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침 도는 2차전지 시장 놓고 ‘스파크’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4.2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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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하이브리드카 출시 앞두고 물밑 신경전 느긋한 LG에 SK·삼성도 개발 나서며 “파이 나눠먹자”

 
“도요타는 그동안 하이브리드카 관련 기술을 축적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내년에 한국에서 출시하는 프리우스나 캠리는 이 기술의 결정체가 될 것이다.”
지난 3월20일 방한한 조 후지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한 말이다. 최근 들어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3천만~4천만원대의 하이브리드카 출시는 한국 시장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그는 기대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현대·기아자동차는 오는 2009년 하반기부터 아반떼 하이브리드카(아반떼 LPI)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2010년부터는 소나타 하이브리드 모델도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재 기술 협력을 위해 다양한 업체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배기석 현대자동차 홍보팀 과장은 “아반떼 LPI나 소나타 하이브리드카의 경우 LPG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도요타 등과 차별화되고 있다. 아반떼의 경우 이미 LG화학과 하이브리드 엔진에 장착할 리튬폴리머 전지를 공동 개발하기로 계약했다”라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이같은 대응을 놓고 다분히 도요타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도요타는 그동안 렉서스 LS600hL과 RX400h 등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해 판매해왔다. 가격은 각각 1억9천7백만원과 8천만원이었다. 도요타가 3천만~4천만원대의 하이브리드카를 출시하기로 하자 ‘맞불’ 차원에서 아반떼 LPI 출시 계획을 밝힌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 업체로부터 2차전지를 납품받아 하이브리드카를 생산하던 현대차가 최근 ‘부품 국산화’ 쪽으로 급선회한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되고 있다. 아무래도 도요타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일본 업체의 부품을 이용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아반떼에 전지 납품할 LG화학, 쏘나타 시장도 넘봐

현대차측도 이런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배과장은 “보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를 감안할 때 일본 업체와의 제휴에는 곤란한 점이 많다. 아반떼 LPI의 리튬폴리머 전지 납품 업체로 LG화학을 선정한 것도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하이브리드카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내년부터는 한·일 자동차 메이커 간 하이브리드카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SK, LG,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이 2차전지 시장 선점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가장 두각을 보이는 곳은 LG화학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06년 김반석 부회장이 취임한 이후 전지사업부를 CEO 직속으로 편입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제품 개발과 함께 수요처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화학이 최근 아반떼 LPI의 차세대 리튬폴리머 전지 단독 공급자로 선정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는 2010년 양산할 예정인 소나타 하이브리카 사업에도 참여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해외 자동차 메이커들과의 협력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현재 미국 GM 등과 중·대형 전지를 공동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환두 LG화학 홍보팀 부장은 “당장 급한 것이 내년부터 현대차에 납품할 리튬폴리머 전지의 생산이어서 관련 공장을 정비 중이다. 2차전지 부문에서만 2012년까지 3천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SK그룹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특히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SK에너지, SK케미칼, SK모바일에너지, 대덕 SK에너지기술원 등이 힘을 합치면서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홍경표 SK에너지 부장은 “신재생 에너지 사업은 SK에너지가 차세대 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2차전지 부문에 대한 (최회장의) 관심이 크다. 개발 현장에 내려가 챙길 정도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최회장은 지난 3월13일 열린 전경련 회장단 만찬에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에게 하이브리드카용 2차전지 공동 개발을 제의했다. 당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최회장의 이같은 구애가 소나타 하이브리드카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최회장은 같은 달 21일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관장하는 제프 빙거먼 미국 상원 에너지·자원위원회 위원장을 대덕에 위치한 SK에너지 기술원으로 초빙했다. 그는 당시 양국 간 민간 기술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하면서 SK에너지가 개발한 하이브리드 배터리 장착 차량을 함께 시승하기도 했다. 올 초에는 미국 엑손모빌에서 R&D 업무를 담당하던 구자영씨를 회사의 중·장기 전략기획과 R&D를 담당하는 P&T 사장으로 영입했다. 2차전지 시장 선점을 위한 최회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도 기술력 앞세워 치고 나올 듯

삼성SDI도 최근 하이브리드카용 전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SDI는 지난 2000년부터 2차전지 사업을 시작해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1분기에 6백65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지만, 2차전지 사업 부문은 분기 기준으로 최대 매출을 달성할 정도로 순항 중이다.
물론 LG화학이나 SK에너지에 비하면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이 회사는 그동안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배터리용 2차전지 시장 공략에만 집중해왔다. 하이브리드카용 2차전지의 경우 뒤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에 개발이 완료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 수준에서는 여타 업체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본 2차전지 시장 조사 기관인 ‘인터내셔널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IIT)에 따르면 삼성SDI는 최근 2차전지 부문 조사에서 일본의 주요 업체를 따돌리고 종합 경쟁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일본 기업이 주도하는 2차전지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수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삼성SDI가 이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이브리드카 시장에서도 조만간 치고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현철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SDI가 최근 야심차게 하이브리드카 전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시간이 좀 지나야 구체적인 밑그림이 나오겠지만 향후 이 회사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김순택 삼성SDI 사장도 최근 임직원들을 상대로 가진 1분기 경영설명회에서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해 2차전지 사업의 매출 증대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이경상 삼성SDI 홍보팀 부장은 “얼마를 투자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 제휴를 위해 현재 국내를 포함한 해외 유수의 기업들과 접촉 중이다.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일부 업체와는 이미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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