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선 이사, 생선가게 지키는 고양이?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2: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선 이사진은 정상적인 이사회가 구성되기까지 학교 운영을 맡는 한시적인 조직이다. 그러나 관선이사들이 오히려 사학 비리를 조장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이 부도나고 부실해지면 정부 주도의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대학에도 법정관리와 비슷한 제도가 있는데 이른바 ‘관선 이사(임시 이사)’ 제도다. 사립대학이 재단 비리나 학내 분규 등으로 파행적인 운영이 지속되면 교육과학기술부는 관선 이사를 파견한다. 관선 이사 체제는 정상적인 이사회가 구성되기까지 학교 운영을 맡는 한시적인 체제다.

1980~1990년대 국내 대다수 사립대학은 학내 분규로 몸살을 앓았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재단의 전횡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사립대학들에서는 설립자의 경영권이 그대로 대물림되면서 학교를 사유화하는 경향이 많았다. 대학의 경영진을 아들이나 부인, 친인척들로 채우면서 족벌 체제를 구축했다.

일부 대학은 경영진의 전횡이 도를 넘기도 했다. 학원을 위한 재단 운영이 아니라 경영진의 이해와 영리 수단으로 학교를 파행적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재단과의 갈등을 빚으면서 분규가 발생했다. 이를 보다 못한 교육부가 학내 분규 사학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실시했고, 문제가 드러난 재단에 대해서는 경영권을 제한하고 관선 이사를 파견했다.

현재 전국 사립대학 중 관선 이사가 파견된 대학은 22곳이다. 짧게는 1년2개월(동주대학)부터 길게는 20년4개월(조선대)까지 관선 체제를 유지하는 대학도 있다.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관선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대학만 해도 광운대학교(11년 3개월), 상지대학교(14년 11개월), 대구대학교(14년 3개월), 영남대학교(19년 3개월), 한성대학교(10년 5개월), 나주대학(10년 10개월) 등 7개 대학이 있다.

관선 이사의 면면을 보면 특정 정당의 정치인, 시민사회 단체 임원, 교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관선 이사는 정권과 가까운 인사라는 점에서 정권 창출에 대한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세종대학교의 경우 최초 관선 임시 이사장에 김호진 전 노동부장관이 파견되었으며, 그 후임을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이어받았다. 대구대학교의 경우 전·현직 관선 이사들 중 지역 시민사회 단체인 ‘대구사회연구소’ 출신들이 다수 파견되었다. 류창우 현 임시 이사장과 장주효 임시 이사가 대구사회연구소 출신이다. 또 정기숙 대구사회연구소 이사장,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 주보돈 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의원, 박찬석 통합민주당 의원 등이 모두 대구사회연구소 출신들이다.

일부 관선 이사에 정권 창출에 대한 보은 인사 비난도

관선 이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보수 교육단체들은 관선 이사가 파견된 후 대학 경영이나 교육 수준이 더 나빠졌고, 이들이 오히려 사학 비리를 조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사립학교 비리를 척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관선 이사를 파견하고 있지만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라는 것이다.

반면, 진보 단체들은 관선 이사가 파견되면서 학원 정상화가 앞당겨지고 학원 경영이 투명해졌다고 평가한다. 학교 재정과 면학 분위기 등이 나아지면서 학내 민주화가 앞당겨졌다는 시각도 있다. 총학생회도 관선이사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다.

조선대 총학생회 전덕원 부총학생회장은 “관선 이사 파견은 선배들이 이룬 민주화의 산물이다. 다만, 관선 이사의 임기가 짧아 학교에 대한 소속감이 부족하고 임기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개선할 점이다. 관선 이사 추천은 대학자치위원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자질 문제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관선 이사가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재단 운영 과정에서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리면서 일부 학교에서는 비리에 휘말리고 온갖 잡음이 흘러나왔다. 관선 이사 체제에서의 소소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다. 특히 뉴라이트 계열의 교육시민운동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관선 이사들의 비민주적 행태와 비리 사례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관선 이사제의 문제점을 들춰냈다.

이들 단체가 조직한 ‘임시 이사 파견 대학 부정·비리 대책위원회’는 최근 관선 이사 체제에 있는 8개 대학의 부정·비리 의혹을 전면 제기했다. 대책위가 부패·비리 의혹이 있다고 문제 삼은 대학은 세종대학교, 상지대학교, 경인여자대학, 대구대학교, 조선대학교, 광운대학교, 제주산업정보대학, 대구예술대학교 등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8개 대학의 부정·비리 의혹은 크게 대학 건물 공사 집행 관련 비리, 재단 매각 추진, 법인 재산 매각 과정에서의 배임 의혹, 인사 청탁 비리, 국가 지정 유물 불법 반출 등으로 볼 수 있다. 이들 대학 중 일부는 대학 법인의 수익 사업체를 접수해 경영하고 대학 법인 재산의 매각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또 대학 건축비 집행 비리와 업무비 편법 지급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해당 대학들은 사실 무근이거나 이미 무혐의 판결을 받은 것으로 대학을 흠집 내려는 시도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세종대의 경우 국가 지정 유물 등이 개인적으로 반출되었다가 일부가 누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문제는 김호진 임시 이사장 시절인 2005년 9월 세종호텔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유물 1천4백34점을 최옥자씨(주명건 전 이사장 모친) 개인에게 불법 반출하고, 이 중 1천3백62점이 학교로 반환되었으나 익선관 등 72점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세종대와 최여사측은 “유물 보존을 위해 잠시 보관하고 있다가 모든 유물을 반환했다”라고 주장했다. 학교와 재단측은 미소장 유물은 72점이 아닌 45점이며 반·출입 목록 이 작성된 적이 없어 정확한 수치는 전문적인 현황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밝혔었다.

광운대, 38억원 횡령 사건 학교와 무관하다 주장

▲ ⓒ연합뉴스
대책위는 또 세종대는 2005년도 55억원, 2006년도 선로 공사비 등 건축물 관리비 67억원, 2007년 도장 공사 등에 40억원 등 총 1백62억원의 건축물 관리비를 방만하게 집행했다며 업자와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상지대학 학교법인인 상지학원은 2002년 남학생 기숙사 등 건물 3개 동을 신축하면서 당초 1백60억원이었던 공사비를 설계 변경을 이유로 2006년 완공 당시 63억원을 증액해 2백23억4천여 만원으로 산정했다. 이 과정에서 업체 선정,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리베이트 조성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상지대측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박병섭 부총장은 “공사비가 늘어나지 않았다. 입찰부터 시공까지 조달청에 맡겨서 처리했다. 우리가 관여한 것이 단 한 건도 없다. 감사원과 검찰조사도 받았고, 혐의가 없는 것으로 나온 문제다”라고 해명했다.

광운대에 대해서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임시 이사 체제에서 법인금융 자산 20억원과 교비 18억원 등 38억원 횡령 사건이 터졌는데, 임시 이사회가 방치해 피의자가 도주했고,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아 손실이 발생했다며 관련자들의 문책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또 광운대 개교 이래 명예박사학위 수여자가 16명인데 이 중 15명이 임시 이사가 파견된 이후의 수여자로 명예박사학위를 남발했다고 주장했다. 이 중에는 부적격자로 추정되는 인물도 있어서 학위 수여 과정에서의 비리 사실 의혹이 제기된다고 덧붙였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횡령 사건의 장본인은 설립자의 장손인 조 아무개씨였다. 조씨는 법인 관련 업무를 하면서 교비를 횡령했고 도주했으나 광운대 재단측의 고발로 사법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조씨는 현재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고 있다.

광운대 관계자는 “교비 횡령 사건과 관련해 임시 이사회가 방치한 것은 없다. 당사자가 실형을 살고 있고 형이 종결되면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와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고 재단이나 학교는 무관한 것으로 나온 사안이다. 명예박사는 대학원 위원회에서 통과가 되면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학교가 임의대로 남발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다”라고 주장했다.

학교법인인 동원교육학원은 탐라대와 제주산업정보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동원교육학원은 탐라대를 설립하면서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교비를 공사비로 사용했고, 이로 인해 분규가 발생했다. 그런데 관선 이사가 파견되면서 당초 학생 수가 6천명 이상이던 제주산업정보대학의 학생 수가 1천8백명으로 줄어들어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뉴시스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관선 이사로 비리 사학 문제 해결 어렵다”

임시 이사 파견 대학 부정·비리 대책위는 이들 대학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으며 구체적인 물증이 확보된 경인여대,제주산업정보대,상지대,조선대 등 4개 대학 관계자에 대해서는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 조치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8개 대학들은 대책위의 의혹 제기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명희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 대표는 “비리 사학 해소를 이유로 대학에 임시 이사를 파견했지만 파견 이후 경영 및 교육 수준이 좋아진 대학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관선 이사 파견으로는 비리 사학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관선 임시 이사 선임 제도를 없애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관선 이사제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관선 이사가 파견된 사립대학 22개 중 절반인 12개 대학이 임시 이사 파견 사유가 해소되었지만 아직까지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 제25조 3항은 교과부의 임시 이사 선임 사유가 해소되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체 없이 임시 이사를 해임하고 (정) 이사를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가 이를 지키지 않는 모순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정 이사가 파견된 대학은 경인여대와 부산고신대 2곳이다. 경인여대의 경우 임시 이사 파견 사유가 해소되어 정 이사를 대학평의원회측이 3명, 교육부가 2명, 설립자측이 2명을 추천해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부산고신대는 임시 이사 파견 사유 해소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화 절차를 밟았다.

임시 이사 파견 사유가 해소된 대학들은 각기 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조선대 대학자치운영협의회는 지난 1월17일 대학 정상화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제출했다. 협의회는 구성원들은 대학 정상화 과정에서 구 경영진이 배제되고 내부 구성원과 지역 사회 대표들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뽑은 후보들이 정 이사로 선임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학교 정상화가 되더라도 구 경영진이 다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관선 이사가 파견된 대학마다 옛 재단 인사의 참여 여부를 놓고 위원회 내부에서도 논란이 벌어지는 등 법인마다 내부 사정이 복잡해 정 이사 체제 전환까지는 대학들이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를 되찾기 위한 구 재단측도 경영권 복귀를 위해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복귀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어서 양측의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는 관선 이사가 파견되어 있는 22개 대학 중 21개 대학에 파견된 임시 이사 1백53명을 6월 말까지 교체할 방침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