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묵은 권력형 비리 정통으로 칼 맞을까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5.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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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기업·공공기관 20여 곳 수사 중”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사정’ 신호탄


검찰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대검 중수부에서는 정국의 방향키를 움켜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도 무척 분주하게 움직인다. 각 부서별·팀별로 대대적인 내사 및 수사가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검찰청사 주변에서 상당히 주목되는 언급이 포착되었다. ‘10년 정권 비리 척결’이라는 말이 불거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지만 사정기관인 검찰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심상치 않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서 정치권에 나돈 사정 시나리오가 점차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지난 10년 정권에서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권력형 비리와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수사를 펼쳐나갈 것이다. 그 시기는 4월 총선 이후가 될 것이다. 공기업 비리를 첫 신호탄으로 해서 사기업과 개인 비리로 이어질 것이다’라는 것이 이른바 사정 시나리오였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사석에서 “10년 정권 비리를 추적하는 작업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이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운영하는 기업에 대해 상당한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원활한 수사를 위해 국세청·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수사에 참여하거나 회계 전문가가 동원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 중심에 대검 중수부가 있고,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도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조풍언씨 의혹’ 수사 이어 노 전 대통령 측근도 내사 중

ⓒ연합뉴스 ⓒ뉴시스
때맞추어 5월13일 최재경 대검 수사기획관은 “전국의 공기업과 공공 기관 20여 곳에 대해 수사 또는 내사 중이다”라고 발표했다. 과거 정부가 지원해온 국고보조금이 개인 착복으로 새어나간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공공 서비스 분야의 부정부패 척결을 가장 시급한 국가 경영의 당면 과제로 보고 있다”라고 수사 배경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 공기업에 대해 먼저 칼을 빼들었다는 뜻이지만, 좀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결국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리 척결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몸담았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드러난 대통령 측근 비리도 문제지만, 권력 측근 인사들이 지난 10년간 낙하산식으로 투입되어 장악한 공기업들이 더 큰 문제다. 경영이라는 허울 하에 횡령·배임 등 마음껏 분탕질을 해서 근간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 검찰이 대대적으로 공기업 사정에 나선 것과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셈이다.

검찰의 비장한 움직임이 감지되는 곳은 또 있다. 대검 중수부의 ‘조풍언씨 의혹’ 수사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받아온 조씨에 대해 그동안 숱한 의혹이 제기되어왔으나 수사 내용은 거의 극비에 가까웠다. 기자들의 문의가 잇따르자 지난 4월 말 검찰의 한 고위 인사는 “특별히 나오는 것이 없다. 어차피 큰 수사가 아니었다”라며 맥 빠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실제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달랐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검찰의 한 관계자는 “상당히 강도 높은 조사가 이루어졌다”라고 전했다. “어떻게 하든 (혐의를) 찾아내라”라는 윗선의 지시에 일선 수사관들이 상당히 힘들어했다는 전언이다. (43면 기사 참조)

현재 대대적인 사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기업 비리 역시 대검 중수부가 총체적인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첩보와 내사 자료들이 이곳에 집중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수부가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일선 지검에 수사 자료를 하달하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중순께 박용석 대검 중수부장과 최재경 수사기획관, 그리고 김수남 서울중앙지검 3차장 및 그 예하의 세 특수부장 등이 한자리에 모여 장시간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공기업 비리에 대한 향후 수사 방향이 논의되고 각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사들에 대한 점검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에 대한 수사를 맡고 있다. 최근 수사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 직원이 김씨의 입국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윤 아무개 전 LA 부총영사가 등장하면서 김 전 국정원장의 개입 의혹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수사도 당초 전망은 검찰이 국정원의 개입설을 밝혀내지 못해 무혐의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가 전격 귀국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고 있는 느낌이다.


‘병풍’ 김대업씨도 사기 혐의로 구속

특수2부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다. 신성해운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 4월24일 이광재 통합민주당 의원의 부인 이 아무개씨를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는 이의원뿐만 아니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ㅇ 전 국세청장 등 노무현 정권의 핵심 측근들이 상당수 연루되어 있다. 특수2부는 현재 광업진흥공사의 임직원 비리 수사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3부는 얼마 전 ‘병풍’의 주역 김대업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시켰다. 학교 동창을 상대로 땅 사기 행각을 벌이면서 국정원 직원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한나라당에서 가장 먼저 손보겠다고 벼르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특수3부는 현재 대한석탄공사와 한국산업은행의 부당 지원 및 대출 로비 의혹 수사도 맡고 있다.

보안 속에 진행하는 내사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의 귀띔에 따르면 현재 중수부에서 기업 ㅎ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한 내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 회사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잘 알려진 한 사업가가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특수1부는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이 이른바 ‘이명박 TF’팀을 비밀리에 가동했고, 이를 위해 개인 신상 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계속 내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검의 한 관계자는 “지난 10년 정권의 비리만 전담해서 추적하는 별도의 팀은 없다. 그런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다만, 여러 가지 첩보와 제보 등으로 현재 진행되는 수사가 대부분 지난 정권의 비리사건이다 보니 마치 전 정권의 비리만 파헤치는 것 같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는 있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검찰 관계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수사 자료 건너와…”

이같은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 및 내사가 검찰 자체 판단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노 전 대통령 측근과 관련한 의혹 수사에 참여하는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 자료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이 현 검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대 내각에 사시 1년 선후배 간인 두 사람이 각각 법무부장관과 민정수석에 임명되면서부터 이같은 분위기는 충분히 감지되어 왔다. 법조계에서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인사들로 꼽히는 까닭이다. 지난 3월 단행된 검찰 인사에도 김장관의 의지가 뚜렷하게 반영되었다.

김장관의 출신 지역인 TK(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이 크게 약진한 것이다. 한때 호남과 PK(부산·경남)에 밀려 소외되어온 ‘구(舊) 여권’의 부활인 셈이다. 특히 검찰 특수수사의 양대 메카로 불리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특수부 수장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박용석 대검 중수부장은 김장관의 경북고-서울대 후배다. 최재경 수사기획관은 대구고 출신이다. 그는 지난해 ‘BBK 수사’ 팀장을 맡으면서 통합민주당으로부터 현직 검사 신분으로는 최초로 탄핵 대상에 오르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 박정식 중수2과장 역시 경북고 출신이다. 지역 안배 차원에서 배려된 박경호(충북 보은 출신) 중수1과장은 임채진 총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특수 파트를 총괄하는 김수남 3차장 또한 대구 청구고 출신이다. 그는 지난해 삼성 비자금 문제 수사를 위해 특별히 구성되었던 검찰 특별본부팀의 차장검사를 맡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김광준 특수3부장은 대구 영신고 출신이다. 문무일 특수1부장과 윤갑근 특수2부장은 각각 호남과 충청 출신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TK 지역을 중심으로 한 특수통 검사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들었다”라고 평가할 정도다. 김장관 또한 “올해는 중수부의 일이 많아질 것이다. 중수부가 할 만한 사건에 대비해 최강의 진용을 갖춘 것이다”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종찬 민정수석 또한 서울지검 특수1·2·3부장과 대검 중수부장을 두루 역임한 인물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김장관보다 오히려 이수석의 의지가 더 강하게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 민정수석실에서 사정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검찰·경찰·감사원·국세청뿐 아니라 한나라당 관계자까지 총망라된 자체 사정팀이 내부적으로 은밀하게 가동 중이라고 한다.

법무장관실과 민정수석실이 확보하고 있는 지난 정권 비리 자료는 이미 지난해 가을 한나라당이 가동한 ‘권력형비리조사특별위원회’와 올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내부의 별도 첩보 수집팀에서 확보한 자료가 그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지난 10년간의 공기업 비리와 국고보조금 남용 문제, 대북 지원 사업 의혹에 대한 조사가 집중되었다는 후문이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 의혹과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측근 비리 의혹,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및 대우그룹 해체 사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ㅎ사, ㅍ사 등의 로비 의혹 등도 거론되고 있어 향후 검찰 수사가 공기업을 넘어 사기업과 전 정권 핵심 인사들의 비리로 확대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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