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과 결탁한 미술계 정화는 감정가 실명제로”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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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위작’ 파문 일으킨 이동천 박사 / “고미술품 90% 위작 … 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 있다면 공개 토론하겠다”

ⓒ시사저널 박은숙
미술계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또 위작 논란이 불거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보물 제585호로 지정된 정선의 <계상정거도>와 보물 제527호인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 등 위작의 표적이 이제는 대한민국의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까지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천 박사(43)는 최근 출간한 <진상-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에서 정선·김홍도·신윤복·김정희 등 조선 시대 국보·보물급 작품 등의 대부분이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이박사는 중국의 대표적 서화 감정가였던 양런카이(올해 1월 93세로 타계)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장의 수제자로,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감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명지대 대학원 예술품감정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2004년부터 서울대 동양학과 박사 과정에서 작품 감정론을 강의하고 있다.

미술계가 받아들이는 충격만큼이나 반발 또한 강하다. 미술계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신뢰할 만한 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라며 이박사의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다. 한 원로 미술계 인사는 “잊을 만하면 꼭 이런 인사들이 한 번씩 나와서 무책임한 논란을 야기시킨다”라고 불쾌해했다. 그는 노골적으로 “이동천이 뭐하는 작자인가. 듣도 보도 못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개 토론을 할 용의가 없느냐’는 질문은 애써 외면한다. ‘일일이 응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은둔의 미학’을 즐기는 미술계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도 일부 소장 학자들을 중심으로 건전한 움직임도 발견된다. <추사진묵>의 저자인 이용수씨(고미술 연구가)는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추사 김정희 작품에 대해서도 나와 다른 견해를 폈다던데, 이박사가 주장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한 뒤 거기에 대해서 재반박하는 논문을 쓰겠다”라며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정선 작품 등의 위작 주장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라는 문화재청의 발표가 있은 지난 5월21일 오후, 기자는 서울 충정로의 한 사무실에서 이박사를 만났다. 그 또한 “내 책은 당연히 검증을 받아야 하고 혹시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고칠 용의도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박사가 던지는 여러 ‘쓴소리’ 가운데서도 오늘날 위기 상황에 직면한 국내 미술계가 상당히 귀기울일 만한 부분이 많았다.


책이 나오자마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점을 충분히 예상하고 준비한 것인가?
결코 이벤트성으로 만든 책이 아니다. 감히 국내 유일의 미술품 전문 감정학자라고 자부할 수 있다. 한국에서 후학들을 키우고 싶어 2001년 귀국해서 명지대에 예술품감정학과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쳐왔지만 지금껏 한 번도 언론 등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 학자는 글로 말하는 것이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 흥미를 자극하는 말은 당장 눈길을 끌 수는 있다. 하지만 책이란 것은 한 번 발표하면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역사가 된다. 그런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감히 이런 책을 못 냈을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내가 이 책을 통해 거짓 주장을 편다면 그 업은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이 된다.


위작 논란으로 미술계가 또 한 번 큰 위기를 맞는 모습이다.

한 가지 오해하는 점이 있다. 학자들이 위작 논란을 펼치는 것은 위작이라고 해서 다 가짜이고 쓰레기니까 모두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위작도 그 자체로 충분히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어 18세기 김홍도의 작품을 20세기 초 어느 화가가 모방한 위작이 있다고 치자. 그 작품을 통해서 20세기 초 당시 김홍도 작품을 해석한 우리 미술계의 화풍과 인식 정도를 파악할 수도 있는 것이다. 춘향전만 해도 매 시대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 다르지 않나. 수용 미학인 셈이다. ‘버리자’가 아니고 사실은 사실대로 하고 그 작품 그대로를 당시의 예술가적 가치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고미술품 가운데 90% 가까이가 위작이라고 하는 주장은 상당히 충격적인데.

실제 내가 확인한 작품들을 통해 볼 때 그 정도의 비율이 나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심할 수도 있다. 실제 중국 상하이 박물관에서는 박물관 관계자가 직접 “우리 소장품의 90%가 위작이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밝히는 것이 문화적 자존심이지, 그런 사실을 애써 감추고 은폐하는 것이 자존심이 아니다. 정작 숭례문은 홀라당 태워 먹으면서 왜 그런 데서 쓸데없는 문화적 자존심을 찾는지 모르겠다.


위작 논란이 매번 불거지는 것은 왜인가. 국내 감정위원들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인가?
이런 정도로만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인사동에 가서 이동천이란 사람하고 점심 한 번 같이 먹은 화랑 주인 있느냐고 물어보시라. 단 한 명도 없다. 미술품 감정학은 돈이 안 되면 안 하고, 돈이 되면 너무 쉽게 하는, 돈과 결탁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꽃피고 열매 맺기 어렵다. 미술품 감정학은 특히 학문 본연의 그 고결하고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터가 잡히고 뿌리가 내리는 것이다.


책이 나온 후에 미술계의 반응은 어떤가. 혹시 공개 토론 등을 제의받은 적이 있는가?
안 그래도 지금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아쉽게도 아직은 없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당장 평가받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평가받을 것이다. 이 책은 내가 대학 강의에 사용하기 위한 교재용으로 썼다. 뭘 가르치고 싶은데 마땅한 교재가 없는 현실 때문이다. 교수들이 변변한 교재 한 권 없이 ‘찌라시’만 복사해서 한 장씩 툭 돌리고 해서 되겠나. 학생들에게도 말했다. 이 책을 계기로 해서 우리가 한 번 제대로 공부하고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만족한다고. 이 책을 갖고 ‘그래, 어디 한 번 이동천이 잡아보자’ 하고 덤벼들기를 바란다. 그런 단계를 거쳐 책 내용에 잘못이 발견되면 그런 검증 단계를 거쳐 반드시 개정판을 낼 것이다.


국내 미술 감정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의 경매 시장도 여러 번 다녔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경매장에서 팔리는 작품에 진위 보증서를 같이 주는 것이다. 중국 미술품 같은 경우는 경매장에서 진위 보증을 안 해준다. 경매 미술품 역시 주식하고 똑같은 것이다. ‘당신이 잘못 사서 그 가치가 떨어지면 그 물건을 선택한 당신 책임이지 왜 우리가 책임을 지나’, 이런 논리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진짜라는 보증서를 첨부한다. 그것이 얼마만큼의 신뢰도를 보증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보다는 작품마다 그 밑에 감정평가위원이 직접 자신의 이름과 감정 결과를 적어놓는 ‘감정가 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 도록에 감정가의 실명과 감정 이유를 쓰면 된다. 그러면 절대 함부로 감정 못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권과 결탁된 비도덕적인 미술계 인사들이 걸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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