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고시’ 강행에 촛불들 ‘불복종’
  • 김지영 안성모 김회권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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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정부는 결국 ‘쇠고기 수입 고시’를 강행했다. 시민·사회 단체들은 이에 반발해 총체적인 저항을 선언하고 나서 나라 전체가 파문에 휩싸이고 있다. 장관 고시 철회를 요구하며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진 촛불 시위는 조직적인 불복종 운동으로 번져가고 있다. 자칫 정부와 국민이 직접 충돌했던 1980년대의 길거리 정치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노동 단체들은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법적 대응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반입을 실력으로 저지하겠다고 외친다. 정치권은 마비 상태다. 한나라당이 장관 고시 이후에도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하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전면 무효’를 주장하며 장외 투쟁에 나섰다. 여야는 쇠고기 정국에 묻혀 18대 개원을 목전에 두고도 원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쏟아지는 민의를 수렴해 해결책을 찾기란 요원해 보인다.

18대 국회, 출발부터 삐그덕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었다. 정부가 5월29일 쇠고기 수입 개방을 위한 장관 고시 발표를 강행하자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권은 여당과의 대화 채널을 닫고 대정부 공동 투쟁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18대 국회는 임기 시작부터 극한 대결로 치닫게 되었다.

오는 6월5일로 예정된 국회 개원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상임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여야 간 논의조차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신임 원내대표 간 회동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초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 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5월29일과 5월30일에 만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

대신 야 3당은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이 5월30일에 6인 회담을 열고 장관 고시 철회를 위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헌법 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야당은 또, 국회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이번 쇠고기 파동의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할 것과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치 회담을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정면 돌파’ 뜻을 밝혀 당분간 여야 간 대화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야권이 강경 투쟁에 돌입하자 “대화와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도록 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장관 고시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대외적으로 쇠고기 고시 발표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보완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홍원내대표는 “속히 보완할 점은 보완해서 국민이 안심하고 식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대통령의 악화될 대로 악화된 민심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지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여당으로서 국회 개원을 언제까지 미루어둘 수만은 없어 야당과의 대화 재개도 모색해야 한다. 정운천 농식품부장관 등 일부 인책 개각과 청와대를 쇄신하는 방안이 당내에서도 제기되고 있지만 야당이 그 정도에서 물러설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개원에 앞서 쇠고기 재협상 투쟁이 아주 시급하고 중요한 국민적 현안으로 떠오름에 따라 개원 논의조차 안 되는 실정이라 안타깝다”라며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문제를 18대 원 구성 논의에 앞서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18대 국회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통합민주당 지도부와 당직자들이 쇠고기 수입 고시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촛불 시위, 언제까지 갈지 아무도 몰라

광화문 ‘촛불’이 좀처럼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불꽃이 더 커지면서 강해지는 형국이다.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촛불 문화제로 시작되었던 집회가 경찰의 강경 진압 등으로 감정을 자극하면서 이제는 ‘반(反) 이명박’ 구호를 외치는 정치 시위로 바뀌었다. 초등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촛불 집회의 ‘초창기’ 주역이었다면 이제는 시민·사회 단체가 촛불 시위를 주도하는 중심축이 되었다. 경찰은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 교육 정책과 대학 입시 제도 변경 등으로 가뜩이나 불만이 많았던 중·고등학생들의 참여가 많았지만, 5월 말이 중간고사 시즌이어서 집회 참석률이 줄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시험이 끝나면 오히려 더 많은 학생들이 촛불 시위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정부도 긴장하는 눈치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우선적으로 학교 급식 등 단체 급식용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얘기가 퍼지면서 학생들의 반발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비운동권’ 대학생들까지 광화문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정황들을 놓고 보았을 때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않는 한 촛불 시위는 장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촛불 집회에 참석한 직장인 장 아무개씨(44)는 “과거 한·미 행정협정(SOFA)도 재협상을 했다. 그런데도 쇠고기 수입 재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얼마든지 재협상을 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경찰도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집회 참가자 숫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혹시라도 집회 참가자 가운데 심한 부상을 당하거나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면 촛불 집회는 더 크게 번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우려했다.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졸속 협상을 벌인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정부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나간다면 앞으로 집회는 더 과격해질 것이고, ‘반 정부 시위’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 집회 참가자들이나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새로운 수입 고시 조건을 고시하면서 유통을 위한 첫 관문은 풀렸다. 지난 2007년 10월에 등뼈가 발견되면서 중단되었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검역이 재개되면서 국내에 우선 묶여 있는 5천3백여 t의 물량이 먼저 풀릴 것으로 보인다. 이 물량은 뼈가 없는 살코기지만 LA갈비와 등심, 곱창 등도 빠르면 6월 하순, 늦어도 7월 초면 새로운 고시의 적용에 따라 속속 들어올 예정이다.

미국산 쇠고기, 국내에 발 붙일까

수입 자체를 거스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쇠고기 수입업체들은 이미 미국 본토로 견적서를 보내는 등 행동을 시작했다. 쇠고기 수입업체인 A사의 한 관계자는 “이미 본보기를 위한 샘플용 쇠고기를 미국 쪽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상당수의 수입업체들이 계약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유통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반대 여론을 고려해볼 때 특히 소매 유통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대형 할인매장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홈플러스 본점측은 “미국산 쇠고기의 판매 여부에 대해 내부적으로 회의를 했는데 결국 팔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롯데마트 본점의 한 관계자도 “현재의 여론을 봤을 때 이런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신뢰가 가기 전까지는 판매를 하지 않을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유통업체의 결정이 미루어질수록 미국산 쇠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때는 늦어질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전국 14개 미국산 쇠고기 보관 창고를 봉쇄하는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모든 유통 경로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A사의 관계자는 “싼 가격 때문에 정육점 등지에서 소량으로 유통시키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입소문도 좀 나고 여론도 가라앉으면 유통의 활로가 트이지 않겠느냐”라며 조심스레 낙관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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