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 디 에어” 위협에 무릎 꿇은 표현의 자유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8.05.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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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촬영감독 모임들, <온에어> 제작사 상대로 “촬영감독 비하적 묘사 시정 안 하면 집단적 강경 조치” 경고해 물의

 

드라마 <온에어> 제작사가 ‘촬영감독님’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온에어>의 촬영감독 묘사에 문제가 있다며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와 한국방송카메라감독연합회가 항의한 것에 제작사가 굴복한 것이다.

<온에어>는 방송사에서 하나의 드라마가 제작되는 과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극 중 드라마의 두 주연과 그 주연들의 매니저, 그리고 담당 PD와 드라마 작가가 <온에어>의 주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의 성격은 하나같이 매우 괴팍하다. 굽힐 줄 모르고,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다. 드라마 횟수가 10여 회 넘도록 이 인물들은 서로 싸우기만 했다. 반복된 대립에 지쳤다는 시청자들까지 나왔다.

극 중 드라마가 촬영에 들어갈 즈음 새로 등장한 인물들이 조명감독과 촬영감독이다. 극의 지나친 긴장을 풀어줄 감초격의 인물들이었다. 이 둘은 절친한 형·동생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조명감독이 선배고 촬영감독이 후배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는 기존 주요 인물들과는 달리 촬영감독은 유들유들한 캐릭터다. 허튼짓도 곧잘 한다. 그러면 조명감독의 핀잔을 듣는다. 촬영감독이 촬영 중 쉬는 시간에 여배우의 몸을 카메라로 훑다가 조명감독과 PD에게 걸려 구박을 받는 장면이 있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웃자고 집어넣은 장면이었다. 무슨 특별한 의도가 있다고 여기기 힘들었다. 세상 어디를 가도 허튼짓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 아닌가. 또 각종 대중 영상물에는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비루하게, 때로는 악하게, 때로는 천박하게, 때로는 우습게 그려진다. 촬영감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촬영감독들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촬영감독들의 협회는 ‘드라마 <온에어> 제작사는 무책임한 현실 왜곡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협회측은 ‘촬영감독에 대한 수용 가능한 희화적 수준을 넘어 시청자들에게 비하적으로까지 비치는 일방적인 왜곡적 묘사’를 즉각 중단하고 ‘이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또 <온에어> 속 카메라감독의 모습은 ‘무책임한 현실 왜곡’에 다름 아닌 ‘일방적인 혐오적 비틀기’이고, ‘부조리한 작태’라며 ‘영상 제작 관련 학술적·실무적 지식’과 아울러 ‘엄격한 도덕률을 기반으로 각 방송사에서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 집단인 촬영감독들의 자부심과 명예에 흠집’을 냈다고 지적했다.


사과문 받아냈지만 ‘자부심·명예’ 오히려 실추

 

또 ‘어떠한 희생도 마다않는 영상인 정신을 근간으로 형성된 촬영감독들의 제작 시스템 내 위계 질서에 대한 존중심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자존 의식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온에어>가 ‘집단의 명예를 훼손’하고, 리얼리티가 어디론가 사라진 왜곡으로 시청자에게 그릇된 인식을 주었으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끝까지 <온에어> 제작사에 물을 것’이며, 사과와 시정 노력이 미흡할 경우 ‘해당 제작사에 대한 <오프 디 에어>를 위한 강경한 집단적 조치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개탄할 일이다. ‘강경한 집단적 조치’라니, 이것이 문화예술인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물론 반문화적·반인륜적 폭거가 있었다면 예술인들도 ‘강경한 집단적 조치’에 나설 수 있다. 어떤 권력이 영상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바로 그런 때가 집단적 조치를 실행할 때다. 이 경우에는 사회가 가만히 있는데 영상인 단체가 스스로 드라마 표현을 문제 삼으며 제작사를 위협했다. 영상인 스스로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이 된 것이다. 개탄하고 또 개탄할 일이다.

표현의 문제로 ‘강경한 집단적 조치’ 운운한 이번 성명이야말로 촬영감독들의 ‘자부심과 명예에 흠집’을 낸 사건이었다. 세상 어느 직종이든지 영상물 속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될 수 있다. 최근 드라마 <누구세요>에서는 미술관 운영자들이 천박하고 파렴치한 인물들로 나온다. <강적들>에서는 청와대 행정관이 전혀 ‘리얼리티’가 없는 방식으로 그려지고, 청와대 경호관들이 경호 대상과 비업무적 관계를 맺는다. 이것도 역시 ‘리얼리티’가 전혀 없는 왜곡된 묘사다. <하얀거탑> <뉴하트> 등에 나오는 한국의 의사들은 실력도 부족하면서 오로지 탐욕으로 점철된 비루한 인간들이다. 이런 묘사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하는가? 왜 촬영감독들만 ‘강경한 집단적 조치’를 경고하고 나섰는가?

‘일방적인 혐오적 비틀기’에 해당하는 ‘비하’는 그런 설정이 반복적으로 나와야 성립되는 판단이다. 유독 흑인이 반복적으로 악역이나 우스운 역할로만 나온다거나, 유독 어느 한 지방 사람들이 치사하고 못 믿을 사람들로 나온다거나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촬영감독들이 여러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우스운 역할로만 나온다면 ‘비하’에 해당하는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하나를 보고 그것조차 참지 못해 ‘발끈’하는 것은 촬영감독들이 스스로의 문화예술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비하’하는 일이다.

이 항의가 있은 후 해당 방송사 관계자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제작사측에 재발 방지를 위해 힘써달라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라고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촬영감독들의 힘이 세긴 센가 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한 표현통제가 횡행했었다. 국가 권력은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를 ‘비하’하고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을 참지 못했다. 즉각 ‘강경한 조치’를 실행했다. 그 권력이 사라진 지금 이젠 이익단체의 권력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인가? <온에어>는 결국 굴복했다.

참으로 절절한 사과다. 이제부터 드라마 속에서 촬영감독들은 ‘엄격한 도덕률의 성실한 전문가’로 그려질 것이다. 이것이 과거 국가 홍보 영화 속 국가지도자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 최고의 영화인 <오발탄>이 한국을 어둡게 묘사하고 있다며 금지시켰던 사건과 이번 사건이 무엇이 다른가? <오발탄>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지 않듯 <온에어> 때문에 촬영감독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었다.

최근 <태왕사신기>가 역사를 왜곡한다며 방송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사건이 있었다. 방송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방송사에 난입한 단체도 있었다. 기독교 단체가 <다빈치코드> 상영금지 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산>에서 노론 중신으로 가공 인물이 등장한 것은 관련 문중과의 대립을 피하기 위한 설정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뿐인가? 군 재판부가 군부대 룸살롱을 고발한 기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건도 있었다. 특정 집단의 힘ㅔ이 무서워 영상 표현도 고발 보도도 마음대로 못하는 세상인가? 이런 상황이야말로 우리 국격을 훼손시켜 우리 사회 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유포하고 있다. 촬영감독들의 ‘강경한 집단적 조치’ 운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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