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쇠고기 나돌기 전에 유통 질서부터 바로 잡아라”
  • 소종섭•김지혜 기자 ()
  • 승인 2008.05.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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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경 전국한우협회 회장 / “대안은커녕 제도도 안 갖춰놓고 미국과 격투하라니…”

ⓒ시사저널 임영무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 이번 쇠고기 협상은 대통령이 외교적인 틀에서 열라고 해서 이루어졌다. 지난 정권 때와 실무자들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결과는 달라졌다. 정운천 농림식품부장관이 장관을 하는 용기가 대단하다. 전체 축산 농민들의 정서는 정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것이다. 주무장관으로서 버티고 지켜야 하는 조건들이 있는데 그런 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정부가 농민들의 삶을 경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를 잘못 해석했다는데, 정말 창피한 일이다.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은 협상에서 미국에 주고 오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거의 미국이 제시한 안대로 간 것을 보면 정권 차원의 정치적인 목적과 고려가 있었다고 본다.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나?

- 협상 시기를 보아라. 총선이 끝난 다음다음 날 진행했다. 아마 총선 전에 이런 협상을 했으면 한나라당 의석이 최소 15석 정도는 줄었을 것이다. 당시 조류 인플루엔자가 번졌다.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에 대해서는 대책도 세우지 않고 쇠고기 협상에만 몰두했다.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하는 것인지…. 물건을 파는 사람도 아니고 사는 입장이다. 몇 달 늦게 해도 된다. 그런데도 조류 인플루엔자가 번져가는 가운데 국민을 무시하고 협상을 진행했다.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독소 조항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 셋 있다. 광우병이 나타나도 수입을 중단시킬 수 없다, 특정위험물질(SRM)이나 공업용도 가져온다,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완화한 상태에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등이다. 이것들은 어떤 경우에도 바꿔야 한다. 이런 정도는 정부에도 전문가들이 있으니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축산업자들은 미국에서 무기 분야 다음으로 강력한 로비 집단이다. 메이저 곡물업체인 카길 사 같은 경우는 소를 65만마리 키운다. 우리나라 전체에 약 2백만마리가 있으니 우리나라 소의 3분의 1을 미국의 한 회사가 키우는 셈이다. 이런 기업의 로비가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늘 그들을 보호해준다. 우리가 검사한다고 갔지만 예고 없이 가서 검사하고 하는 그런 체계가 아니지 않는가.


정운천 장관 등은 광우병은 과거의 일이라고 말하며 안전하다고 홍보한다.

- 잠복기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일본에서도 광우병이 나타나는데, 10여 년 전에 영국에서 동물성 사료를 수입해 몇 년간 썼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간 간혹 한두 번씩 나타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광우병이 나타났는데 팔아야 하기 때문에 OIE(국제수역사무국) 규정을 연구해 30개월 미만은 괜찮고, 뼈만 제외하면 된다는 식으로 바꾸고 수입하라고 했다.


한우협회는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가?
- 우리나라는 쇠고기가 모자라는 나라다. 순수 한우는 30~35% 정도다. 쇠고기를 외국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다. 미국산이건, 러시아산이건, 호주산이건 상관없이, 들여오는 것 자체를 반대하면서 우리 것만 많이 팔자는 것은 집단이기주의일 것이다. 우리가 쇠고기의 이력을 추적하는 체계가 잘 되어 있으면 국민이 미국 쇠고기를 안 사먹을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 헷갈린다. 미국 것인지 아닌지 믿기 어려우니 한우까지 꺼림칙해서 안 먹게 된다.


정부는 원산지 표시제 강화, 이력 추적 시스템 전면 개편을 하겠다는데.

- 선언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선언만으로 되나. 2~3년 만에 되나. 인력은, 제도는, 처벌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제시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것이 없다. 지금까지도 정부는 엄청나게 선언을 많이 했다. 제도를 갖추는 동안 우리는 망한다. 미국은 소를 1억마리쯤 가지고 있다. 우리는 2백만마리다. 한우는 종자가 강하고 맛있다. 100대 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자부심도 있다. 진짜 한우라는 것을 내세우는데, 문제는 이것만 가지고는 수습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량이 되나, 가격이 싼가. 내세울 것이 없다. 사전 준비도 없이 일을 벌여놓고 대책을 찾는 형국이다. 미국과 스파링을 하고 경기를 뛰려면 제도를 갖추면서 나가야 할 것 아닌가. 대안이 있어야 국민이 따라간다. 기준과 자신이 없기 때문에 협상력도 떨어졌다. 일본과 달리 우리 기준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메우는 식이다. 조류 인플루엔자 방역도 처음에 제대로 했으면 3백억~4백억원이면 했을 텐데 지금까지 2천억원이 들었다. 앞으로 1천억원 정도 더 들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잘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뭔가. 똑같다. 아니 오히려 더 못한다.


국내 쇠고기 유통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 그렇다. 유통 관련해서도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최소한 국가가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권 문제 아닌가. 한우는 3만원, 미국 쇠고기는 1만원인데 1만원짜리를 3만원에 먹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되지 않나. 이런 문제는 생산 농가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에서 법·기구·제도 등을 만들어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 산지-도축장-업자 등 단계를 거칠 때마다 10~20%씩 붙는다. 이 때문에 농민들이 5백만원에 소를 팔면 소비자는 1천만원에 사는 현상이 생긴다. 유통 과정을 두세 단계만 줄여도 가격을 40~50% 줄일 수 있다. 돈보다도 믿음, 신뢰감이 중요하다. 산지 직송이나 도시 근교 한우 전문점들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다. 정부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


유통 질서를 바로잡으면 경쟁력이 있다는 말인가?

ⓒ시사저널 박은숙

- 축산 농가를 무조건 보호해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짜 한우가 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유통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정부가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 신뢰만 생기고 질서를 잡아주면 값 낮추고 고급화해나가는 것은 우리가 할 것이다. 이것이 확실해지면 중국 시장에도 진출하려고 한다. 중국에는 우리 국민만큼 잘사는 6천5백만명의 상류 계층이 있다. 한우를 고급화해 이 계층을 공략하면 된다. 고기 자체나 민족 감정적인 측면에서 일본 쇠고기와 비교해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있다. 우리가 머리 깎고 데모하면서 해달라는 것은 ‘늦었지만 주춧돌을 하나하나 놓자’는 것이다.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가면서 단기적으로는 송아지 가격 안정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경우를 언급하면서 한우도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는데.

- 대통령이 실수한 것이다. 농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축산 농가가 20만호 정도 있는데 대통령이 미국 쇠고기를 홍보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은 잘못되었다. 우리 산업을 버리는 것 아닌가. 우리 축산농가는 평균 11마리를 키운다. 그런데 장관이라는 사람은 또 특별한 성공 사례를 찾아 마치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한다. 보편타당하지가 않다. 열심히 일하고 설비도 절감하면 달성될 것 같은 보통 농장에 가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할 일이다. 대통령과 장관이 가서 쇼하는 것은 필요 없다. 이러니 농민들 사이에 협회장이 무엇 하느냐, 머리 깎고 할복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생기지 않겠는가.


곡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축산농가의 고통이 클 것 같은데.

- 사료값이 지난해에 비해 50~60% 올랐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더 오를 것이다. 여기에 미국 쇠고기까지 들어오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올 하반기와 내년 초는 더 극한으로 갈 것 같다. 피해도 피해지만 축산농가들은 지금 정부가 우리를 버리는 것 아니냐며 마음까지 상해 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 장치는 있어야 한다. 개방하는 것은 이들을 무시하고 나갈 정도의 이익이 있기 때문일 텐데 그 이익의 20분의 1~30분의 1 정도만 배려해도 충분히 안전 장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 쇠고기 협상의 부당성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재협상도 촉구한다. 그런데 대안은 없이 투쟁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투쟁을 하되 물밑으로는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일을 병행할 것이다. 최소한 독소조항 한두 개는 고칠 수 있지 않겠나. 특히 유통 부분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도를 확립했으면 한다. 이번 기회가 지나면 바로잡기 어렵다. 촛불 집회에도 참석하지만 주도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생각이다. 겁나서가 아니라 정치에 휘말릴까 봐 앞에 나서지 않는다. 우리 일을 착실하게 하면서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머리를 깎았던 그런 마음으로 대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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