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는 ‘PC통신’의 작가들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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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발달로 장르 문학 작가층 두터워져

 
한국에서 대중 문학, 장르 문학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PC통신을 통해서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 등 PC통신을 중심으로 장르 문학을 사랑하는 마니아 팬들이 모여 동호회를 만들고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들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중에 일부는 아마추어 작가로서 자신의 창작물을 동호회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작품들에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호응이 이어지면서 이들은 아마추어 작가에서 프로 작가로 변신하게 되었고, 장르 문학 작가층이 두터워지게 되었다. 인터넷 저변이 확대되면서 PC통신 동호회는 네이버, 다음, 싸이월드 등의 장르 문학 마니아 카페로 옮겨갔다. 인터넷의 발달은 아마추어 작가의 등용문을 더욱 넓혀주었다. 이전까지는 장르 문학 작가가 등단하는 길이 마땅치 않았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가 순수 문학 작가의 등용문이 되었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라자>, 김호식의 <엽기적인 그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등이 온라인에서의 인기를 오프라인의 성공으로 연결시킨 대표적인 예다. 이우혁은 <퇴마록> 시리즈에 이어 <치우천왕기>까지 성공시키며 인기 작가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드래곤라자>는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소설 세계를 바탕으로 한 MMORPG게임도 인기다. 귀여니 역시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등 나오는 작품마다 영화화되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등용문 없는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숨통’

대표적인 장르 문학인 추리소설 작가 배출에도 PC통신과 인터넷이 큰 역할을 했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로 ‘컴퓨터통신문학상’을 받은 황세연, <오시리스의 반지>로 인터넷문학상 대상을 받은 김유철, <마지막 해커>의 황유석 등이 온라인 세상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현재 다음 카페의 한국추리문학연구회(http://cafe.daum.net/007line), 네이버 카페의 한국추리문학연구소(http://cafe.naver.com/sdsbooks), 추리문학동호회(http://cafe.naver.com/churiclub) 등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이들 동호회에는 한국추리작가협회에 등록된 등단 작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추리문학 번역가가 운영하는 일본과 영·미권의 추리문학 팬 카페도 인기다.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인터넷 카페 일본미스터리문학즐기기(http://cafe.naver.com/mysteryjapan)와 영미권 작품을 소개하는 러니의 스릴러월드(http://cafe.naver.com/thrillerworld)는 추리문학 선진국의 작품을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SF 판타지와 로맨스 소설이 인터넷을 통해 오프라인 전반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것에 비하면 추리소설의 약진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수준이다. 여전히 한국 추리소설 작가의 저변은 빈약하고 쏟아내는 작품의 절대적인 양도 미미한 수준이다. 김성종, 이상우, 이수광 등의 작품이 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 추리문학의 유일한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0년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추리소설 작가 정석화씨는 “전반적으로 소설 시장 자체가 침체된 영향도 있겠지만 추리소설의 장르적 특성도 작가 군을 넓히는 데 어려움을 주는 원인이다. 준비 기간이 길고 끊임없이 공부해야만 창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일본과 영·미권의 추리소설이 대거 들어와 성공을 거두며 한국에도 추리소설의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온다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정작가는 “작가들이 추리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에 고무되어 있다. 추리, 스릴러 장르에 대한 영상 콘텐츠 수요가 늘어나면서 작품이 발간되기도 전에 판권 계약을 맺는 사례도 많다. 이런 상황이 역사 추리, 로맨스 추리 등으로 다양한 변형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한국 추리소설의 미래를 밝게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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