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를 칠까, 홈런을 칠까
  •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 ()
  • 승인 2008.05.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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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프로야구, 타고투저로 각 구단 불방망이 신바람 ‘입신의 경지’ 4할 타율 향해 두산 김현수 등 맹렬 스윙

 
4월29일 대구구장. 삼성과 우리의 시즌 4차전이 펼쳐졌다. 이날 경기의 선발 투수는 양팀의 에이스인 배영수와 장원삼. 멋진 투수전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팔꿈치 수술 이후 1년간의 재활을 거쳐 화려하게 복귀한 배영수는 삼성의 제1 선발 역할을 든든하게 수행하고 있었고, 어느덧 프로야구 정상급 투수로 성장한 장원삼은 4월23일 KIA전에서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며 최고조의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경기 양상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장원삼이 1회 초 시작과 함께 삼성 타자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4안타 1실점을 허용하더니 배영수 역시 6개의 안타를 허용하며 채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을 당하고 말았다. 양팀 에이스가 출동한 이날 경기에서 양팀이 기록한 안타 수는 무려 26개(삼성 14개, 우리 12개). 양팀은 각각 5명(삼성)과 4명(우리)의 투수를 동원하며 불방망이를 잠재우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러한 타고투저 양상은 비단 이날 경기뿐만이 아니다. 2008 시즌 개막 이후 극심한 타고투저 양상은 멈출 줄을 모르고 지속되고 있다. 타율 4할을 넘나드는 선수들이 즐비하고, 홈런왕 경쟁은 시즌 초반부터 불이 붙은 상태. 이런 양상이라면 프로 원년(1982년) 백인천이 4할1푼2리를 때린 이후 명맥이 끊긴 4할 타자의 등장을 기대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3년 이승엽(요미우리·당시 삼성)이 아시아 신기록인 56홈런을 때려낸 후 5년 동안 명맥이 끊긴 40홈런 고지 달성 역시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프로에 데뷔한 2006년에 1군 경기 출전은 단 한 경기. 지난해 주전을 꿰차고 2할7푼3리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내비친 두산의 김현수. 그는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김광림 타격 코치의 지도에 따라 타격 폼을 대폭 수정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시즌 개막 이후 10게임을 치를 때까지만 해도 그의 타율은 간신히 2할(35타수 7안타)에 턱걸이했다. 그러나 그 뒤 13게임에서 김현수는 무려 5할1푼9리(52타수 27안타)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급기야 4할을 훌쩍 넘긴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공을 따라가곤 하던 몸의 중심을 뒤쪽으로 확실히 잡아놓았고, 선구안은 한층 정확해졌다. 4월29일 현재 김현수의 시즌 삼진은 8개. 타격 10걸 중 KIA 장성호(3개) 다음으로 삼진이 적다.

 

마지막 4할 타자는 백인천 전 롯데 감독

물론 이제 갓 시즌의 5분의 1을 소화한 상황에서 ‘4할 타자’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성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시점까지 4할 타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지난 2003년 SK의 이진영이 5월20일 무렵까지 4할대 초반을 친 것이 그나마 가장 오랫동안 ‘4할 타자’ 타이틀을 보유한 최근 사례. 이진영은 그해 3할2푼8리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만큼 4할은 쉽지 않은 목표다.

구경백 OBS 해설위원은 “4할 타율은 바둑으로 치자면 ‘입신(入神)의 경지’라 일컫는 9단과 같다. 투수와의 수싸움에 능해진 김현수라 해도 시즌 끝까지 4할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본인이 스스로 느낄 중압감과 앞으로 심화될 상대 투수들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는 것이 4할 유지의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김현수를 이어 타격 2위를 달리고 있는 SK의 최정 역시 3할8푼대를 유지하며 호시탐탐 4할 진입을 노리고 있다. 규정 타석은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의 백전노장 전준호 역시 4할을 넘나드는 정확한 타격감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처음이자 마지막 4할 타자는 프로 원년인 1982년 MBC(LG의 전신) 유니폼을 입고 4할1푼2리를 기록했던 백인천 전 롯데 감독. 이후 26년 동안 4할 타자의 명맥은 철저히 끊겼다. 이종범(KIA·당시 해태)이 최절정기 때인 1994년 3할9푼3리로 4할에 가장 근접했고, 2001년 양준혁(삼성·당시 LG)이 3할5푼5리를 기록한 이후로는 그나마 3할5푼 이상 기록한 타자도 없다. 각 팀 투수들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면서 타자들의 방망이가 철저히 숨을 죽여온 것이다.

4할 타자 계보는 ‘본고장’ 미국에서도 1941년 테드 윌리엄스(0.406·전 보스턴) 이후 명맥이 끊겼고, 일본은 단 한 차례도 4할 타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올시즌 미국과 일본의 수위 타자는 치퍼 존스(0.433·애틀랜타), 다나카 히로야스(0.376·야쿠르트). 지난해 기록한 3할3푼7리가 개인 통산 최고 타율인 존스는 4할을 훌쩍 넘는 타율로 팬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4월27일 한화와 두산의 대전 경기. 2 대 3으로 뒤진 한화의 9회 말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1사1루 상황에서 타석에 4번 타자 김태균이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두산의 철벽 중간계투 임태훈. 김태균은 임태훈의 3구 1백41km짜리 직구를 그대로 잡아당겼다. 쭉쭉 뻗어나간 공은 대전구장 좌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김태균은 두 팔을 번쩍 들고 팀 승리를 자축했고, 한화 선수단과 팬들은 펄쩍펄쩍 뛰며 김태균의 극적인 끝내기 역전 홈런포에 환호했다. 올시즌 세 번째로 나온 끝내기 홈런인 김태균의 이날 홈런은 김태균의 개인 7호. 시즌 초반 옆구리 통증으로 엔트리에서 빠지기도 했던 김태균은 이후 무서운 페이스로 홈런을 추가하며 홈런왕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지난 4월18일과 19일에는 김태균의 땜질용으로 투입되었던 김태완이 이틀 동안 3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홈런왕 경쟁에 합류했다. 다음 날인 20일에는 우리 히어로즈 용병 클리프 브룸바가 2개의 홈런포로 5타점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4월29일 현재 한화의 용병 거포 클락이 홈런 8개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김태균·김태완(이상 한화)과 카림 가르시아(롯데)가 7개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들 외에도 진갑용(삼성)·강민호(롯데)·이범호(한화)·이택근·브룸바(이상 우리) 등도 5개로 선두권을 추격하고 있어 올시즌 홈런왕 레이스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는 심정수(삼성), 이대호(롯데)와 언제라도 홈런포를 가동할 수 있는 최희섭(KIA), 박재홍(SK) 등 거포들이 즐비해 올시즌 홈런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예년에 비해 올시즌 홈런 페이스가 훨씬 빠르다는 점. 더구나 한두 명의 선수들이 독주 체제를 이루지 않고 수많은 타자들이 군웅 할거를 하고 있다 보니 더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정규 시즌의 5분의 1을 치른 상황이라고 볼 때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올시즌 홈런왕은 40개 안팎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03년 이승엽의 56홈런 이후 명맥이 끊긴 40홈런이 다시 탄생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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