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학수’ 누가 될까
  • 심정택 (자유기고가) ()
  • 승인 2008.04.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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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택 삼성SDI 사장 ‘1순위’로 거론…“이회장 퇴진은 윤종용 부회장 등 원로 그룹 압박용”

 
이건희 삼성 회장의 퇴임에 따라 이른바 이학수 라인으로 불리는 계열사 사장단들의 대폭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들 사장단이 그룹에 남아 있고, 계보의 수장인 이학수 부회장만 퇴진하게 되면 이회장 퇴진이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의 사퇴로 향후 전략기획실 직원 대다수가 물갈이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회장의 사퇴까지 불러온 책임을 물어 일부를 제외하고는 각 계열사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이후 전략기획실 대외협력 부문 하부 조직의 구성원들은 이미 대부분 각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다.
과거 전략기획실의 임원들은 상무보 진급 후 1년 만에 상무로 진급했다. 계열사 상무보는 ‘보’를 떼는 데 통상 3년은 소요되었다. 특히 전략기획실에 근무하다 계열사로 옮기는 경우에는 승진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번에는 문책성 인사이기 때문에 수평 이동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전략기획실이 없어짐에 따라 그룹보다는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더 불편해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비서실이 없어진 뒤 정치권의 요구에 의해 구조조정본부가 생겼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삼성은 전략기획실 해체 뒤에 이러한 외부 요청에 의해 그룹의 중심과 대외협력의 접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이 생길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렇더라도 현 전략기획실의 임원 중 상당수는 앞으로 새로운 조직이 생기더라도 돌아오기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순택 사장, 이병철 회장 인맥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꼽혀

전략기획실 폐지와 아울러 이학수 부회장을 대신할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룹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 1순위로 김순택 삼성SDI 사장이 거론된다. 김사장이 거명되는 것은 회장이 공식적으로 물러난 상태에서 그룹 경영을 실무 차원에서 총괄할 그룹 내 인재가 많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가 특검 수사에서 나타난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당장 명의를 빌려준 전직 삼성 임원 출신들을 만나 차명계좌를 이회장 실명으로 전환하도록 설득하는 문제를 포함해 선대 이병철 회장의 인맥을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김사장이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힌다.
김사장은 경북고와 경북대를 나왔으며, 대내외적으로 솔직 담백한 성격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비서실 비서팀장 출신으로 이건희 회장의 의중을 잘 읽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 1995년 삼성전자가 미국의 컴퓨터 회사 AST를 잘못 인수한 데 따른 책임을 지고 삼성전자 김광호 부회장과 함께 비서실 상무에서 물러나 미국 현지로 부임했다. 이회장은 이후 김사장을 삼성SDI 사장에 임명한 후 최근 수년간 삼성SDI의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자리를 지속적으로 맡겨 신임이 두터움을 과시하고 있다. 김사장은 한때 이학수 부회장보다 나은 위치에 있기도 했다. 김사장이 이학수 부회장의 역할을 대신하려면 전략기획실과 같은 조직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사장의 역할은 당분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포스트 이학수 부회장 역할을 할 인물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해외 경영에 나서는 이재용 전무의 일정한 성과 도출, 이에 따른 자연스런 금의환향과 후계 구도의 완성이다. 후계 구도의 실무 총괄을 맡았던 이학수 부회장은 이회장과 함께 사퇴함으로써 당분간 운신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내등기이사 많게는 3명 교체 예상…후임 인선에 관심

이번 쇄신안에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후계 구도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회장 자신까지 퇴진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어차피 이회장이 그동안 이학수 부회장을 앞세운 사실상의 대리 경영을 해왔고 그동안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으며 보유 지분을 내놓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해석이 있는 반면에 그룹 경영 컨트롤타워 자체를 공백 상태로 만들어놓고 ‘본인까지 퇴진했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의 시각이 양립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너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회장이 그룹의 후계자 시절부터 숱하게 많은 위기를 겪으면서 체득한 동물적인 육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 쇄신안 자체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파격적이었던 것은 특검 수사의 부실 논란을 잠재우는 측면도 있지만 버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쥘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이회장 자신이 절절하게 느낀 결과라고 볼 만하다.
이를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을 대외직 그룹 회장으로 지명한 것과 연계해 설명하는 전직 임원도 있다. 한 삼성 임원 출신 인사는 “삼성전자를 실제로 키운 윤종용 부회장은 오너인 이회장 입장에서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경계선을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인물이다. 회장이 부재 중인 경영 공백 상태에서 윤부회장을 중심으로 경영권이 집중되면 그룹의 권력 축이 한쪽으로 몰리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쇄신안에서 “윤부회장을 견제하고 이재용 전무의 활동 범위를 확보해주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이회장은 자신이 물러나야만 그룹 고위층이 반발 없이 물러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사내 등기이사는 이건희 회장, 윤종용 부회장, 이학수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최도석 사장 등 5명이다. 이번 쇄신안에 따라 많게는 3명의 등기이사가 바뀌게 되어 후임자가 누가 될지 관심거리다.
한 그룹 전략기획실의 한 임원은 최근의 삼성 사태에 대해 “착잡하다. 이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너나 전문경영인들의 사퇴도 좋은 소리를 들으면서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서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이회장의 사퇴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이학수·김인주 두 사람이 참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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