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구린 ‘학력 세탁’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 김지혜 기자 karam1117@sisapress.com ()
  • 승인 2008.04.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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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애용’하는 특수대학원의 실상

 
양정례 친박연대 비례대표 당선인에 관한 의혹이 쏟아져나오면서 유명 사립대에서 운영하는 특수대학원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양당선인은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과정을 이수해 석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자신의 학력란에 기재했다. 지방의 한 대학 관광경영학과 야간 과정을 졸업한 그녀가 명문대 특수대학원을 다닌 속사정이야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녀가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으로 의원 배지를 달게 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회의원직을 수행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검증받기 위해서는 모든 신상정보가 중요한 자료로 다루어지고, 그 가운데 학력은 자격 여부를 가리는 핵심 기준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가 “양씨가 하버드 대학이나 서울대 출신이었으면 문제를 삼겠느냐”라고 했지만 어느 대학 출신이든 당당하게 입학하고 졸업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도덕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지탄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특수대학원은 문제의 학력을 부풀리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다. 웬만큼 지위에 오르거나 돈을 번 사람들이라면 학력 세탁을 위해 특수대학원을 찾는다. 양씨도 좀더 나은 학력을 얻기 위해 연세대 법무대학원을 다녔을 것이다. 특히 이용호 게이트나 진승현 게이트 등의 대형 스캔들이 터졌을 때 그들이 특수대학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특수대학원 자체가 학문과는 무관한 사교 클럽 같은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학위 논문도 한 학기 수업 더 들으면 해결”

특수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입학, 수업 강도, 논문 심사 과정 등에서 우리가 머릿속에 흔히 떠올리는 일반대학원의 것보다 훨씬 쉽고 수월하다. 따라서 이른바 ‘가방끈이 짧은’ 정치인들이 특수대학원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필수적인 공인 영어 시험, 까다로운 서류, 지식을 묻는 구술 시험을 통과해 일반대학원 행정학과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석사학위를 받으려면 엄격한 논문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경력을 바탕으로 서류와 면접을 통해 특수대학원에 입학하는 방법이다. 출석을 잘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양정례씨와 같이 회사법 수업을 들었다는 박주용(가명)씨도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대학원보다 쉽게 학위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양정례씨의 경우에는 손쉬운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그녀가 평균 3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인다는 ‘경영 법무’ 과정에 특별한 경력도 없이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의문이다. 한 대학교의 언론 분야 특수대학원 입시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 경위를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입학 준비를 특별히 할 필요는 없다. 면접을 보지만 길어야 10분 정도다. 이 시간에 수험생의 실력을 어떻게 다 알겠는가. 경력이나 사회적위치, 경제력 등이 사실상 많이 고려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1주일에 한두 번 있는 수업에 꾸준히 참석하면 된다. 논문을 쓰는 것이 부담되면 ‘수업 대체 방식’을 이용해서 한 학기를 더 다니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학벌이 변변찮은 정치인들의 경우 최종 학력란에 명문대 석사학위 소지자로 자신을 소개한다면 거의 대부분 특수대학원을 졸업해 ‘학벌 세탁’을 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다 인적 네트워크까지 쌓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사교 클럽 같은 느낌을 주는 ‘최고위 ○○과정’보다 수준도 높아 보이고 모양새도 더 낫게 받아들여진다. 18대 총선에서 주요 정당 비례대표들의 학력을 보면 성균관대 임상약학대학원, 고려대 법무대학원 법학석사,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재학,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정책학석사 등 특수대학원의 이름이 즐비하다. 이는 정치인들이 특수대학원을 얼마나 선호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물론 특수대학원은 대학의 재정적 필요와도 부합한다. 양정례씨가 나온 연세대 법무대학원은 정원 1백26명에 2008학년도 1학기 등록금이 5백15만2천원이었다. 매년 재정 수입이 대략 13억원에 이른다. 대학측으로서는 무시하지 못할 액수다. 일반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는 홍 아무개씨는 “유사한 전공이 있음에도 특수대학원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을 보면 대학이 학문적 권위와 명성을 이용해서 짭짤한 학위 장사를 하는 것 같다. 이번에 공천받은 사람들 중에 우리 대학원에서 쫓겨나서 특수대학원에 등록한 이도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인적 네트워크 넓히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보통 사람들은 명문대 특수대학원을 나왔다 해도 일반대학원과 별반 다르지 않게 받아들인다. 경우에 따라 특수대학원의 성격을 놓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테면 법무대학원의 경우 법학의 심화 과정을 다루는 대학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특수대학원 학위를 얻고 의도적으로 일반대학원 졸업생인 것처럼 기재해도 양당선인의 경우처럼 ‘기재상의 오류’ ‘실무자의 실수’ ‘둘 사이에 그런 차이가 있는지 잘 몰랐다’ 같은 이유를 대며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다. 명문대에 개설된 행정학, 공학, 언론홍보학, 경제학, 생명환경과학, 경영정보, 언론, 컴퓨터정보통신대학원 같은 특수대학원은 이름만으로는 일반대학원과 별로 차이가 없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각 대학의 특수대학원에서는 ‘인적 네트워크 확장과 비교적 수월한 학위 취득’을 강조하며 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원우회나 동창회로 끈끈하게 묶여 있어 ‘동기들 간 술자리와 교류가 많다’는 점과 ‘야간 수업인 데다 힘들지 않아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내세운다. 노골적으로 “어차피 일반대학원과는 목표 자체가 다르다. 여기는 직장 경력을 가진 이들이 쉽게 석사학위를 따러 많이 오는 곳이다”라고 선전하는 대학도 있다. 한 대학의 특수대학원 관계자는 “솔직히 일반대학원과는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은 인맥을 넓히고 석사학위를 수월하게 따기 위한 곳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주경야독’의 향학열에 불타 특수대학원을 다니는 직장인들도 많다. 문제는 본연의 학문 배양보다 학력을 부풀리거나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원 자체가 오용되고 있는 현실에 있다. 쉽게 학위를 따서 전문가인 양 행동하거나 일반대학원의 학위처럼 눈속임 하려는 정치인들이 몰려든다면 이들에게서 면학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연세대 법무대학원을 졸업한 한 아무개씨는 “세간에서 말하듯 ‘학위 찍어내는 공장’처럼 쉽게 석사학위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양정례씨 때문에 마치 수준 미달에 석사학위를 대강 딴 사람들의 집단인 것처럼 비쳐졌다. 풀타임으로 등록하는 일반대학원보다는 덜하겠지만 엄격한 출·결 관리를 하고 나름대로 정해진 심사 절차를 거쳐 졸업했다”라고 강조했다. 성균관대 입학관리팀 역시 “주간에 수업을 듣기 힘들거나 학문적 욕구를 가진 직장인들의 수요가 존재하고, 상당한 경쟁이 있어서 입학 문턱도 높다. 특수대학원을 단지 대학들의 재정적 필요의 산물이거나 학위 공장으로 매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상 재정난을 걱정해야 하는 대학측과 학력을 부풀려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들의 이해가 맞물려 특수대학원의 부정적인 단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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