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 둘 다 죽는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5.2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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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가 갈등하는 모습을 국민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연합뉴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미국의 심리학자인 존 그레이 박사가 쓴 책의 제목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남자와 여자는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다를 뿐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고 반응하고 행동하고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어떤 때는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라고 썼다.

요즘 정치권에서 이 책이 주제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가 마치 이와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유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다. 두 사람이 만났지만 서로 해석하는 것이 다르고 심지어 했다는 말까지 다르다. 갈등이 좁혀지기는커녕 만날 때마다 간극이 커지고 특히 배석자 없이 만나고 나면 정말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났던 것처럼 딴소리들을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살림을 따로 차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말로는 ‘동반자’ ‘협조적 관계’라는 두 사람의 갈등이 이처럼 끝이 없으니 여권의 추동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하느냐, 무언가 결론을 내야 한다는 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17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5월31일 끝나는 것과 맞물려 두 사람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하는 시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흐름이다.




“류우익-김무성 회동 통해 복당 문제 사전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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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박 전 대표가 향후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친박 인사들은 전부 한나라당에 복당할까. <시사저널>은 이런 사안들을 국민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5월15일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전화로 면접 조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다.

먼저 지난 5월10일 이루어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회동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것에 대해 누구의 책임이 더 큰 것인지를 물었다. 이날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1시간30분 동안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회동 이후 박 전 대표는 “대표직을 제의받은 바 없다”라고, 청와대는 “대표직을 제의했으나 박 전 대표가 거절했다”라고 밝히는 등 오히려 갈등만 더 커졌다.

이날 만남 이후 오히려 두 사람 의 갈등이 커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조율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있기 전 친 박근혜계 핵심 인사인 김무성 의원과 청와대 류우익 비서실장이 만났다. 두 사람은 만남에서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 전당대회 이후 복당한다’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대통령의 한 측근 의원은 “대통령은 이렇게 조율된 것으로 알고 만났는데 박 전 대표가 다른 소리를 해서 당혹스러워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어떤 사안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 정리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화법을 쓰기 때문에 늘 서로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한 측근 의원은 이것을 ‘알았어요 리더십’이라고 이름붙였다. 이 사람이 말해도 “알았어요” 하고, 저 사람이 말해도 “알았어요” 하니 말을 해석하는 데 혼선이 빚어지고 결과적으로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국민은 두 사람의 회동이 성과없이 끝난 것에는 이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43.8%가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라고 답변했다. ‘박 전 대표의 책임이 더 크다’라고 답한 사람은 8.4%에 그쳤다. ‘둘 다 잘못이다’라는 대답도 만만치 않았다. 22.9%였다. ‘둘 다 잘못이다’라는 답변은 30~40대에서 특히 높 았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박근혜 책임론’이 평균보다 3% 정도 높은 11.8%였다.













이런 결과는 박 전 대표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반영된 결과이고, 권력을 쥔 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 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과 맞물린다. ‘두 사람이 화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70.9%의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이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자영업자들과 월소득 4백만원이 넘는 계층의 사람들이 특히 이렇게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더 양보해야 한다’라고 답한 사람은14.5%였는데 지역적으로는 충청, 계층적으로는 학생층에서 이런 답변이 많이 나왔다. 


 “박 전 대표, 이대통령 도와야 한다” 54.9%
위 두 결과를 한마디로 종합하면 ‘대통령의 책임이 큰 만큼 대통령이 마음을 넓게 먹고 박 전 대표를 끌어안아라’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대통령이 이런 여론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부정적이라고 보여진다. 최근 이대통령을 만난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청와대 기류는 한마디로 무시 전략이다. 그녀가 실수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의 권위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권위가 훼손되는 상황을 그대로 용인할 경우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될 위험성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조사 결과에서는 국민이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두 사람의 갈등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화합해야 한다’라고 답변한 사람이 65.0%로 나타난 것이 그 반증이다. 먹고 살기 힘드니 그만 좀 싸우고 마음을 모아 국가 발전에 진력하라고 국민이 채찍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50대 이상, 대구·경북 지역,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이런 답변이 많이 나왔다. 반면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라는 답변은 27.6%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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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은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를 보는 시각에도 투영되었다. ‘앞으로 박 전 대표가 어떻게 행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당에 남아 이명박 대통령을 적극 도와야 한다’라고 답한 사람이 54.9%에 달했다. 특히 50대의 70.2%, 한나라당 지지층의 76.1%가 이런 답을 내놓았다. ‘탈당해 독자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17.3%, ‘당에 남아 독자 행보를 걸어야 한다’는 17.1%였다. 이대통령을 화끈하게 돕든지, 아니면 확실하게 딴 살림을 차리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 민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은 박 전 대표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앞으로 어떻게 행보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당에 남아 독자 행보를 걸을 것이다’가 32.7%로 가장 높았다. ‘당에 남아 이대통령을 도울 것이다’는 27.5%에 그쳤다.

‘탈당해 독자 세력을 구축할 것이다’라고 보는 이도 21.2%에 달했다. 당위론은 당에 남아 이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당내 비주류 행보를 걸을 것이고 탈당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당위론과 현실론으로 갈리는 국민의 이런 인식은 기본적으로 박 전 대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과거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칙주의자’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지표다. 이것은 ‘박 전 대표가 국가 지도자라기보다는 계파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도 나타난다. ‘공감한다’라고 답한 사람이 57.7%에 달했기 때문이다.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사람은 30.9%에 그쳤다.

박 전 대표가 힘주어 강조하는 ‘친박 인사들의 일괄 복당’에 대해서도 국민은 공감하지 않았다. ‘모두 복당시켜야 한다’라는 사람은 34.1%로 조사되었다. 박근혜 지지층 중에서도 44.4%만이 이렇게 답변했다. 반면 ‘당에서 심사해 선별적으로 복당시켜야 한다’라는 쪽에 표를 준 사람이 40.0%였다. 20대와 충청권에서 특히 이런 답변이 많이 나왔다. ‘모두 복당시키면 안 된다’는 13.5%였다.

‘5월 말까지 일괄 복당’을 요구한 박 전 대표가 <시사저널>의 여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현재 친박 인사들의 복당과 관련해 한나라당 지도부는 새 원내대표가 선출된 뒤 ‘선별 복당’을 추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럴 경우에도 이들에게 최소한 이번 전당대회 때까지는 당원협의회 위원장 자리를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복당은 하되 투표권은 한 명’인 상황이 될 수 있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이사는 “아직 박 전 대표로부터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나 ‘계파 수장’ 인식 등은 지지자들이 박 전 대표가 무리한 행보를 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지금처럼 무리수를 두면 지지층이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와 관련해 친박연대 홍사덕 비상대책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5월 말 전에 결론이 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을 하려면 정치가 안정되어야 한다.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조사 결과는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갈등이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싸우면서 둘 다 멍이 들어가는 꼴이다. 국민은 이대통령에게는 포용력을 발휘해서 박 전 대표와 화합해 정국을 끌어가라고 주문하고 있다. 박 전 대표에게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고 국가를 위해 대통령을 도와 일하라고 말하고 있다. 두 지도자는 이런 여론을 잘 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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