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머니 노리는 ‘작업장’ 가동
  • 장인규 (경향게임스 중국 특파원) ()
  • 승인 2008.05.0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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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르포 / 한국 수출용 아이템 등 ‘앵벌이’ 점차 기업화…중간상들이 한국인 개인정보 제공

지난 4월 초, 베이징 외곽에 위치한 한 허름한 건물. 계단을 따라 어둡고 침침한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창고와 같은 방이 눈에 들어온다. 70㎡ 남짓한 방안에는 각종 PC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앞에는 20세 전후의 더벅머리 청년들이 열심히 마우스와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작업장에서 한국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앵벌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다.
이들의 업무 강도는 살인적이다. 쉬는 시간도 없다. 두 사람이 2교대로 12시간씩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실내는 이미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서 채집된 게임머니나 아이템은 중간 수집상을 통해 해외 유통 대리인에게 넘겨진다. 게임머니는 다시 한국의 아이템 거래 사이트나 외국인 경매 사이트를 통해 현금화되는 것이다.
최근 중국 언론에 묘사된 이른바 ‘작업장’의 모습이다. 옥션 해킹 사태를 계기로 중국의 작업장 운영 실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의 해킹도 사실상 이 작업장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업자는 “한국에서 거래되는 게임 아이템의 85%가 중국에서 역수출된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게임 아이템도 해킹을 통해 한국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그만큼 규모 자체가 대형화·기업화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작업장 추세다”라고 귀띔했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2004년부터 게임머니를 수집해 한국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한 중국 조선족 교포는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이하 현거래)가 한창 활발하던 2007년 초만 해도 중국에서 생산된 게임머니와 아이템의 한국 수출액이 하루 20만 위안(한화 2천7백만원)을 초과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거래 아이템의 85%, 중국에서 역수출”

그러나 이는 약과다. 대형 작업장의 경우 하루에만 수백만 위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그는 “중국에서 국외로 수출되는 게임머니와 게임 아이템의 총 금액은 매월 약 30억 위안(한화 4천50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폭리에 가까운 이익을 얻기 위해 작업장을 중심으로 불법 조직들이 뒤엉켜 있다. 한국 온라인 게임에 통용되는 게임머니를 벌기 위해서 한국의 게임 계정이 필요하고, 관련 ID를 만들기 위해서 한국인의 개인정보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게임머니 및 아이템을 수집하는 중간상들은 이들 작업장에 외국 현지 서버의 ID나 현지 서버에 등록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제공한다. 이로 인해 국내 인터넷 사이트를 대상으로 한 해킹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용된 ID나 개인정보는 대부분 이렇게 작업장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들은 도용되거나 절취된 개인정보 및 아이디를 이용해 해외의 온라인 게임 서버에 접속해 작업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출된 현거래 상품이 중개 사이트 등을 통해 현금화되고 있다. 현금화된 돈은 또 한 차례 세탁 과정을 거친다. 직접 중국으로 송금되지 않고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교포의 친인척 통장으로 입금된 후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이곳 업자들은 “현거래 완성 후 개인 구좌로 입금된 돈을 중국으로 송금하기 위해서는 환치기 같은 블랙 마켓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고리 속에서 한국 게임 ID나 개인정보를 훔치고 대포통장을 만들며 환치기를 하는 등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 말 그대로 악순환인 셈이다.
작업장에 정통한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대규모 작업장은 약 3천대의 PC를 보유하고 5천명의 직업적인 유저를 둔 곳도 있다. 이런 작업장에서는 이미 웬만한 게임회사의 총 수익 이상을 벌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규모의 작업장은 직원을 구하지 못할 경우 단순 육체 노동자들까지 고용해 단순 조작으로 레벨을 높이고 게임머니를 취득하는 방법을 가르쳐 작업에 투입하기도 한다.
일부 대학생들도 작업장을 개설해 운영하기도 한다. 이들은 방학을 맞아 PC방의 일부를 빌려 게임머니를 벌고 있다. 이렇게 작업장을 중심으로 메신저 및 ID나 게임머니, 아이템 등을 절취할 목적으로 하나의 고리가 생겨나 그 규모가 커지면 규모화·분업화·전문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일부 작업장에서는 전문적으로 개인정보를 빼내기 위한 트로이목마 바이러스를 개발해 무차별 살포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개인정보나 ID는 이를 일괄 수집하는 조직을 거쳐 현금화하는 전문 유통 조직으로 넘어간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집된 정보는 작업장뿐만이 아니라 직접 한국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고 싶은 유저들에게도 제공된다.
실제 중국의 한 게임 정보 사이트에는 한국인의 개인정보가 다량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름은 물론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까지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주민등록번호 자동생성기를 다운받는 사이트도 부지기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러한 사이트를 이용해 한국인의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이제 개인정보의 유출은 당사자의 피해는 물론 국부 유출로 이어지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 넘어 국부 유출로 이어져

물론 최근 들어 이같은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작업장 관계자는 “요즘 한국 쪽의 제재가 부쩍 심해졌다. 게임업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중국 쪽 접속을 잡아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요즘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쪽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WOW 서버에 접속해 골드(사이버머니)를 전문적으로 채집하는 작업장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영어에 능숙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이른바 ‘달러벌이’에 나서고 있다.
한국 쪽의 경계가 강화되었다고 하지만 한국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업자는 “PC 1대당 발생하는 수익은 1만2천6백 위안(한화 1백60만원 상당) 정도다. 작업자에게 지불되는 급여와 취식비용을 제외해도 투자 대비 5백% 이상 순이익이 발생한다. 때문에 업자들은 조선족을 고용해 한국 시장을 지속적으로 두드리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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