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까운 수사에 ‘특별’ 없는 특검 살릴까, 죽일까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4.2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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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특검 제도의 현실을 말한다’ 역대 특별검사 6명 연쇄 인터뷰 “반드시 필요한 제도” “괜한 낭비” 의견 갈려

 
‘특별하다’는 말은 ‘일반 혹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는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특별검사는 일반 검사의 대칭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국민으로 하여금 특별한 수사를 통해 뭔가 특별한 결과를 도출해낼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측면도 뒤따른다.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조준웅 특검팀이 4월17일 약 10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전·현직 임원 10명에게 조세 포탈 및 횡령 배임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특별한 것은 없다”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분위기다. 다시 한 번 특검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땅에 특검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째. 그동안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특검팀이 구성되었다. 특검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무용론이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다.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특검 제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이 해답을 역대 특검들에게 직접 구하기로 했다. 이번 쌍끌이 특검(정호영·조준웅 특검)을 제외한 여섯 명의 역대 특검들은 위기에 놓인 한국의 특검 제도에 대해서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할까.
미국에서는 특검의 명칭을 표기할 때 ‘special’을 쓰기도 하지만, ‘independent’를 쓰기도 한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만큼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특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인 셈이다. 지난 2003년 1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비리’ 사건을 수사했던 김진흥 전 특검은 “권력으로부터의 외압이나 간섭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왜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는 실패한 특검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김 전 특검은 “특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특검은 수사 대상만 특별할 뿐, 수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특별한 것은 그 무엇 하나 없다. 또한 특검의 필요성은 특정 정파의 국회의원이 느껴서는 안 되고 국민이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특검이 아니라 검찰이다”

 

역대 특검들에게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특검 당시나 수사가 끝난 지금이나 말을 굉장히 아낀다는 점이다. 기자를 만나는 것부터도 꺼린다. 만남을 청하면 “특검에 대한 인터뷰는 안 한다”라고 아예 처음부터 못을 박기 일쑤다.
‘옷로비 사건’을 담당했던 최병모 전 특검이나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을 담당했던 강원일 전 특검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대한민국 ‘1호 특검’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기자는 지난 10년간 그들의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빈번하게 넘나들었지만 막상 특검에 대한 소회를 취재수첩에 담는 성과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른 대화가 잘 전개되다가도 특검 얘기만 꺼낼라치면 손사래를 친다.
결론적으로 특검 제도에 대한 두 전직 특검의 인식은 사뭇 비판적이다. “검찰이 잘하면 특검이 왜 필요한가. 문제는 특검이 아니라 검찰이다”라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외양상 같다. 하지만 그 뉘앙스에는 다소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최 전 특검은 특검 자체의 불필요성보다는 검찰이나 특검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쪽에 가깝다. 강 전 특검은 너무 남용되는 듯한 특검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표출한다.
최 전 특검은 언젠가 “법복을 벗은 후 조용히 지내기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까지 내려갔는데, 원하지도 않았던 특검을 덜컥 맡고 나서 졸지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동시에 내 인생은 멍들어버렸다”라고 얘기하며 웃은 적이 있다. 농담조였지만 진실이 담겨 있는 듯했다. 이번에도 그는 “나는 원래부터 특검이 필요없다는 것을 주장해온 사람이다”라는 단답형으로 일관한다.
얼마 전 기자와 나눈 대화에서도 그는 “특검이란, 말 그대로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 마지막 보루로 사용해야 하는 특단의 조치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마저도 정치권에서 불공정 수사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특검을 도입하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지적을 한 바 있다. 물론 삼성 특검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일부 문제 있지만 장점도 많다”

 

강 전 특검 역시 “이제 특검 얘기는 제발 그만 좀 하자”라며 즉답을 피한다. “나보다 훨씬 잘한 후배들이 많지 않느냐”라는 말로 대신한다. 하지만 그는 몇 해 전 특검 제도에 대한 소신을 제법 자세하게 기자에게 피력한 바 있다. 당시 강 전 특검은 “검찰이라는 조직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특검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1999년 특별검사를 맡았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내 소신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민은 마치 검찰이 할 수 없는 것을 특검에서는 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문제는 검찰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안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라고 후배 검사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선배’들에 비해 ‘3호 특검’인 차정일 전 특검과 ‘5호 특검’인 김진흥 전 특검은 특검 제도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 필요성은 인정하는 입장이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사건’을 수사해 가장 성과가 좋았던 특검으로 평가받고 있는 차 전 특검은 “이른바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해서는 제도적 장치로서 특검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검찰의 건전한 긴장을 촉구하는 측면에서도 그 존재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다. 김 전 특검 또한 “검찰에 대해서나 혹은 일반 국민에 대해서나 충격적이고 상징적인 효과를 위해 특검 제도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2003년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송두환 전 특검은 현재 헌법재판관 신분이라는 이유로 인터뷰를 완곡히 고사했다. 2005년 ‘유전 게이트 사건’의 정대훈 전 특검 또한 “이미 내가 할 말은 국회에 제출한 수사 보고서에서 다 했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두 전직 특검이 예전 인터뷰에서 피력한 발언 내용과 주변 인사들의 전언 그리고 보고서에서 주장한 내용 등을 통해 그 입장을 파악할 수 있다. 두 전직 특검은 특검 제도에 대한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제도 보완에 대한 필요성은 제기한다.
송 전 특검은 자신의 경험이 ‘후배’에게 도움이 되도록 살피는 전직 특검 중의 한 명이다. 한 전직 특검은 “당시 급하게 특검으로 임명되어서 사전 지식도 없이 무척 곤란을 겪었는데, 그나마 ‘선배’인 송 전 특검과 차 전 특검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삼아 여러 가지 자세한 조언을 해줘서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라고 전했다.
정 전 특검은 수사 당시 ‘특검 무용론’이 확산되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의 능력을 더 발휘하게 만드는 것도 특검의 존재 의의 중 하나일 수 있다. 또한 일반 검사는 할 수 없는 청와대 인사들을 상대로 한 강도 높은 직접 수사 역시 특검에서 가능한 일이다”라는 말로 특검 수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준비 기간, 수사 시간 짧아 고충 많았다”

 

현 특검 제도의 문제점이나 아쉬운 점에 대해서 토로하는 목소리는 상당히 많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100일에 가까운 수사 기간의 어려움보다 오히려 특검에 임명되고 팀을 구성하는 약 열흘 정도의 준비 기간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김 전 특검은 “미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미국의 경우는 준비 기간만 6개월 이상이 걸린다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각은 고작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그 안에 팀을 구성해야 하고 사무실로 사용할 건물 계약까지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생전 대해보지 못한 건물주 할머니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건물 임대 계약을 하는 데 엄청 애를 먹었다”라고 토로했다.
정 전 특검도 “시작하기도 전부터 파김치가 된다. 하다못해 사무실 임대도 건물주가 손사래를 치는 게 다반사였다”라고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차 전 특검은 “특검으로 임명된 직후 특검보를 포함한 필요한 수사 요원을 원활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무부와 변호사협회 등에 검사와 변호사 및 수사관들의 풍부한 데이터 자료와 신상명세서 등을 확보해두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실질적으로 수사를 일선에서 지휘하는 특검보의 경우 최적의 대상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차피 특검이 함께 일할 사람으로 예정한 것이라면 굳이 2배수를 선정해 요청하는 절차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본다”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한정된 수사 기한에 대한 개선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김 전 특검은 “수많은 계좌들을 일일이 추적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상당하다. 그런데 시한이 정해져 있으면 수사관들이 자꾸 거기에 쫓기게 되고 다급해진 상황에서 일부 무리수를 두거나 선별적으로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수사 시한을 언제까지로 못 박는 규정은 제대로 된 수사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정 전 특검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수사 기한이 지나치게 짧은 관계로 조사 대상자들이 이때만 잘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대비할 수 있다. 특검팀이 철저하게 조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좀더 많이 줘야 한다. 미국의 경우 수사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수사 기간은 특검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요지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부패수사처 꼭 필요한가”

송 전 특검 역시 2003년 4월 당시 인터뷰에서 “수사 기간 연장 요구가 청와대로부터 거부당한 것에 아쉬움이 크다. 연장이 되었더라면 더 다듬고 숙고하고 좀더 설득력 있게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의견을 나타낸 바 있다.
최근 특검의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상설 특검제 도입, 검찰의 특별본부 설치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일단 최 전 특검이나 강 전 특검은 현재의 검찰 조직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다만 특본 설치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한다. 최 전 특검은 “특검 때마다 검찰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는다. 국가 법 집행기관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강 전 특검 또한 “굳이 특검을 구성하지 않더라도 검찰의 현 조직이나 내부 능력으로도 충분히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문제이며, 다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특검 제도는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이 일견 수사상에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계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라고 평가했다. 검찰 수사가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차 전 특검은 “평균 1년에 한 번꼴로 있는 특검을 위해 상설 특검제라는 조직을 항상 갖추고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수처 역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이지만, 검찰이란 조직이 있는데 굳이 별도로 할 필요가 있겠나. 검찰 특본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특검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다”라고 덧붙였다.
김 전 특검은 “원칙적으로 공수처의 설치에는 찬성한다. 특검이 대통령과 검찰 수뇌부 등 권력형 비리에는 메스를 들이댈 수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예외로 비켜갈 수도 있다. 그런 단점을 공수처가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또 공수처가 설치되면 특검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삼성 특검, 본질인 떡값 로비는 뒷전”

삼성 특검에 대해서도 김 전 특검은 “삼성 특검 수사 대상의 본질은 어떻게 보면 ‘떡값 로비’에 해당되는 부분인데, 본질은 뒷전으로 제쳐두고 검찰 수사 대상 부분에만 집중한 감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 전 특검은 “삼성 김앤장 등의 불법성에 대해 어느 하나 밝혀낸 것이 없지 않나”라는 말로 평가 절하하는 분위기다.
그는 “삼성 특검은 수사 의견서에 분명하게 미진한 부분을 밝히고 검찰로 넘겨야 한다. 검찰도 지난번처럼 다시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미진한 부분을 수사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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