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얼굴’ 그리기 쉽지 않네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8.05.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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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박희태 당 대표-홍준표 원내대표가 대세…안상수-정의화 구도도 떠올라

ⓒ뉴시스
7월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에서는 차기 지도부 구성이 초미의 관심사다. 당 대표는 7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선거 1위 득표자가 ‘대표최고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선출되고,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은 5월22일 당선자 총회에서 경선으로 결정된다.

이 때문에 여권 내에서는 차기 당권과 관련해 ‘동반자형(박근혜 전 대표)’ ‘관리형(김형오·안상수·박희태)’ ‘차기 대권형(정몽준)’ 등의 백가쟁명식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가 전당대회 불출마 쪽으로 향후 행보의 가닥을 잡으면서 박 전 대표와 길항 관계에 있던 정몽준 최고위원 카드도 힘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우여곡절을 거쳐 여권 내 주류가 도달한 결론은 바로 ‘관리형 대표론’이다. 정권 초에 굳이 여당 대표가 실세일 필요는 없다는 것으로, 현재 당 안팎의 사정을 볼 때 당내 계파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명분도 함께 따라붙는다. 뒤집어보면 4·9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박희태 의원을 당 대표로 밀기 위한 성격이 다분하다.

5선 의원인 박의원은 당 경선 때 이명박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고 대선 때도 선대위의 비공식 사령탑이었던 ‘6인 회의’의 멤버였다. 정치적 경험과 중량감 등을 따져볼 때 주류측이 밀 얼굴 마담으로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게다가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함께 친이계 원로 그룹을 대표하는 박의원은 온건파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당내 친박 진영의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 강점이다.


주류의 결론은 ‘관리형 대표’

다만, 공천에서 떨어진 ‘원외 대표’가 과반 의석 여당의 구심점으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를 당 대표로 끌어들이는 것은 공천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수도권의 친이계 재선 의원)라는 부정적 기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측에서는 이미 ‘박희태 당 대표’ 구도가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박의원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도 대세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당권 주자 가운데 정최고위원은 여전히 당권 도전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현재 당내 인사들과 활발한 접촉을 계속 하는 중이다. 또 그는 총선 때 지역구인 울산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꺾은 공로가 있고 차기 대선 주자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는 강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정최고위원이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한 만큼 아직 당내 입지가 탄탄하지 못하다. 특히 당 주류측에서 자신을 당 대표로 밀어야 할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당 주류의 지원을 얻지 못하면 전대에 출마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선출직 최고위원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원내대표 경선 구도는 서울의 홍준표 의원이 대세론을 등에 업고 질주하고 있는 가운데 부산 출신의 정의화 의원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두 의원 모두 이번에 4선 의원이 된다. 18대 국회 첫 원내대표는 집권 여당의 원내 사령탑으로서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 국정 과제를 원내에서 실현해야 하는 자리여서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다. 더구나 당 대표에 원외 인사가 기용되면 실세 원내대표가 될 가능성이 커 당 대표 인선 못지않게 관심의 대상이다.

서울 동대문 을이 지역구인 홍의원은 영남 출신인 김형오·박희태 의원이 각각 국회의장, 당 대표로 부각되면서 급격히 힘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이상적 모델로 꼽히는 ‘영남권 당 대표-수도권 원내대표’라는 구도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홍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사적으로 “형님, 동생”이라 부를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이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에서 야인 생활을 하고 있던 1999년 무렵, 당시 미국 워싱턴으로 연수를 떠났던 홍의원이 이대통령의 골프 친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이 시절 인연으로 퍼스트레이디인 김윤옥 여사는 지금도 홍의원을 “도련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홍의원은 5월2일 청와대 안가에서 이대통령과 독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원내대표 출마에 대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이와 함께 당내 정책통이자 이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급부상한 임태희 의원이 홍의원과 러닝메이트로 차기 정책위의장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대세론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3선 고지에 오른 임의원은 당 경선 때 중립파로 분류하던 인사로, 대선 때 후보 비서실장에 기용되었었다.

다만, 홍의원은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과 별개로 지난해 당 경선 때 이대통령과 맞서 독자적으로 입후보해 레이스를 완주한 전력이 있어 현 여권 핵심부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또 홍의원에게 ‘저격수’ ‘싸움꾼’ 이미지가 남아 있어 야당과 원만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회를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비토론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홍의원측은 “그것은 예전 얘기다.17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으면서 가장 반대가 심했던 민주노동당 의원을 끝까지 설득해 비정규직법을 합의 처리로 통과시켰을 만큼 정치력이 있다”라고 반론을 편다.

가장 먼저 원내대표 출사표를 던졌던 정의원은 ‘영남권 당 대표’에 무게가 실리면서 다소 주춤한 상태이지만, 원내대표 도전 의사를 꺾지 않고 있다. 아직은 박희태 대표 카드가 굳어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홍준표 원내대표 카드가 영남권 대표 기용을 전제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몽준 의원, 러닝메이트로 원희룡·정병국 점 찍어

ⓒ연합뉴스

실제로 이번 총선 때 서울 동작 을로 지역구를 옮긴 정몽준 최고위원이나 의왕·과천이 지역구인 안상수 원내대표가 당 대표가 될 경우 무게추는 또다시 영남 출신인 정의원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현재 정의원은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수도권 3선 의원 중에 원희룡·정병국 의원을 점찍고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현재로서는 ‘박희태 당 대표-홍준표 원내대표-임태희 정책위의장’ 배치표가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라인업의 특성이 화합형 인선이라는 점이다. 1백53석의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여권 내 야당’으로 불리는 친박계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현 여권 주류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라인업이 확정되기까지는 남은 변수가 몇 가지 있다. 먼저 당내에서는 최근 지리산에서 20일간의 칩거를 마치고 돌아온 이재오 의원이 ‘안상수 당 대표-정의화 원내대표’ 라인업을 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물론 이의원은 정치 재개설을 펄쩍 뛰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꼭 이의원이 아니더라도 친이계의 일부 의원들이 ‘박희태-홍준표-임태희’로 이어지는 온건파 라인업에 부정적 기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동안 친박계와 대척점에 서 있던 친이계 강경파들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가 명쾌하게 결론나지 않아 ‘박근혜 대표 출마’라는 초대형 변수도 완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막판 반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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