인해 이후 계획된 유럽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모두 중지되었다. 핵물질이 초래할지도 모를 무서움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은 점점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길로 들어섰다. 스웨덴은 1999년 민간 원자력발전소 1기를 폐쇄했고 스위스는 2002년 국민투표를 통해 원자력발전소 폐쇄를 결정했다. 유럽 내에서 산업이 가장 발달한 독일 역시 1998년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가 합의해 2001년 독일 의회가 ‘원자력발전소 전부 폐지’를 규정한 법안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재검토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석유나 천연가스의 가격이 너무 올랐다. 내려갈 기미도 보이지 않고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이 자원 민족주의적인 경향까지 띠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의 관리를 강화해 유럽 내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점점 확대하는 중이다. 자원이 열악한 국가일수록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원자력 발전이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EU의 정상들은 지난 3월1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기후 변화 패키지’를 내년 초에 발의하기로 합의했다. 오는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1990년의 수준과 비교해 20%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수년간 지구적 어젠더로 논의된 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발전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으로 눈을 돌려야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 진행될 경우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통제가 가능한 원자력을 이용하자는 이야기다. 국제 환경운동 단체인 ‘그린피스’의 창립 멤버인 패트릭 무어는 수년 전부터 “미국에서 가동 중인 1백3기의 원자력발전소는 1억대 이상의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Co2를 삭감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력의 측면에서 보아도 원자력 발전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성장세가 주춤했음에도 착실히 영역을 넓혀가는 추세다. 2006년 발간된 <월드 에너지 아웃룩>의 자료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31개국에서 4백29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총 발전 용량은 3억9천만kw 정도로 전체 발전 용량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1백3기로 가장 많으며 프랑스(59기), 일본(55기), 러시아(27기)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EU의 환경 정책과 규제가 에너지 위기감 더 키워

원자력발전소를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은 부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원자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 수차례의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캘리포니아 대정전(2000년)과 뉴욕 주의 대정전(2003년) 등이 발생하면서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은 미국 산업의 화두로 떠올랐다. 전력의 수요는 증가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서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계속 제기되었다.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미국 정부가 택한 것은 원자력 발전이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2005년 8월에 에너지법을 전면 개정해 원자력 산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복잡한 규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는 두 가지 장벽을 제거했다.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에 착수하고 난 뒤 운전 개시에 이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며 기업의 투자 위험은 그만큼 증가한다. 미국 정부는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운전을 일괄적으로 허가하도록 에너지법을 개정하면서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했다. 이전에는 발전소의 건설과 운전은 따로 허가를 받아야 했다.

에너지법 개정의 효과는 점차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7년 7월 미국과 프랑스의 합작 기업체인 유니스타 뉴클리어는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허가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신청했다. 미국에서 30년 만에 신청된 원전 건설 허가서였다.

그동안 유럽연합(EU)은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데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원자력발전소로 회귀하는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EU의 환경 정책과 규제 때문이다. 에너지 부문에 신규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유럽에서는 에너지 위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월7일자 기사에서 “EU는 향후 25년간 전력망을 확충하는 데 1.5조 파운드(우리돈 2천9백조원)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에너지 기업들이 규제 등을 이유로 투자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현재의 정책을 고수할 경우 2030년 유럽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70%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위기감은 각국의 에너지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에너지 정보 제공업체인 플래츠는 지난 3월26일 “영국 정부는 저탄소 배출 발전원을 개발하는 사업의 경우 어떤 인위적인 규제도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라고 보도했다. 동시에 현재 총 발전량의 19%를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더욱 높이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탈리아는 영국에 비해서 원자력 발전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는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방안을 국민투표를 통해 가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만성적인 전력 부족 사태가 이런 결정을 다시 검토하게 만들었다. 월드 뉴스 네트워크(WNN)의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전력 도매 가격은 1백40 유로/MWh로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비싼 이유는 하나다. 석유 및 천연가스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WNN은 “이탈리아 정부와 에넬, 안살도 같은 에너지 기업은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활발히 추진해왔지만 체르노빌 사건 이후 원자로 건설이 중지되었고, 대신 프랑스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자본 참가 형태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 국가들의 원자력 발전을 자극하고 있는 국가가 러시아라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아예 국가 전략으로 원자력 산업의 확대 구상을 발표했다. 국가 기관인 원자력청을 모체로 발족되는 국영종합원자력기업 로스아톰의 자회사가 플랜트와 핵연료를 제조해 국내외로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쉽게 말해 핵연료를 빌려주고 폐기물은 러시아가 인수해 처리하는 방식이다. 지난 1월9일 일본전기신문은 “러시아는 화석 에너지에 이어 원자력을 주요 수출 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에너지제국으로 군림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은 인근 국가들이 원자력 발전을 재검토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러시아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의존하는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자원을 앞세운 러시아의 자원 외교에 여러 번 괴롭힘을 당해왔다. 그래서 원자력마저 러시아에 의존하기 이전에 에너지의 자급률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돌리고 있고 결과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가격 인상도 주변국 원전 증설 부추겨

EU 국가 중 원자력 발전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그동안 러시아에 에너지 수급을 의존해왔다. 하지만 2002년 5월에 이미 의회에서 5기의 원자력발전소 증설이 승인되어 현재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핀란드에서 30년 만에 추진하는 원전 증설이다.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온 옛 소련 독립 국가들도 같은 이유로 원자력 발전에 힘쓰고 있다. 환경 잡지 <얼스타임즈>는 지난 1월15일자에서 벨로루시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상황을 보도했다. <얼스타임즈>는 “벨로루시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해왔는데 러시아는 지난 2년간 벨로루시 공급 천연가스의 가격을 3배 정도나 인상해버렸다”라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벨로루시 정부는 차관까지 조달해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처럼 제1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는 가운데 지난 1월 영국의 옥스퍼드리서치그룹(ORG)은 “원자력 발전으로 세계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오히려 국제 안보가 위협받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게다가 ORG는 우라늄의 채굴 및 정제 과정에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 1월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및 기후 변화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면서 원자력을 재생 에너지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아 다른 국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도 달성해야 하고 동시에 에너지 공급도 고려해야 하는 국가들이 원자력 발전을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