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정권 안 바뀐 방송
  • 전남식 편집국장 niceshot@sisapress.co ()
  • 승인 2008.05.2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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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렇게 급락할지는 몰랐나 보다. 마침내 대통령 주변에서 방송을 원망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대통령이 숱한 자충수를 두면서 더욱 고전하는 이유는 방송을 통제하지 못하는 탓이 클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이미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사장을 갈아치우고 후속 인사를 통해 길들이기를 한참 하고 있을 때다. 유감스럽게도(?) 이대통령은 지금 방송들로부터 모질게 얻어맞고 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신문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거대 매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맥을 추지 못한다.
정치 권력이 새롭게 등장하면 무엇보다 방송을 휘어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제대로 손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 KBS는 전 정권에서 연임한 정연주 사장이 버티며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MBC는 경영진을 교체했다고 하지만 내부 조직이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만일 과거처럼 정권 차원에서 조직에 손을 대려 하다가는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결국 정권이 바뀌었지만 방송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방송은 ‘강부자’ ‘고소영’의 무원칙한 인사나 당·정·청의 정책 난조, 친이(親李)·친박(親朴) 갈등 등으로 정권이 질척일 때마다 거세게 몰아붙이곤 했다. 어찌 보면 방송이 정권을 길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막 태어난 정권과 언론이 갖는다는 ‘밀월(蜜月)’은 애초에 없었다.
방송들이 뿔난 것 같다.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다고 하지만 단순하게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광우병 파동을 놓고 이명박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을 못할 것이다. 미국소 수입 문제가 지난 정권 내내 시끄러웠던 정쟁거리였음에도 왜 이리 무책임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는지 그저 한심할 뿐이다. 정부의 이런 무능상이 TV의 선정성에 걸렸으니 제대로 배겨낼 리 없다. 주저앉는 소, 쓰러진 소, 사경을 헤매는 소들이 TV 화면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안방 주부나 여중생까지 “이런 소를 먹어야 하다니…”라며 분노를 토해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진실이 어디 있겠는가. 극단으로 몰고 간 방송의 끝에는 수많은 후유증이 쌓여가고 있다. 지금 국민은 미국소뿐만 아니라 한국소, 더 나아가 모든 먹을거리를 믿지 못해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방송들의 비판이 과연 합리적 대안을 끌어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방송가에서는 여권의 방송 구조 개편을 의식해 몸을 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방송은 물론 언론 독립은 누구도 훼손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다. 현 정권이 구조 개편을 한다 해도 역사를 퇴보시켜가며 방송을 장악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방송도 달라져야 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득권을 고집하며 이대로 가겠다는 논리 또한 설득력이 없다. 권력과 방송이 일대 결전을 벌이게 되는 것일까. 이싸움이 다시 신문과 방송,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격화되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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