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타는 한우 “우리도 울고 싶다”
  • 이현우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
  • 승인 2008.05.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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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소값 하루가 멀다하고 ‘뚝뚝’…원산지표시제에 판매량 기준도 포함시켜야

                                                                                                                                   ⓒ연합뉴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속에서 축산 농가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산지 소값이 연일 뚝뚝 떨어지는 것은 물론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까지 생겨나 소비마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관련 한·미 간 고위급 회담이 열리기 전인 4월 초순 암소 한 마리의 평균가는 4백85만2천원(600kg 기준, 농협중앙회)이었지만 4월11일부터 8일간 고위급 회담이 열린 이후인 4월18일 농림수산식품부가 사실상의 전면 개방을 선언하자 소값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5월7일 현재 암소 한 마리 가격은 4백54만5천원으로 4월 초순보다 약 30만원 떨어졌다. 4백8만3천원이었던 수소 가격도 4백만원대가 무너지면서 약 31만원 추락한 3백70만6천원에서 형성되었고, 2백만원 전후에서 형성되었던 암송아지와 수송아지 가격도 각각 1백68만9천원, 1백74만9천원을 기록했다. 송아지 생산안정제 지원 기준이 1백5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송아지 가격의 하락세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06년 10월 이후 배합사료 가격이 40% 넘게 급등한 여파로 생산비가 급증하면서 농가들의 경영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악재 속에서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한우 농가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끼게 하면서 송아지 입식을 자제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축산 농가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음식점에서의 원산지표시제 강화, 쇠고기 이력 추적 시스템 전면 시행 등의 유통 투명화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축산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대책이 기존 대책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실효성 자체가 의문시된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5월6일 국무회의에서 현행 300㎡ 이상 음식점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원산지표시제를 올 6월(쇠고기에 해당)부터 100㎡ 이상 모든 음식점까지 확대하기로 확정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12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적용 대상 업소가 일반음식점으로 한정되어 이용객은 많으나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되지 않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 등 다중이 몰리는 식당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수입소를 한우로 둔갑시키는 판매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원산지표시제를 확대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결국 상당수의 하객들과 문상객들은 원산지가 표기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쇠고기 등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다. 특히 수입산 쇠고기의 한우 둔갑 판매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이런 법의 한계는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미국산 쇠고기의 불법 유통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장뷔페 전문점·도시락 전문업체 판매량 적지 않아

판매량을 따지지 않고 영업장 면적만으로 원산지표시제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된 출장뷔페 전문점과 도시락 전문업체 등은 상당한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영업 점포의 면적이 적용 대상에 못 미친다. 실제 전국에 100곳이 넘는 가맹점을 보유한 ㅎ도시락 전문업체 체인점의 면적은 대부분 40㎡에도 못 미치지만 100㎡ 이상 규모의 음식점 못지 않은 판매량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반음식점 외에 대규모로 식사가 이루어지는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 등에서도 원산지표시제를 확대 시행하고 도시락 전문점이나 출장뷔페 전문점 등 특수 업체들에도 영업장 면적 기준이 아닌 판매량 기준을 통해 원산지표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둔갑 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원산지 단속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단속 권한을 부여하고 특별사법경찰관 인원을 당초 4백명에서 1천명으로 확대하는 등 원산지 표시 단속 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의 이런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둔갑 판매가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수입산 쇠고기를 납품했던 ㄱ수입업체 출신인 ㄱ씨는 “강남 지역의 식당에 수입산 쇠고기를 납품하려면 쌀포대에 담아 전달해야 했다. 한우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에서도 수입산이라고 표기된 라벨을 손님들이 보지 못하도록 이런 식으로 물건을 납품받고 있다”라고 폭로했다.

ㄱ씨는 또 “1만원대에 납품된 수입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면 3만원 이상에 팔린다. 정부가 단속 인원을 확대했다고 하지만 전국 업소들에서 벌어지는 둔갑 판매를 일일이 단속할 수 없다. 업소들 사이에서는 재수 없으면 걸린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니 단속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복잡한 유통 구조를 직거래 확산 등을 통해 단순화시키는 것만이 농가 수취 가격 상승 및 소비자 가격 하락 등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가 지난 2006년 발표한 ‘가축 유통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국내산 쇠고기의 주요 유통 경로는 농가에서 중간 상인을 통한 문전 거래를 거쳐 도축장으로 향하는 것이 약 40.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산지 조합을 통해 도매시장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거래되는 비율은 29.7%, 가축시장을 거쳐 도축장으로 가는 방식은 13.1%를 차지한다.

세 가지 형태를 통해 도축장 또는 도매시장 등에 도착한 쇠고기는 육가공 공장 또는 중간 유통업체를 거쳐 2차 육가공업체, 대량 급식처, 정육점, 대형 할인점, 요식업체, 직매장 등 6가지의 형태로 소매시장으로 이동한 후 소비자의 구매를 기다리게 된다. 결국 생산 농가에서부터 소비자가 구매하는 시점까지 유통경로는 수십 가지다.

복잡한 유통 구조는 중간 업체들의 마진만 높여줘 결국 소비자 가격의 상승만 초래하게 되었다. 조사 결과 유통 경로별 한우 유통 마진은 1백90~2백26%인 것으로 나타났고, 지역별 한우 유통 마진율도 15~1백91%로 확인되었다. 주요 중간 유통업체의 ㎏당 이윤을 분석한 결과 ㄴ업체 3백60원, ㄷ업체 8백55원, ㄹ업체 2백32원으로 이윤이 가장 많은 곳과 적은 곳의 차이는 6백원이 넘었다.

양축가→우시장→도축장→정육점→소비자를 거치는 유통 경로를 통해 추정해보면 농가 판매 가격은 3백31만원에 불과하지만 우시장으로 이동하면서 마리당 2만원을 중개인이 수수료로 챙기고 이외에도 우시장과 도축장에서는 생체 운송비와 중개 수수료, 도축 제비용을 각각 2만원, 2만원, 9만8천6백원을 받는다.

정육점도 도체 운송비 3만원을 비롯해 발골, 가공비 13만원, 운영비 명목(인건비, 점포관리비, 세금, 공과금, 이윤)으로 71만2천7백40원을 소비자 가격에 첨가한다. 결국 3백31만원이었던 비거세 육우 가격은 4백4만6천3백40원까지 뛰어오른다.

결국 산지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직거래를 활성화시키는 등 유통 과정을 최소화하는 것이 축산 농가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다. 실제 지난 몇 년간 안전성 논란과 함께 미국산 소의 수입이 금지되었지만, 중간 유통업자들의 배만 불렸을 뿐 한우를 납품하는 국내 축산 농가는 여전히 영세적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원 홍천 지역의 한우 농가들은 지난해 한우 고기 판매전문업체인 ㅁ업체와 직영 농장으로 계약을 맺었다. 통상 강남지역에서 2백50g짜리 한우모듬의 경우 3만5천~4만5천원 수준에서 판매되지만 ㅁ업체는 2만5천원선에서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다른 외식업체보다 저렴해서 소비자들은 믿고 구매할 수 있고 농가들도 안정적인 출하처를 확보해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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