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 넘어 대중차가 몰려온다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5.2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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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차, 동급 한국 차보다 가격 낮추며 파상 공세 …도요타는 전 차종 라인업 선보일 듯

ⓒEPA
국내 수입차업계는 일본 대중차의 본격 상륙을 앞두고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혼다가 3월, 4월 두 달 연속 1천대 판매를 돌파한데 이어 일본의 전형적인 대중 스포츠 세단 전문 업체인 스바루(후지중공업)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그것이다. 수입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혼다의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CR-V와 같은 전략 차종이 동급 국산차보다 가격을 낮춘 것이 성공 요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CR-V(4WD)는 3천4백90만원으로 국산차인 모하비, 베라크루즈 등보다 싸다.

스바루의 국내 상륙은 세계 자동차업계 넘버원 기업으로 떠오른 도요타의 한국 진출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스바루는 경상용차 전문 업체인 다이하츠와 더불어 도요타 계열의 브랜드다. 도요타측은 2009년 자사의 내수용 모델을 한국 시장에 본격 상륙시키기 이전에 스바루를 통해 도요타의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려는 포석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요타는 스바루의 첫 번째 딜러로 코오롱모터스를 선정했다. 코오롱은 BMW 딜러인 코오롱모터스와 별개의 법인을 설립해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벤츠의 딜러인 효성 역시 도요타와 닛산의 딜러 모집에 응모했다. 코오롱과 효성은 일본 대중차 딜러 사업 참여를 위해 전국 요소 요소에 전시장 부지도 확보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BMW코리아와 벤츠코리아 등 유럽계 수입차 업체에서는 자사의 딜러들이 일본 대중차 딜러로 사업을 확대해나가는 데 대해 별도의 대응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딜러를 대체할 만한 국내 사업자들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오롱과 효성은 SK네트웍스처럼 다수 브랜드를 취급하는 복합 딜러 업체를 지향하고 있다.

 

혼다의 CR-V, 국산 베라크루즈보다 싸

스바루는 전통적 세단과 해치백이 혼합된 중형차 레가시(Legacy)와 SUV 모델 포레스터(Forester), 경차인 스텔라(Stella) 등 다양한 대중차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 4륜 구동 임프레자 WRX STI(2천5백cc)는 사양별로 3천5백만~3천7백만원에 팔리고 있다. 병행 수입 등 비공식 경로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이 차들은 6천만원대 초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수입차업계는 일본 대중차들이 2천만원대에서 5천만원대까지 다양한 가격에 시판될 것을 감안해 스바루가 저렴한 수입 스포츠 세단 시장을 구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레가시에 탑재하는 디젤 ‘수평 대향 엔진’은 정숙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푸조가 한국 시장에서 경험했듯이 소형 승용 디젤 엔진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가 관심이다.

수평 대향 엔진은 엔진 내부에서 왕복 운동하는 피스톤을 수평으로 좌우 대칭으로 배치해 부품이 서로 진동을 감쇠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숙성이 뛰어나고 주행 능력도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국산 신차 시장의 소형 승용차 판매는 줄어드는 데 반해 수입 소형차 브랜드의 판매는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4월간 포드는 전년 동기 대비 60%, 혼다는 78.5%, 사브는 무려 1백11.5%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수입차 전체 시장은 전년 동기에 비해 32.2%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어 이들 소형차 브랜드들은 평균치의 2배 이상의 신장세로 주목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 하반기에 일본 대중차인 닛산, 미쓰비시가 들어오면 시장 확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폭스바겐 등 유럽 대중차들이 유로화 초강세로 가격 경쟁력에서 한 발 밀리는 틈을 활용, 향후 일본 대중차들은 국내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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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에 닛산·미쓰비시 가세하면 시장 확대 급물살

그러나 혼다코리아를 비롯한 일본 업체 역시 엔화 강세로 2007년 이후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업체가 차를 수입할 때 엔화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중차 브랜드인 푸조가 1~4월간 전년 동기 대비 7.7%의 소폭 상승에 그친 것은 주력인 디젤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아직은 미흡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벤츠, 아우디의 디젤차 판매 양상은 푸조와는 사뭇 다르다. 디젤차에 대한 국내 시장에서의 부정적인 인식을 푸조가 덜어냈는데, 그 혜택은 다른 브랜드들이 누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푸조의 잠실 딜러가 사업권을 임포터인 한불모터스에 양도했으며, 멀티브랜드 멀티채널 수입차업체인 SK네트웍스 역시 푸조 딜러권을 반납했다.

한편, 수입차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포르세, 랜드로버, 벤틀리 등 브랜드 정체성이 뚜렷하며, 틈새(niche) 시장을 겨냥한 차들의 상승세도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벤틀리의 꾸준한 상승세와 관련해, 벤츠의 한 딜러 지점장은 “벤츠 S클래스와 마이바흐의 중간대를 겨냥한 것이 비교적 성공했다”라고 자평했다. 대중화 단계로 올라서는 포르세는 지방 딜러를 모집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국산차들은 그동안 프리미엄급 대형 배기량의 수입차들만을 겨냥한 고급차 개발에 주력하는 바람에 경쟁력 있는 대중차를 한동안 내어놓지 못한 것이 향후 일본 대중차들의 시장 침투에 허점을 보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도요타는 현대차의 그랜저와 싼타페를 직접 겨냥한 제품 라인업을 짜고 있다. 업계에서는 도요타 캠리와 어코드, 여기에다 닛산 알티마가 경쟁 구도를 만들면 그랜저급 수요층의 관심이 일본차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도요타는 또 RAV4로 싼타페를 겨냥하고 있다. 혼다 CR-V는 물론 싼타페 수요까지 끌어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AV4의 경우 2.4 및 3.5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다.

도요타의 공세 앞에 현대차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 전국적인 A/S 네트워크와 값싼 부품 가격, 마지막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마케팅 전략을 고려하고 있다.

병행 수입차업체들 역시 벤츠 S클래스 등 과당 경쟁을 보이고 있는 차종에서 벗어나 수익은 적지만 닛산 큐브나 혼다 피트 같은 차를 수입하면서 시장 반응을 보고 있다. 실용적이며 연비가 좋은 일본 차들은 언제든 국내 시장을 뚫겠다고 벼르고 있다. 2009년에 한국에 상륙하는 도요타가 코롤라급 이하로 시장을 공략할 것을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전국적인 A/S 네트워크 등 대규모 투자비를 고려했을 때 초창기에는 전략 차종 위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요타의 전략이 성공하면 경차급부터 캠리나 렉서스 그리고 중대형 상용 트럭 시장까지 도요타의 전차종 라인업이 국내에 선보인다. 이렇게 되면 공장만 없을 뿐이지 도요타가 국내에서 현대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자동차 회사로 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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