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독재’ 먹구름에 세계가 떤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5.0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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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으로 부 거머쥔 러시아·중국 철권 통치로 체제 고수하며 민주주의 조롱

ⓒ로이터
역사학자들은 1989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 체제가 서방의 승리로 끝난 20세기의 전환점을 인류사의 경이로 회상한다. 그리고 미·소의 50년 대결이 영구히 그리고 평화적으로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냉전 시절 인류를 극한 대립으로 몰아넣었던 이데올로기가 다시 지평선에 나타났다. 냉전이 끝나고 21세기의 동이 트면서 지구촌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잘 살던 나라가 멸망하고 새로운 부자 나라들이 등장했다. 이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괄목할 변화는 러시아와 중국이 상징하는 강대국 독재 체제다. 과거 약소국들의 독재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그러나 거대한 경제력을 갖춘 러시아와 중국의 독재는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두 나라가 세계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려고 해도 당장은 알 수도 없다.

러시아와 중국이 공산주의를 포기했을 때 세계는 공산주의식 사고방식도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러시아와 중국이 냉전 직후 실용주의를 추구한 건 사실이다.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국익 추구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뒤늦게 안 것이지만 그들은 국내외 정책에서 그들만의 룰을 신봉하고 있다. 그것이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정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조롱하고 그 약점을 부각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는 과거 독재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머릿속은 강력한 통치를 해야만 세계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의 러시아와 중국 지도자들이 태생적 독재자는 아니다. 다만 독재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러시아와 중국, 공산주의 사고방식 포기하지 않아

이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력과 독재 체제가 공존할 수 있다는 현실이 이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서방의 예측이 빗나간 것도 이 때문이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경제 활동의 자유는 한없이 허용하면서도 정치적 자유는 통제하는 이중 플레이를 한다. 돈 버는 데 신바람이 난 사람들이 정치에는 무관심한 점도 활용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을 암암리에 주지시켰다. 거대한 경제력이 뒷받침된 독재는 우선 정보를 독점했다. TV와 인터넷을 장악하고 권력이 원하는 정보만 제공했다. 티베트 사태를 보도하는 외국 언론을 적으로 매도한 중국 매체들이 이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경제가 번영하면 ‘언젠가’는 정치적 자유도 꽃을 피우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 언젠가에 이르기까지 얼마의 기간이 소요되어야 하느냐다.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전략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재앙이 될 수 있다. 두 나라의 신종 독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세계사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해진다. 지금의 세상은 냉전 시대를 풍미했던 것과 같은 식의 이념 투쟁을 거부한다. 공동의 가치와 이익의 공유가 이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독재가 장기화하면 민주 체제와 독재 체제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고 때로는 대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은 재앙이다. 인류는 아직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러시아와 중국 지도자들이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실용주의의 미덕 자체보다는 그것이 독재 체제를 지속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들의 체제 보호 본능은 필연적으로 외교 정책에 반영된다. 두 나라는 한 국가의 통치 이념이 세계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소련 붕괴 후 미하일 고르바초프 체제는 러시아를 민주화했다. 그 시점에서는 나토도 긍정적으로 보았고 러시아의 전철을 밟는 옛 소련 위성국가들도 선의로 대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등장하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그의 눈에는 나토가 적대적 존재로 비쳤다. 따라서 나토의 확대는 러시아에는 도발이었다. 푸틴이 나토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에게 무서운 것은 나토의 군사력이 아니라 이 공동체가 표방하는 민주주의다. 중국은 티베트에서 보듯이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올림픽에 민족주의를 동원했다. 한국의 역사를 표절하려는 동북공정도 그 연장선에 있다.

모스크바와 베이징 지도자들이 바라보는 냉전 후 세계의 모습은 워싱턴, 런던, 파리, 베를린, 브뤼셀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의 색깔 혁명은 서방에는 환호의 대상이었으나 푸틴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두 나라의 민주화 열망이 러시아로 확산될까 푸틴은 전전긍긍했다. 푸틴은 지금도 서방의 세뇌를 받았거나 옛 위성국가에서 민주화 훈련을 받은 ‘자칼’들이 러시아에서 같은 짓을 할까 걱정한다.

미국과 유렵 정치인들은 러시아와 중국 지도자들이 국제적 자유주의 조류에 합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국제 조류에 가담했다가는 자유의 물결 속에 체제가 함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나라 지도자들이 느끼는 강박관념이다. 해답을 찾던 이들은 결국 역사적 퇴행을 선택했다. 이 길이 우선 편하고 당장은 효과도 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신독재다. 지금처럼 세계화된 환경에서 이런 독재가 얼마나 버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강대국의 독재는 어차피 역사의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환상에 빠져 이들의 독재가 망할 날을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다.

ⓒITAR-TASS

신독재 얼마나 버틸지 가늠하기 어려워

문제는 이 시대착오적인 독재가 약소 국가들의 진로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파시즘이 유행했던 것은 그것이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9년 냉전 종식의 여파로 나타난 민주화 세력은 민주주의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신독재는 바로 이 흐름을 퇴보시키고 있다.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프로프는 이념 경쟁의 복귀를 환영했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이념의 시장에 실질적 경쟁 환경이 조성되었다. 서방은 세계화 과정에서 독점적 지위를 상실했다.” 그의 말투에는 자부심까지 묻어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념경쟁은 끝났다고 생각한 민주세계에는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경악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국 카네기평화지원재단의 선임연구원 로버트 캐건은 유감스럽게도 잠에서 깨어나야 할 쪽은 러시아와 중국이 아니라 서방이라고 지적했다. 냉전 이후 미국과 유럽의 독주는 러시아와 중국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서방은 두 나라의 민주화를 부추기는 척하면서 돈에 눈이 멀어 두 나라의 부를 착취하는 데 주력했다. 두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겉으로는 딴전을 피웠다. 이런 위선은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아를 기어코 나토에 가입시키려던 부시의 시도가 최근 미·러 정상회담에서 좌절된 사례에서도 입증되었다.

미국은 푸틴이 민주주의를 말살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러시아에는 애당초 말살할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 민주주의는 권력의 기득권층과 부패 관료들이 연출한 가짜 민주주의였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부정 선거를 자행하고 야당을 탄압했을 때, 그리고 하지 않아도 될 체첸 전쟁을 자행했을 때 미국은 옐친을 도왔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는 구실을 내걸었다. 이는 기만이다. 러시아인들이 보기에도 미국이 지원하는 러시아 민주주의는 속임수였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중국과 공산당 중 하나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중국은 그의 예언이 빗나갔다고 조롱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이 예언의 유효 기간이 도래하지 않았다고 본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의 리처드 하스 위원장은 주목할 전망을 제시했다. 세계는 미·소 양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다시 극점이 없는 ‘무극 체제’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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