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의 ‘썩은 쌀’에 두 번 굶주리는 미얀마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5.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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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이 외부 원조 거부해 희생자 급증…유엔 “자연 재해가 인재로 확대”

ⓒAP연합
미얀마는 근 50년의 군사 통치가 계속되면서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부패한, 그리고 가장 독재적인 나라로 전락했다. 국민의 95%가 하루 1달러로 연명한다. 하늘의 저주일까, 5월3일에는 강력한 사이클론 나그리스가 서남단 해안의 삼각주 곡창지대를 강타했다. 5월11일 군부가 공식 발표한 사망자는 2만8천명, 실종자는 3만3천명, 이재민은 2백만명이다. 유엔 구호기관은 대략 10만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산했다.

자연 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미얀마에서는 폭정이 재해보다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인륜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군부가 국제적 구호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에서 쓰촨(四川) 성 지진을 극복하기 위해 민간과 국제 사회가 한몸이 되어 구호에 나서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서방 세계는 지난해 9월 승려들의 반정부 소요를 잔인하게 진압한 군부에 대해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그 이후 군부는 서방을 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인지 적이 주는 원조는 받지 않고 있다. 군부는 원조를 받으면 권력이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생명보다 권력을 더 중시하는 점에서나 국제 구호 인력의 입국을 금지하는 점에서는 북한 또는 짐바브웨와 비슷하다.

군인이 구호 활동 철저히 통제…2백만 이재민 ‘생지옥’에 방치

국제 사회로부터 구호 물자와 인력이 도착했으나 구호 기관의 활동 지역은 일부로 제한되었다. 가장 피해가 심한 지역에는 단 한 명의 외국 구호인력도 접근하지 못했다. 모든 구호품은 오직 군부를 통해서만 배급된다. 5월12일 ‘무장하지 않은’ C-130 미군 수송기 1대가 겨우 수도 양곤에 착륙 허가를 받았다. 군부는 미국 원조를 수락한 것을 큰 자비를 베푼 것으로 여긴다. 대부분의 구호품은 제한적으로 방출되어 발이 묶여 이재민의 3분의 1 미만이 최소한의 원조를 받고 있다. 결국 군부의 고집으로 자연 재해는 인재(人災)로 재생산되고 있다고 유엔 관리들은 말했다. 희생자는 늘어나고 국제 사회의 압력이 고조되자 군부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졌다. 대규모 외국 구호 인력에 국경을 개방할 경우 통제력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외부 영향력은 커지고 내정 간섭은 심해져 군부 통치가 위태롭게 된다. 그렇다고 외부 원조를 계속 거부하면 급증하는 희생자들을 수습할 수 없다. 삼각주 지류에는 수백 구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어도 수습하는 사람이 없다. 바로 생지옥이다.

미얀마의 인기 영화배우가 최근 피해가 극심한 이르라와디 삼각주에서 구호품을 나누어주다가 군인들에게 제지당했다. 군인이 아니면 그 누구도 피해 지역에 갈 수 없고 구호품도 나누어줄 수 없다. 미얀마 내 일부 부유층도 구호에 나서려다가 군의 경고를 받았다. ‘모든 것은 군부를 통해서만 이재민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 있다. 구호보다는 군의 위상과 통제가 우선시되다 보니 군을 통해 뒤늦게 전달되는 쌀과 식품은 부패했다. 썩은 쌀부대를 받아든 농민들은 개나 돼지도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엔고등판무관실은 지난 주 지방의 군 당국에 쌀을 공급했으나 지금까지 창고에서 썩고 있다.

미얀마를 지배하는 군부는 구호품을 직접 전달함으로써 자신들만이 재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승려들을 구호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이들을 구호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미얀마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외국인과 그들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이 군의 방침이다. 최남단 삼각주 지역에서 피해 상황을 취재하던 뉴욕 타임스 기자는 군 초소에 연행되어 1시간30분간 억류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구호품을 배급하려던 민간인과 군인들 사이에 육박전이 벌어졌다.

미얀마 군부는 민족주의, 편집증, 자주, 외국인 혐오증으로 가득 차 있다. 사이클론은 군부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혔다. 국민을 보호하고 외세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보호자로서의 체면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구호 선박이 도착하면 군부는 즉각 이를 압류하고 군 조직을 통해서만 식량을 나누어준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은 관영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수호신은 군인밖에 없다는 선전을 하기 위해서다. 정부 대변인은 미국이 제공한 모기장, 담요, 생수가 군 보트 편으로 피해 지역에 전달되었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구호 활동은 군인이 등장해야만 이루어진다. 미군 수송기 1대가 도착하는 데도 수일간의 협상이 필요했다. 미얀마의 한 망명자는 최근 정부 기관지에 게재된 사진 한 장에서 군부 내에서 진행되는 미묘한 분열상을 감지했다. 이 사진에서는 군부 1인자 탄 쉐와 2인자 마웅 아예를 포함한 4명의 장성들이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1인자와 2인자는 웃고 있으나 나머지 두 명의 표정은 침울했다. 망명자는 이 사진에 막연한 희망을 걸었다. 군부 내 암투가 이 사진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미군 수송기 착륙 허가를 놓고도 혼선이 빚어진 흔적이 보였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다가 3일 만에 허용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이 미미한 변화에도 희망을 거는 모습은 미얀마 상황이 어쩌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40만 병력을 보유한 군부의 뿌리는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깊다. 군부는 장성을 중심으로 한 요인들에게는 특혜를 베풀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을 보이는 사람은 처형한다. 군부 요인들은 자녀를 특권층 학교에 보내고 GDP의 태반을 독식한다. 군부와의 연줄이 없이는 출세가 불가능하다.

2004년 대숙청 후 군 내에서 반목이 있었다는 보도는 한 건도 없다. 그러나 미얀마에 극적인 변화가 올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지금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극심한 천재지변과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군부의 무능 사이에서 뭔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질 수 있다는 전망들이 나온다. 이런 사태는 군 내부 개혁파에 의한 쿠데타나 대중의 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희망적인 변화는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일부 군부 세력이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정권을 전복하는 것이다.

ⓒ연합뉴스
일본 오끼나와 소재 메이오 대학의 도널드 시킨스 교수는 “지금 변화가 일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변화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연재해는 많은 고통을 주지만 기회도 주는 셈이다. 시드니 소재 매카리 대학 숀 터널 교수는 최근에 쓴 칼럼에서 미얀마는 군 장성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발견된 미얀마의 가스광구에서 연 10억 달러 내지 15억 달러 생산 규모의 천연가스가 송유관을 통해 태국으로 공급된다. 태국은 이 가스로 전력의 20%를 생산한다.

천연가스는 송유관이 건설되는 대로 중국으로도 공급될 예정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이 정도의 돈이면 미얀마 경제를 당장 회복시키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미얀마 예산에는 가스 판매 수익금이 겨우 1% 반영되어 있다. 나머지 돈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군 장성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이 돈의 상당액이 권력을 유지하는 비자금으로 사용된다는 설도 있다. 미얀마의 군부 실세 탄 쉐는 우체국 직원 출신이다. 올해 75세의 노령인 그의 운명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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