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주는 봉급 ‘촌지’ 아이가 볼모 “안 주고는 못 배겨”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4.28 12: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부 교사들, 때만 되면 전화하고 트집 잡고… 액수 늘고 수법 점차 교묘해져

 
교육 현장에서 촌지의 망령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촌지의 규모나 주고받는 행태는 날로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양극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촌지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구박을 당하던 초등학교 학생이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심리 치료를 받다가 학교를 옮긴 사례도 있다. “그 담임 선생을 교사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민선화씨(38·가명)는 자신의 딸이 지난 2년 동안 학교에서 겪은 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담임 교사에게 촌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면박을 받았다는 것이 민씨의 주장이다. 이 모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2년 전 어느날 서울성동구에 살았던 민씨는 담임 교사로부터 급한 호출을 받았다. 민씨는 단순히 아이 문제에 대한 상담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담임 교사가 ‘답을 맞힌 문제는 옆 친구 답안지를 베낀 것 같고, 틀린 문제는 커닝을 하지 못했나 보다’라며 아이의 시험답안지를 보여주었다.
설마 하며 답안지를 보았지만 점수가 별로 좋지 않아 아이가 커닝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전화나 가정통신문을 통해 충분히 전할 수 있는 문제를 꼬투리를 잡아가며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민씨는 그때까지도 담임 교사가 촌지를 요구하는지 몰랐다고했다. 그런데 이후부터 담임이 아이를 노골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이가 교사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면 ‘이것도 모르는 너 같은애는 처음 본다. 바보냐’라고 면박을 주며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오랜 시간 서서 수업을 받게 하기도 했다. 민씨는 자신의 아이가 어이없이 고통을 받고 있는 장면을 때마침 교실 옆을 지나가다목격한 다른 반 아이 엄마로부터 전해들었다고 했다. 민씨의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을 무서워하기 시작했고, 그해 가을 무렵 단순한 셈조차 못할 정도의 공황 상태에 이르렀다. 민씨는 “두 자리 숫자 셈은 물론 구구단까지 외우던 아이가 갑자기 간단한 덧셈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나는 바보야’라고 말하기만 했다. 또 ‘엄마는 왜 학교에 안와’라며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심리적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이를 부둥켜안고 몇 시간 동안 울었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 아이는 미술 심리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억울한 생각에 학교측에 따지려고도 했다. 그러나 학교측과 불편해지면 왕따를 당한다며 다른 학부모들이 말렸다고 한다. 오히려 담임 교사를 만나 빌며 촌지로 해결하라는 조언까지 받았다고 했다. 민씨는 “촌지 때문에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마침 담임 교사가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따뜻한 차를 보냈더니 ‘이까짓 것’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며칠 후 1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냉랭하던 담임의 얼굴에 순식간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고 귀신에 홀린 줄 알았다. 다음 날 아이가 집에 돌아와 담임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며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 지역은 최소 30만원부터 시작

2학년이 되어 담임 교사가 바뀌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민씨는 마음을 고쳐먹고 무조건 촌지를 주자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는 것이 자식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가 당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추석 때 10만원을 보냈더니 아이의 손을 통해 되돌려보내왔다. 학부모회장 엄마와 상의 했더니 액수가 적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기가 찼다. 결국 학교를 옮기기로 하고 지난해 12월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를 왔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 담임 교사도 깨끗한 분 같아 안심이 된다”라고 털어놓았다. 민씨만이 당한 특별한 경우였을까. 믿기지 않겠지만 인터뷰에 응한 학부모와 교사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학내외의 자정 운동 덕분에 촌지를 주고받는 빈도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액수는 커졌고, 형태도 백화점 상품권·명품 등으로 다양해졌으며 이를 전달하는 방법도 기발해졌다.
매년 학기 초가 되면 학부모들의 화두는 담임 교사의 취향을 파악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담임이 돈을 받느냐, 안 받느냐를 알고자 한다는 것이다. 교사의 집이 어디이고 주변에 어떤 고급백화점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어느 브랜드의 명품을 좋아하고 어느 제과점 빵을 선호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알아 놓아야 한다고 한다. 김현주씨(32·가명)는 “학기 초에는 엄마들이 모여 담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때 돈을 받는지 안 받는지는 당연히 알아야 할 사안이고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지, 어느 백화점을 주로 가는지, 심지어는 어느 제과점 빵만 먹는지 하는 세세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라고 말했다.
촌지는 기본이 10만원이라고 한다. 서울 강남 지역의 경우는 최소 30만원부터 시작한다. 강남에 사는 김미선씨(44·가명)는 “처음에는 촌지를 주지 않았다. 아이가 반에서 부반장을 맡았는데 담임이 수업 중에 아이에게 이런저런 일로 창피를 주면서 ‘네가 어떻게 부반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반장을 바꿔야겠다’라며 면박을 주었다. 그날 아이가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촌지를 주지 않자 담임이 전화를해 꼭 학교로 오라고 했다. 알고 보니 별 문제는 아니었고 본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들고 있던 핸드백을 본 담임은 자신도 그런 핸드백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백화점에서 80만원이 넘는 명품 핸드백을 사서 보냈다. 한 번으로 끝낼 생각에 큰 마음을 먹은 것이다. 백화점 매장에서 교사에게 선물을 하려고 한다고 하니 점원이 핸드백에 맞는 옷을 골라주며 요즘은 핸드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했다”라며 어이없어했다.
촌지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고 한다. 김씨는 “한 학급에 학생이 30명인 경우 학부모 대부분이 촌지나 선물을 담임에게 준다. 30만원씩 잡아도 9백만원이다. 학기 초나 명절 등 1년에 보통 5번은 정기적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를 통해 촌지를 달라는 신호가 온다”라고 털어놓았다.
촌지의 형태는 현금은 물론 백화점 상품권·명품 핸드백·화장품 등 다양하다. 백화점 상품권인 경우 급수가 있다고 한다. 김영옥씨(36·가명)는 “교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현대·롯데 등 유명 백화점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고도 욕을 먹는다. 한 번은 인사치레로 여자 담임 교사를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유명 미용실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이후 두세 달에 한 번씩 전화가 온다. 퍼머 비용이 30만~40만원하고 식사까지 하면 50만원이 든다. 그래서 교사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면서 효과적인 선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엄마들끼리 논의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촌지를 요구하거나 전달하는 방법도 매우 노골적이고 교묘해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촌지를 전달할 때면 남들의 시선을 피해야 하는 만큼 복장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김미옥씨(41·가명)는 “책이나 떡상자 밑에 돈이나 상품권을 넣어 보내는 것은 고전적인 방법이다. 자동차 트렁크에 몰래 명품을 넣어두거나 집으로 택배를 보내기도 한다. 교사가직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계좌번호나 집 주소를 알려주기도 한다. 학교에 운동하러 온 것처럼 운동복을 입고 가기도 한다. 책 몇 권을 들고 학교 독서실을 가는 것처럼 가서 은밀히 담임을 만나기도 한다. 학기 초에는 수업 중에 아이들 보는 앞에서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는 담임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희정씨(38·여)는 “학교에서 학년 초에 촌지를 주고받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낸다. 그러나 촌지 줘서 안받는 교사를 보지 못했다. 한 번은 담임이 전화를 걸어와 ‘차를 대접하고싶은데…’라고 말해 사과주스 한 상자를 들고 찾아갔다. 서로 대화를 나눈 뒤 교실을 나와 복도를 나서는데 담임은 곧바로 음료수를 다 꺼내놓고 상자를 뒤집어 흔들어 돈 봉투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물론 돈 봉투는 없었다. 다음 날 아이로부터 자폐아와 짝꿍을 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상자 안에 촌지를 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라고 말했다.

교사 자동차 트렁크에 명품 넣거나 집으로 택배시켜

권희선씨(46·가명)는 “모든 교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월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비싼 명품 옷을 입고다니는 교사들이 있다. 한 50대 여교사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 옷과 핸드백을 입고 치장한다. 이들을 보면 교사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다”라고 꼬집었다. 촌지는 지방 학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혜리씨(32·가명)는 “지금은 경기도로 이사를 왔지만 지난해 아이가 전라도 중소 도시의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보냈는데, 담임에게 촌지나 선물을 안 주었더니 아이 자리를 구석으로 바꿔 버렸다. 어린 마음에 아이가 큰 상처를 입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교사에게 촌지나 선물을 주는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이희정 사무처장은 “지난 2년 동안 잠잠하던 촌지가 올해부터 크게 늘기 시작했다. 촌지 빈도는 많이 줄었지만 불법 찬조금 등으로 그 규모는 오히려 커졌다. 최근에는 하루에만 3~4건의 촌지 관련 상담 전화가 온다. 특히 과거와 달리 아빠나 아이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제는 촌지가 가정과 사회에 큰파장을 일으킬 만큼 심각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이선희씨(38·가명)는 “서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엄마들끼리 모여 말해보면 촌지를 주지 않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올 학년 초에 교실 청소를 돕기 위해 학교에 갔더니 교실 바닥에 떡 보자기와 과자 상자가 수두룩했다. 지난해 스승의 날에는 웃지 못할 장면도 목격했다. 담임이 얼마나 많은 선물을 받았는지 다 가져갈 수 없게 되자 남편 승용차를 불러 옮기는 것을 보고 아연 실색했다”라고 털어놓았다. 학부모들은 최근 촌지의 특징으로 규모의 확대, 노골적인 수수, 불법찬조금 강요 등을 꼽는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전은자 교육자치위원장은 “첫째, 과거 3만~10만원이던 촌지 규모가 최저 10만원으로 높아졌다. 둘째, 많은 교사들이 촌지를 받지 않지만 그래도 받는 교사들은 아이들을 이용하거나 전화로 부모에게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셋째, 최근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명품 학교 만들기가 한창이다. 학교는 학부모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학부모들은 십시일반으로 목돈을 만들어 보낸다. 학교발전기금이라는 명분 아래 불법 찬조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특목고의 경우에는 불법 찬조금의 액수가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안미주씨(38·가명)는 “촌지를 주면 당장 다음날 아이가 상장을 들고 오기도 한다. 요즘에는 교사 이름으로 주는 상들이 많다. 어차피 줄 상이라면 촌지를 내놓은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다. 촌지 효과는 이렇게 바로 나타난다. 이제 아이가 특별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 촌지를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교사들도 학부모에게 촌지를 받으면 그 아이에게 눈길이 간다고 말한다. 16년째 교사를 하고 있는 조형식씨(39·가명)는 “촌지나 선물은 고맙다는 순수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이를 특별하게 봐달라는 대가성을 지녀 그야말로 뇌물이다. 나도 받아본 적이 있다. 교사도 사람이라서 촌지를 받으면 마음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고학년보다는 저학년 담임이, 젊은 교사보다는 나이가 든 교사가, 남교사보다는 여교사가 비교적 촌지를 밝히는 것 같다. 학교발전기금이라고 해서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수백만 원짜리 어항이나 TV를 학교에 기증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촌지다”라고 말했다.

저학년 담당 나이 든 여교사가 봉투 밝히는 편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촌지가 오가면서 아이들의 가슴에는 멍이 든다. 요즘에는 아이들의 성화 때문에 교사에게 촌지를 주고 있다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박홍숙씨(43·가명)는 “어느날 아이가 커서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엄마들이 선생님 도시락을 챙겨주고, 돈도 많이 버니까 교사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다른 아이 엄마는 선생님에게 돈을 주는데 왜 엄마는 주지 않느냐고 성화를 부려 난감했다”라고 실토했다. 학부모들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촌지를 안 받는, 받더라도 정도껏 받는 담임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고 한다. 오혜영씨(36·가명)는 “촌지나 선물을 안 받는 교사가 새 학년 담임이 되기를 모든 학부모들이바란다. 촌지를 받고 학부모에게 답례로 작은 선물이나 감사의 말을 하는 교사가 담임이 되면 운이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 참 슬픈 현실이다”라고 개탄했다. 교육 당국에서는 촌지를 요구하는 교사가 있으면 신고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신은미씨(39·가명)는 “한 엄마가 교육청에 학교와 교사 실명까지 거론하며 신고했다. 곧 이어 감사가 나와 학교가 발칵 뒤집혔지만 결국 신고한 학부모와 아이만 피해를 보았다. 교사는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아이는 이후 상황을 감당하지 못해 전학을 가야 했다. 전학을 가도 그 아이의 생활기록부에는 주홍글씨가 찍힌다. 언론에서 촌지 문제를 크게 다루어도 유효 기간은 10일 정도다. 한 방송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을 때 한동안 학부모들의 발길이 끊겼다. 10여 일쯤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촌지는 다시 살아났다”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대도 정부는 최근 학교 자율화 명목으로 촌지 금치 지침을 폐지했다. 그러자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김옥성 대표는 “정부가 정신이 나갔다. 아이가 엄마에게 ‘학교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아이들 역시 교사가 자신을 별다른 이유도 없이 괴롭히는 이유를 아는 것이다. 이를 교육당국이 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다”라고 지적했다. 전교조 임병구 정책기획국장도 “촌지 금지지침 폐지는 시기상조다. 정부는 학부모와 교육계의 자정 능력이 커져 촌지가 사라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촌지를주고받는 관행이 근절된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에 있을 뿐이다. 이 빗장을 정부가 풀어준 셈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