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보고 뽑았을까 위기의 ‘청와대 교수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5.0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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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문제로 구설, 사퇴 압력에 시달려…“정무 라인 손봐야” 지적 많아

 

국 정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총체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구멍 한두 개를 막아 해결될 상황이 아닌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인사 때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라인’이라는 비판을 받더니 재산이 공개된 뒤에는 각종 불법·위법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도덕적인 권위는 추락한 지 오래다. 정책 능력에 대한 의문도 고개를 들고 있다. 청와대에 포진한 인사들이 국정 전반을 리드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과의 유기적인 협조 체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당·청 관계는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청와대 정무 라인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온갖 말을 쏟아내면서 새 정권이 들어선 지 3개월 만에 ‘집권 피로증’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이 기대했던 ‘경제 활성화’는 지표상 오히려 하강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시장을 개방한 정책 등으로 인해 민심 또한 요동하고 있다.

“베스트 중 베스트 인선” 큰소리쳤던 청와대 ‘휘청’

 

집권 초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선을 발표하면서 “베스트 중의 베스트들을 뽑았다” “교수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무 능력을 겸비한 분들이다”라고 칭찬했다. 청와대 인선의 특징 중 하나로 교수들이 많다는 점 때문에 나온 해명이었다. 그러나 이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문제는 주로 교수들에게서 터졌다. 능력을 발휘할 시간도 없이 도덕적인 하자가 줄줄이 드러나면서 청와대는 연달아 펀치를 맞으며 휘청거리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숙명여대 교수인 박미석 전 사회정책수석이다. 임명 당시부터 논문 표절 의혹에 시달렸던 박 전 수석은 재산이 공개되면서 인천경제자유구역이 확정되기 직전 땅을 산 사실이 드러나 “투기한 것 아니냐”라는 의혹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에 제출한 ‘자경(自耕) 사실 확인서’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나면서 헤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사퇴를 요구할 정도가 되었다. 결국 4월27일 사직서를 냈고, 5월1일 사표가 수리되었다. 청와대는 박 전 수석의 사표가 재산 파동의 마무리 수순이기를 바랐지만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고려대 교수인 김병국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곽승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구설에 올랐다. 서류상으로 보면 김수석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할 때인 1988년 주소를 옮겨 충남 아산에 땅을 샀다. 김수석은 언론에 “당시 아버지가 샀지만 실정법을 어긴 측면이 있다”라고 해명했다. 재산 공개 직전 이 땅을 동생에게 넘긴 것도 의혹을 불렀다. 김수석은 “동아시아연구원에 5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약정서를 낸 일이 있어 이를 지키기 위해 동생에게 땅을 주고 돈을 받아 기부했다. 증여세를 냈다”라고 해명했다.


대선 당시 “곽승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정책이 없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정책통으로 손꼽혔던 곽수석은 1983년 대학 3학년 때 경기도 성남에 있는 땅을 샀다. 김수석과 마찬가지로 3개월간 주소지를 옮기는 위장 전입을 했다. 곽수석은 “모든 재산은 부모가 관여했고, 나는 취득 과정에 관여한 바 없다”라고 밝혔지만 역부족이었다.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4층 건물도 미국 유학 시절 증여받았는데 세금을 제대로 냈느냐는 의혹도 추가로 제기되었다.


교수 출신 수석들에 대한 비판이 봇물 터질 무렵 이번에는 이동관 대변인에 대한 의혹이 새롭게 불거졌다. 2004년 강원도 춘천에 있는 농지를 사들일 때 배우자가 외국에 있다고 거짓으로 기재한 위임장을 토대로 허위 영농계획서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사실을 보도하려는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기사를 빼 달라”라고 전화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퇴 압력에 직면했다. 이대변인은 “(영농계획서 등은) 법에 대해 잘 몰랐다. (언론인에게 전화를 건 것은) 언론사 입사 동기여서 사정을 설명하며 봐달라고 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떤 사람은 사퇴하고 어떤 사람은 넘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고무줄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의 부적격 인사들은 조속히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위장 전입을 하고 농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이들을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홍보 기능 강화하는 등 직제 개편 계획

‘강부자 내각’ 소리를 들으며 출범 초부터 남주홍·이춘호 내정자의 사퇴를 불러온 재산 문제는 정권 출범 2개월이 넘은 현재까지 이명박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반하는 민심과 함께 야당의 공세가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 청와대 수석 가운데 추가 낙마자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하지만 여권 주변에서는 이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소리가 나온다. 5월 말 공개되는 비서관들의 재산에서도 문제가 터질 것이라는 예상이 유력하다. 도대체 ‘부자 정권’의 위·탈법의 끝은 어디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볼멘 비판이 높아가고 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평화방송에 출연해 “국민에 대해서는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은 법질서를 거부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겠다는 것 아니냐”라며 사퇴하지 않는 청와대 인사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인사를 둘러싼 시행착오와 국력 소모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라며 문제 인사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홍보 기능을 강화하는 등 직제를 일부 바꿀 계획이다.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보다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홍보 관련 기능을 한자리에 모으고 외부 인력을 더 충원해 홍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일부 비서관들도 자리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지난 2개월에 대한 재평가 속에 내려진 조정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뭉개고 가기’ 전법 속에 신뢰도와 장악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홍보를 강화한다고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처음에는 “일 잘해서 경제 살리면 되지” 하던 사람들도 요즘에는 “문제가 있다”라며 비판하는 쪽에 몸을 싣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청와대의 조정 능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높다. 각 수석비서관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구조가 되면서 청와대가 국정 컨트롤타워로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전략가는 “청와대 인사 가운데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 혼자 원맨쇼 하듯이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은 말을 줄이고 참모들은 제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업처럼 총수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참석자들은 묵묵히 받아 적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수석들이 정부 부처와 당을 상대로 정책적인 조정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역량과 네트워크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수석들, 정책 조정·정무 능력에 한계 드러내

정책 조정 능력과 함께 나오는 정무 능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집권 초부터 제기되어왔다. ‘정무’라는 개념을 당·청 간의 관계라는 좁은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총체적인 국정 운영과 관련한 정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의 청와대 진용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현재의 정무 라인을 바꿀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청와대 직제 개편과 관련해서도 정무 라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7월에 전당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친 박근혜 인사들의 ‘복당’을 내걸고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친 이명박계 인사들 간의 힘겨루기도 잠복되어 있다. 여권 내부가 요동할 수 있는 여러 위험 요소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지뢰밭을 무사히 건너가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정무적인 역할이 중요시되는 때다.


그러나 학계에서 잔뼈가 굵은 류우익 비서실장과 관계·학계·정계를 두루 경험한 박재완 정무수석은 큰 틀의 정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익숙한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전임 노무현 대통령처럼 대통령 스스로 정치 게임에 능숙한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이런 상태라면 정무 분야에 대한 한나라당의 개입과 요구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청의 갈등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4월 중순 만난 이대통령의 한 측근 의원은 “청와대의 상황 인식이 아직 안일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엄중함을 인식했다면 처방전 또한 그에 맞추어 내놓았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점심을 먹고 나면 사무실 여기저기서 쓰러진 사람들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평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는 물론 휴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였다.


대통령이 새벽부터 뛰니 참모들이 뛰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1970년대식’ 강행군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효율적인지에 대해서는 말꼬리를 흐린다. 게다가 총리실이 역할을 ‘자원 외교’에 국한하면서 청와대의 업무량은 더 늘었다. 노무현 정권 때와 달리 총리실이 전면에서 사라지면서 청와대가 부각된 가운데, 그중에서도 대통령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경제 살리기’였다.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은 무언가 잘사는 세상이 오리라고 믿었다. 이 때문에 도덕적인 부분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경제 흐름은 경제 상황이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게 한다. 서민들이 ‘경제 살리기’에 대한 희망을 접는다면 실망감이 정권을 향해 분노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가 최근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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