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다 ‘개헌 정국’ 원한다 ‘4년 중임’
  • 감명국 안성모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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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18대 국회 개원을 앞둔 5월26일부터 5일간 18대 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개헌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2백4명이 설문에 응했고, 이 중 78.4%가 개헌 필요성에 공감했다.
제18대 국회 초선 의원들이 5월1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을 둘러보고 있다.

국회가 들썩거리고 있다. ‘개헌론’이 여의도를 뒤덮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당선인 가운데 78.4%가 ‘개헌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현재의 개헌 논의에 대해 ‘전혀 불필요하다’고 답한 의원은 6.9%에 그쳤다.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는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전체 의원의 53.4%가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원내각제’를 지지하는 의원은 25.0%를 차지했다. ‘이원집정부제’를 지지하는 의원도 6.9%였다. 상당수 의원이 이제 권력을 국회로 되돌리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시사저널>은 18대 국회 개원을 앞둔 5월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에 걸쳐 18대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모두 2백4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답변을 거부한 의원은 대부분 “(개헌에 대해) 아직 입장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를 댔다. “당직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개인 의견을 말하기가 적절치 않다”라는 의견을 낸 중진급들도 있었다. 이 밖에 현재 외유 중이거나 검찰 수사 중인 의원들도 제외되었다.

당초 개헌 논의는 지난해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서 불거졌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로 개헌하자”라고 국회에 제안했다. 여야 모두 “현 17대 국회에서 개헌하기는 어렵고,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하겠다”라며 합의안을 발표하자, 이를 수용하고 개헌안 발의 계획을 철회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발끈했던 한나라당이 이제 본격적으로 개헌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강재섭 대표와 홍준표 신임 원내대표, 그리고 국회의장 후보로 유력하게 부각되는 김형오 의원 등 당 지도부가 개헌 필요성을 앞장서서 역설하고 있다.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을 포함한 ‘범 한나라당’이 현재 의회에서 1백82석을 점유하는 상황을 볼 때 이같은 한나라당 지도부의 움직임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개헌에 더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단순 수치상으로도 개헌선인 3분의 2를 넘어선다. 제1 야당인 통합민주당도 개헌에 무작정 반대만 할 입장은 아니다.

“개헌 시기는 1~2년 후가 적당”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개헌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편이다’라고 답한 의원이 92명(45.1%)이었다. ‘매우 공감하고 있으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며 적극적인 개헌 의사를 펼친 의원도 68명(33.3%)에 달했다. 반면 ‘별로 크게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에는 29명(14.2%)이, ‘전혀 불필요한 논의라고 생각한다’에는 14명(6.9%)이 응답했다. 개헌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의원이 전체의 78.4%인 반면, 개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의원은 21.1%에 그쳤다. 10명 중 8명꼴로 개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개헌의 시기는 언제쯤이 적당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이명박 정부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인 1~2년 후가 적당하다고 본다’는 대답이 91명(44.6%)으로 가장 많았다. ‘18대 국회가 개원되는 대로 즉시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는 대답도 54명(26.5%)에 달했다. 현 정부와 18대 국회 전반기에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 총 71.1%를 차지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 임기 말기가 적당하다고 본다’는 대답은 18명(8.8%)에 그쳤다. ‘다음 국회, 다음 정부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는 대답은 8명(3.9%)이었다. 10명 중 7명꼴로 현재 또는 1~2년 내에 조속히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대한민국의 상황에 가장 맞는 정부 형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예상대로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1백9명의 의원이 이를 꼽았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53.4%에 해당한다. ‘의원내각제’를 꼽은 이도 51명(25.0%)이나 되었다. ‘이원집정부제’를 선택한 의원도 14명(6.9%)이었다. ‘5년 대통령 단임제 유지’는 모두 10명(4.9%)이 선택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한 응답자 가운데 6명은 ‘정·부통령제’가 필요하다며 둘을 동시에 꼽기도 했다.

전체 의원 가운데 58.3%가 대통령제를, 31.9%가 의원내각제 및 이원집정부제를 각각 선택했다. 즉, 의원 10명 가운데 6.5명꼴은 청와대에, 3.5명꼴은 국회에 각각 권력의 비중을 실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월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통령 4년 중임제’, 민주당 ‘의원내각제’ 선호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한 이유로는 가장 많은 의원이 ‘정국 안정 및 정책의 연속성’을 들었다. ‘책임 정치 구현’ ‘중간 평가의 필요성’도 그 다음 순으로 꼽혔다. 이 밖에도 ‘민주주의 성숙으로 5년 단임제 역할 종료’ ‘5년은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을 하기에 너무 짧다’는 의견 등이 개진되었다.

의원내각제를 선호한 의원들은 그 이유로 ‘책임 정치 구현’과 ‘대통령 1인에 쏠린 과도한 권력 독점 폐단’을 가장 많이 꼽았다. ‘가장 민주적인 제도’ ‘국민 여론의 원활한 수렴’ 등이 뒤를 이었다. 이원집정부제를 꼽은 의원들 가운데서는 ‘완전 의원내각제는 시기상조’ ‘국민의 대통령 선출권 보장과 의원내각제 기능의 조화’ ‘과도한 권력의 분산’ 등의 대답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 5년 단임제 유지를 주장하는 의원 가운데서는 ‘한국형 민주주의 정착 필요성’을 꼽는 의견이 있었다. 정·부통령제를 선호하는 의원들은 대부분 ‘지역 안배 효과’를 꼽았다.

‘개헌 논의의 절차와 방법으로 무엇이 가장 적당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의원들이 복수로 선택했다. 가급적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방법은 역시 ‘국회 내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93명(45.6%)이 답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개헌은 국회의 책임이자 의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다음으로 ‘국민의 의견을 묻는 광범위한 여론조사가 중요하다’는 대답이 68명(33.3%)이었다. ‘여야가 합의해서 개헌 논의를 위한 특별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55명(26.9%)이 주장했다. ‘학계 등에 자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한 의원은 46명(22.6%)이었다. ‘당론에 따르겠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의원은 4명에 불과했다.

한편, 전체 의원들의 개헌에 대한 입장에서는 각 정파별로 또 선수(選數)별로 미묘한 온도 차이가 나타났다.
개헌론에 대한 전반적인 공감대는 정당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매우 공감한다’는 적극성에서는 선진당이 두드러진다. 57.1%가 이에 답했다. 민주당 역시 ‘매우 공감한다’가 40.0%로, 한나라당(28.4%), 친박연대 및 친박 무소속(25.0%)에 비해 조금 더 높게 나타났다. 또 민주당은 ‘매우 공감한다’와 ‘어느 정도 공감한다’를 합해 85.8%로, 한나라당보다 조금 더 높게 나타났다.

개헌에 대한 시기를 묻는 질문에도 역시 야당이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응답자의 절반(50.0%)이 ‘이명박 정부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인 1~2년 후가 적당하다’라고 답한 반면, 민주당과 선진당은 ‘18대 국회가 개원되는 즉시 논의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각각 40%를 넘어 섰다.

이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개헌론을 끄집어냈다가 사태가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낳을 것을 염려하는 듯하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한나라당의 서울지역 한 초선 의원은 “원래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현재의 상황으로는 개헌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민생 안정이 우선이다”라며 개헌 반대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친박연대 및 친박 무소속의 경우 단 한 명의 의원만 ‘국회 개원 즉시 논의해야 한다’라고 답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민주당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친박 진영 내에도 개헌 추진 움직임에 의혹을 제기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차기 정권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한나라당 주류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지지 모임인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이 최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상대 정파 죽이기 개헌 논의를 꺼낸다면 결국 망신만 당한 노무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정파별의 시각 차이는 정부 형태 선호도 조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61.3%로 가장 많았다. 의원내각제 지지는 15.3%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상대적으로 ‘의원내각제’가 높게 나타났다. 전체 민주당 의원 가운데 33.3%를 차지했다. ‘이원집정부제’(7.9%)까지 포함하면 대통령 4년 중임제(46.0%)와 거의 엇비슷했다. 선진당은 응답자 과반이 넘는 57.1%가 의원내각제를 선호한 반면, ‘대통령 4년 중임제’는 한 명도 없었다. 이원집정부제(21.4)까지 포함하면 무려 78.5%가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를 선호했다.


재선 이상은 의원내각제에 더 관심

개헌을 바라보는 초선 의원과 재선 이상 의원 사이에 시각차도 존재했다. 확실히 초선보다는 재선 이상이 개헌에 더 적극적이었다. ‘매우 공감한다’라는 응답에서 초선 의원은 20.4%인 반면, 재선 이상 의원의 경우는 45.5%에 이르렀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도 ‘즉시 논의해야 한다’라는 답변이 초선은 12.6%였지만, 재선 이상은 40%에 육박했다. 17대 국회에서도 개헌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지난해 초 노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 당시 18대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기억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 형태에 대한 선호도에서도 선수에 따라 시각 차를 보였다. 초선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재선 이상 의원은 ‘의원내각제’를 상대적으로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4년 중임제’의 경우 초선 의원 지지자가 63.5%로 재선 이상 의원(40.6%)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의원내각제’ 답변은 재선 이상이 32.1%로 초선(16.3%)보다 높았다. 의회 경험이 많을수록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현 체제에 비판적이며 의회 중심의 권력 구조로 재편되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시사저널> 조사 결과에 대해 정치 전문가들은 향후 18대 국회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상당히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컨설팅 전문업체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개헌론은 지난해 이미 노 전 대통령이 불을 지폈고 지금 한나라당이 들고 나서는 이상 분명히 발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앞으로 계속 단점만 부각될 뿐, 거기에 대해서는 국민이나 정치권이나 다 공감하고 있다. 또한 대선은 양당제로, 총선은 다당제로 가는 현 한국 정치의 구조도 상당히 모순적이다. 개헌 논의 자체가 불가피하다”라고 전망했다. 김영태 목포대 정치학과 교수는 개헌 논의에 대한 “의원들의 공감대도 넓고 국민의 요구도 제기되는 수준에서 지금이 적당한 시기인 것은 맞다. 문제는, 공감대는 형성되었는데 실질적으로 개헌 정국이 본격화되면 그 다양한 의견들을 한 가지로 집약할 수 있겠느냐는 점에서는 어려움이 예상된다”라며 개헌 논의가 합의점에 쉽게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개헌 논의를 하려면 국회 초반기인 지금부터 공론화해야 한다. 지금의 시기를 놓치고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여러 가지 복합적인 변수로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정치권의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한나라당의 이주영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에 있어서는 청와대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 강력한 의지를 표현했다.

개헌에 대한 필요성과 그 공감대는 한껏 무르익은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국민 여론이다. 향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지지도에 따라서 개헌 정국도 요동칠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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