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프리미어리그’ UEFA컵을 사수하라
  • 한준희 (KBS 해설위원) ()
  • 승인 2008.04.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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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리그 절반 차지하며 기염…전성기 서막 열어

 

인간은 잔인하다. ‘만인에 대한 자신의 투쟁’으로도 모자라, 타인들끼리의 비교와 싸움을 붙이면서 그것을 즐긴다. 최고를 가려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분야를 불문하고 이루어지는 이러한 ‘비교논쟁’ ‘최고 논쟁’에서 특히 스포츠는 아주 좋은 안줏거리가 된다. 축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펠레와 마라도나 중 누가 역대 최고의 선수인가?’라는 질문에 매우 익숙하다. 어떤 이들은 “그 둘보다 조지 베스트가 더 대단했던 선수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나 요한 크루이프의 지지자들은 틀림없이 다르게 생각할 것이며, 이는 지단이나 호나우두의 팬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대목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 하나밖에 없다. “비교하기를 멈출 수 없다면, 그래도 최대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그것을 행하라.”

축구에서의 이러한 논쟁은 ‘개인 대 개인’에 그치지 않고 ‘팀 대 팀’, 나아가 ‘리그 대 리그’의 논쟁으로까지 확장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국내외와 온·오프 라인을 막론하고 펼쳐지는 이 ‘리그 논쟁’이 요즈음 특히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권력의 이동’이 느껴지고 있는 까닭이다.

최근의 ‘최고 리그 논쟁’은 통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이제 명백하게 세계 최고의 리그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곤 한다. 이러한 화두는 특히 프리미어리그가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 세 팀을 올려놓으며 촉발되었고, 올시즌 8강에는 100%(네팀) 진출에 성공하면서 흥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점점 더 긍정적인 쪽으로 굳어진다. 지난 시즌 한때 크게 흥분했던 잉글랜드 언론들은 차치하고라도, 올시즌에는 잉글랜드 바깥의 유명 축구인들(예를 들어 바르셀로나 단장 치키 베리히스타인)까지 “프리미어리그가 가장 강하다”라는 말로 이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프리미어리그 최강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 유럽 축구 최고의 무대에서 한 리그가 절반을 차지해버렸으니 어찌 아니 인상적일수 있으랴.

결론부터 말하면, 일단 우리가 적어도 프리미어리그 시대의 ‘서막’ 정도는 목격하고 있음이 사실로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통시적인 관점에서 어떤 리그의 시대가 명백해지는 데에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며, 그 완벽한 전성기를 위해 프리미어리그에게는 얼마간 향상을 요하는 과제들이 남아 있다는 단서들을 첨부해야만 하겠다.

‘권력의 이동’ 느껴지는 리그 논쟁

유럽 클럽 축구의 장구한 역사를 돌아볼 때,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최고의 리그’라는 것이 틀림없이 존재했다. 특히 1960년부터 시행된 유럽의 ‘리그 랭킹’을 산정하기 위한 ‘점수(coefficients)’ 제도-최근 5년간 유럽 클럽 대항전들에 참여한 클럽들의 퍼포먼스에 기반한-가 리그의 강약을 가리는 작업에 있어 꽤나 합당한 근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점수제에 의한 리그 랭킹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1960년부터 1966년까지 7년 연속 1위를 마크했으며, 이후 잉글랜드 1부 리그가 9년 연속(1967~1975), 독일 분데스리가 역시 9년 연속(1976~1984)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85년 잉글랜드는 1위 탈환에 성공하지만, 그들의 왕위가 헤이셀 참사로 말미암아 ‘1년 천하’로 마감됨과 동시에 이탈리아 세리에 A 시대가 개막한다. 1986년부터 1999년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는 모두 열세 차례나 랭킹 1위에 오르는데, 이 기간 중 이탈리아가 1위를 놓친 시기는 1990년(1위 독일) 한 해뿐이다. 그리고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연속 1위를 지켜왔던 리그는 다시 한 번 스페인이었다.

어떠한 분야이든지 간에, ‘최고’라는 어휘는 사실상 매우 정의하기가 어렵다. 어떤 이에게는 잔잔한 선율이 최고의 음악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강렬한 음악이 최고의 음악이 된다. 축구 리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리그는 역동적이고 장쾌하지만, 어떤 리그는 세밀한 재간이 뛰어나고,  다른 리그는 전술적 측면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나의 적성과 취향에 맞는 ‘최고’의 리그가 어딘가에 존재할지언정 그것이 결코 모두의 최고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전통적 축구 스타일이나 단순한 인기도만을 가지고 ‘최고’를 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아직까지 ‘점수제에 근거한 UEFA 랭킹’보다 더 합리적인 리그 비교의 기준을 알지 못한다. 필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리그들의 우열을 굳이 가리고 싶다면, 무엇보다 UEFA 리그 랭킹을 보라. 그 랭킹에서 1위인 리그를 1위로 인정하는 것이 그래도 가장 합리적인 길이다.”

리그 비교 기준은 UEFA 랭킹

UEFA 리그 랭킹이 충분히 의미가 있는 까닭을 조금 더 설명하면, 우선 그 랭킹을 결정하는 점수가 ‘경기력에 기반한 대외 경쟁력(competitiveness)’을 토대로 집계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리그가 현재 가장 자금이 풍부한 부자 리그라고 하자. 하지만 다른 리그 클럽들과의 대결에서 실제로 승리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 돈 많은 리그를 무조건 최고라고 칭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경기력의 측면이 간과될 수는 없다. UEFA 리그 랭킹이 매우 유의미한 또 다른 이유는, 이 랭킹을 결정하는 점수가 최상위 클럽들의 잔치인 챔피언스 리그에 국한되지 않고 UEFA컵 참가 클럽들의 퍼포먼스 또한 똑같이 고려한다는 점이다. UEFA컵이 왜 중요한가? 이 대회는 각 리그 중·상위권 클럽들의 총체적 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무대이며, 이들 클럽들의 수준이야말로 ‘리그의 전체 경쟁력’을 논하는 데 매우 긴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리그 역시 자체로 강한 리그다. 이는 리그 최상위권 클럽들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남을 의미한다. 실제로 최근 다섯 시즌 동안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잉글랜드 클럽을 만나 몹시 고전해왔다(최종 우승팀이 누구냐는 문제와는 별개로). 올시즌 현재까지 5년간의 챔피언스 리그 ‘맞대결’에서 잉글랜드는 스페인에 13승 10무 8패, 이탈리아에도 13승 5무 6패로 확연히 앞섰다. 사실상 이것은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잉글랜드만큼의 안정된 ‘빅 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날, 리버풀)’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과도 맞물려 있다. 최상위 클럽들의 전력이 시즌에 따라 너무 들쭉날쭉하다면 이것 역시도 문제다.

하지만 UEFA컵 또한 챔피언스리그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닌다. 리그를 끌어가는 몇몇 강자들의 존재가 강한 리그를 형성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강한 리그가 형성되지는 않으며 ‘강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위권·하위권 클럽들의 두께’가 리그의 총체적 강약을 논하기 위한 또 다른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함이 자연스럽다. 이는 ‘좋은 팀’이란 ‘슈퍼 플레이어’ 한두 명의 존재만으로 결정된다기보다 ‘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평균적 수준과 선수층’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다는 상식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UEFA컵이 그 리그의 두께를 시험하는 무대다.

이러한 의미들이 담긴 UEFA의 점수와 랭킹이 리그 간 비교를 위한 가장 그럴듯한 척도로서 받아들여진다면,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두드러진 모습과 더불어 올시즌만의 랭킹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프리미어리그가 전성기의 서막을 열고 있다는 말이 이해될 만하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가 이 시대를 진정한 자신들의 시대로서 축구사에 기록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다. 리버풀을 필두로 노팅엄 포리스트, 토트넘 등이 유럽의 각종 대회를 휩쓸고 다니던 잉글랜드의 최전성기는 한두 시즌만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는(몇년 전에 비해 월등히 좋아지고는 있지만) UEFA컵에서의 활약상을 계속 향상시켜나갈 필요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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