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부드러워지고 정신은 강해졌다
  • 민훈기 (민기자닷컴) ()
  • 승인 2008.05.2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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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로 복귀한 박찬호 선수의 변신과 전망

ⓒAP연합
지난 5월18일(이하 한국 시간) 박찬호(35·LA 다저스)는 매우 중요한 경기에 등판했다.
지난해 5월1일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고 딱 한 번 선발투수로 나선 이후 내내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다가 올 시즌 초반 LA 다저스에 천신만고 끝에 복귀했지만 그의 보직은 구원투수였다.

그러나 다저스의 5선발 자리가 계속 흔들리자 조 토리 감독은 마침내 ‘박찬호 카드’를 내세웠다. 박찬호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선발 투수로 나선 것은 햇수로 7년 만의 일이었다. 강호 LA 에인절스와의 원정 경기라는 힘겨운 조건이었지만 박찬호는 4이닝을 3안타 1실점으로 잘 막았다. 3회에 결정적인 수비 실책이 나와 투구 수가 급격히 불어나며 선발 투수의 승리 요건인 5이닝을 채우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다. 그러나 최고 구속이 1백53㎞/h를 기록했고, 발군의 커브와 타자의 안팎을 오가는 좋은 볼 배합에 매끈한 제구력으로 ‘역시 박찬호는 선발 투수다’라는 인상을 깊이 심어주었다.

과연 박찬호는 부진했던 지난 텍사스 시절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앞으로 박찬호의 향보는 어떻게 될까.

부상 극복…153km/h 강속구 ‘유연하게 뿌려

지난 3월 스프링 캠프에서 박찬호를 계속 취재하는 동안에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유연함’이었다. 공을 던지는 동작은 물론이고 몸을 풀 때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전혀 다른 선수 같았다.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박찬호는 계속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는 물론 훨씬 부드러운 몸을 유지했지만 유연성이 선천적으로 좋은 선수는 아니다. 특히 부상으로 고생했던 텍사스 시절에는 유연성이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 캠프에서 본 그의 모습은 마치 요가 교사처럼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3년 전부터 계속해온 스트레칭 프로그램이 이제야 확실히 효과를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일하던 이창호씨를 개인 트레이너로 고용한 박찬호는 3년 전부터 그가 고안해준 스트레칭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운동을 해왔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큰 변화라면 부상에서의 완전 회복을 들 수 있다.
시범 경기에서 호투를 거듭한 박찬호는 “지난 몇 년간 이렇게 몸 상태가 좋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등의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은 물론 2년 전에 받은 탈장 수술의 후유증도 말끔히 사라졌다고 했다. 부상과 통증이 사라지면서 두려움 없이 공을 마음껏 뿌리게 되었다. 그 결과 전성기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1백50km를 쉽게 넘기는 강속구를 되찾게 되었다.

세 번째 중요한 변화는 실제 피칭에서 볼 수 있다. 박찬호는 지난 겨울부터 유명 투수 인스트럭터인 톰 하우스의 지도를 받고 투구 동작과 시작점 등의 변화를 주었다. 예전에 박찬호는 투수판의 오른쪽 끝. 즉 3루 쪽을 밟고 공을 던졌다. 그러나 이번 겨울에는 정반대인 투수판 왼쪽 끝을 밟고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타자의 몸쪽을 공략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박찬호는 “예전에도 같은 시도를 해봤지만 결실을 보기 전에 포기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확실히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투구 동작을 최대한 포수 쪽으로 끌고 나가 공을 놓는 역동적인 투구 동작을 되찾는 데 주력했다. 예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공끝의 위력은 바로 릴리스 포인트가 훨씬 앞으로 전진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릴리스 포인트가 앞으로 나가면 포수와의 거리가 그만큼 가깝게 되니까 공의 위력도 좋아지고 제구력 역시 용이해진다. 반면 타자에게는 타이밍을 맞출 시간이 그만큼 짧아진다.
박찬호는 시즌 시작과 함께 마이너리그로 배속 받았다. 시범 경기에서 뛰어난 피칭을 했지만 본인이 보여준 능력과는 무관하게 팀 내 사정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의 트리플A 팀 개막전 선발을 준비하러 내려간 지 하루 만에 다시 빅리그로 호출된 박찬호는 그 후 중간 구원투수로 활약했다.

구위 살아났지만 등판 횟수 크게 줄어

선발투수와 구원투수는 여러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심리적인 상태나 몸 관리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빅리그 초년병 시절을 빼면 10년 이상 주로 선발로만 뛴 박찬호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러나 박찬호는 12번의 구원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2.16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5월8일과 5월11일 메츠전과 애스트로스전에서는 각각 3이닝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틀어막기도 했다. 공의 위력은 갈수록 살아났는데 이는 자신의 구위에 대한 자신감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1승과 함께 자신의 빅리그 첫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삼진을 잡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통산 기록을 보면 9이닝당 8개에 가깝게 삼진을 잡던 박찬호는 올 시즌 구원투수로는 9이닝당 3개를 겨우 넘겨 팀 투수진 중에 최하위였다. 그러나 선발 복귀전에서 에인절스 타선을 상대로 4이닝 동안에 3개의 삼진을 잡으면서 다시 위력을 떨쳤다.

친정팀 LA 다저스에서 재기하겠다는 박찬호의 목표는 일단 성공 쪽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선발투수로의 복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번 에인절스전 선발 호투가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선발진 복귀를 낙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복잡하다.

일단 부상했던 에스테반 로아이자가 조만간 복귀한다. 물론 로아이자는 구위 면에서 박찬호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조 토리 감독의 신임도 많이 잃었다. 하지만 다저스는 연봉 7백만 달러를 받는 로아이자를 어떻게든 써먹어야 할 입장이다. 연봉 50만 달러를 받는 박찬호를 중용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로아이자의 트레이드지만 몸값이 걸림돌이다.

또한 한 달 정도 후에는 제이슨 슈미트가 돌아온다. 내년까지 계약이 남은 슈미트의 올 연봉은 1천2백만 달러, 내년에도 1천2백만 달러가 보장되어 있다. 슈미트가 돌아오면 우선적으로 5선발 자리는 일단 그에게 돌아간다.

결국 박찬호는 6월 중순 정도까지 5선발에게 돌아갈 서너 번의 선발 자리를 위해 일단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리고 불펜에서 박찬호 못지않은 롱맨의 활약을 하고 있는 쿼홍치와도 경합해야 한다.
물론 최근 에이스 브래드 페니가 팔통증으로 부진하고 구로다와 빌링슬리 등도 등판마다 들쑥날쑥한 내용을 보여 또 다른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찬호에게는 결국 주어지는 자리마다 최선을 다해 코칭스태프의 신임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꾸준히 좋은 피칭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도 흔들리는 날이 있다. 하지만 박찬호는 그런 흔들림마저 용납이 안 되는 힘든 위치에 있다. 신뢰를 꾸준히 쌓아왔지만 아직 완전한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박찬호가 호투를 거듭한다면 결국은 선발진에 한 자리를 확고히 굳힐 날이 올 것으로 기대된다. 혹시 그 팀이 다저스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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