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휩쓴 킬링필드 2차 오염이 쳐들어온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4: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제시 용지면 양계 농가 현지 르포 / “더럽고 냄새 나서 살 수가 없다”

조류인플루엔자(이하 AI)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다. 지난 5월12일 이후 AI로 의심되는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사실상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전국 곳곳에서 2~3건의 AI가 연속적으로 발생했었다. 정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올해 발생한 AI는 역대 최악의 기록을 세웠다. 겨울철에 주로 닭에서 발생했던 것이 올해는 봄에 발생했고, 오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체 신고 건수 68건 중 33건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양계 농가들의 피해도 극심했다. 약 2개월 남짓한 기간에 5백60여 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폐사하거나 살처분되었다. 1차년도(2003~2004년) 5백60만 마리, 2차년도(2006~2007년) 2백88만 마리였다. 전북 지역의 양계 농가들이 입은 잠정 피해액만 해도 8백억원에 달한다. 최초 발병 지역인 전북 김제시 용지면은 키우던 닭 2백여 만 마리가 모두 살처분되었다. 양계로 생계를 이어가던 용지면 전체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시사저널>은 김제시 용지면의 양계 농가와 살처분한 매몰 현장을 찾아가보았다. 닭 울음소리가 그친 양계장은 살처분 당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처참한 모습이었다. 양계장을 덮고 있던 포장은 곳곳이 찢겨지고 계란을 담았던 용기는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양계 농장 주변에는 거대한 닭 무덤이 만들어져 있었다. 매몰지 옆에는 이곳이 닭의 무덤임을 알리는 매몰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폐사된 닭이 썩어서 뼈 무덤처럼 쌓인 채 방치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AI가 발생한 양계장과 매몰 현장을 돌아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역 당국의 허술한 방역 관리, 살처분 이후 2차 오염은 상상을 초월했다. 김제시 용지면 신정리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는 키우던 닭 1만4천여 마리가 한꺼번에 살처분되었다. 그런데 농장 바로 옆에는 수백여 마리의 폐사한 닭이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방역 당시에 신었던 것으로 보이는 장화까지 널브러져 있었다. 파리떼가 득실거려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반경 10m 지점은 더 심각했다. 족히 1천여 마리분으로 보이는 닭 뼈가 거대한 무덤을 형성하고 있었다. 영화 <킬링필드>의 해골밭을 연상시킬 정도다. 축사 퇴비사에는 물이 잔뜩 고여 있는 상태에서 폐사한 닭과 계란 등이 둥둥 떠다녔다. 고인 물은 시꺼멓게 썩어 있었고, 닭과 계란 등이 뒤섞여 심한 악취가 났다. 금방이라도 뱃속에 있는 음식물이 역류할 정도로 냄새가 지독했다.


야생동물 드나드는 계사, 오염 불 보듯

양계장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온 뒤 물이 고인 계사에는 닭털과 분비물이 뒤엉켜 있는 가운데 비둘기나 참새, 고양이, 쥐 등 야생동물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야생동물에 의한 2차 AI 오염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양계 농장에서 직선으로 30m 떨어진 거리에는 마을 양로원이 있었다. 양로원에 있는 노인들은 AI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AI 발생 현장에서는 허술한 방역으로 인해 2차 감염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앞서 말한 양계 농장의 경우 방역 당국의 손이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 전체가 AI에 안전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김제시나 전라북도의 AI 방역 대책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농장주 이 아무개씨는 “AI 경보가 해제되는 오는 7월쯤에는 다시 닭을 들여와 키울 생각이다. 축사를 새로 지으려면 2억원이 들어야 한다. 지금 있는 상태에서 닭을 키울 수밖에 없다. 결국 AI가 다시 발생해도 쉬쉬하다가 출하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벌금 5백만원을 내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김제시는 지난 4월에도 AI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닭 100여 마리가 관내 배수로에 버려진 채 발견되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김제시 AI상황실은 즉시 매몰 처리하고, 현장 방역 소독을 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김제시의 AI 대책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사후 관리는 물론 예방 대책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에 대해 김제시청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살처분 매몰할 때 시청에서 지도를 나갔다. 농가 수가 워낙 많다보니 신경을 다 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 확인한 후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살처분 매몰지 바로 옆에 심어진 농작물.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에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의심되는 가금류는 구덩이에 묻고 살균 처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구덩이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가금류를 올려놓은 후 생석회를 뿌리는 방식이다. 현재는 땅에 묻는 방법이 최선으로 통한다. 문제는 매몰한 후에 발생하는 2차 오염에는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AI가 발생하면 반경 3㎞에 있는 가금류는 전부 살처분하도록 되어 있다. 가금류뿐만 아니라 계란, 사료, 계란 용기까지 함께 땅에 묻는다. 실제 매몰 현장에 가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 플라스틱 용기의 경우 잘 썩지 않는 특성 때문에 환경 오염으로 직결된다. 매몰지에서 나는 악취와 침출수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매몰지 주변의 마을 주민들은 닭이 썩으면서 나는 악취로 인한 온갖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관계 당국은 목초액을 살포하는 방식의 원시적인 대처에 머무르고 있다. 악취는 길게는 수개월에 걸쳐서 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침출수는 지하수와 토양 오염의 주범이다. 대다수 매립지는 마을이 인접해 있고 논과 밭을 끼고 있다. 매몰지에서 나오는 침출수는 지하로 흘러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논과 밭으로 유입된다. 그곳에 심어진 채소와 곡물이 고스란히 침출수를 빨아들이게 되어 결국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 땅속으로 스며든 침출수는 해충까지 발생시켜 2~3차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매몰지에서 역류된 침출수가 주변의 하천이나 논과 밭으로 흘러들어간다.

<시사저널>이 찾은 매몰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제시 용지면 용수리에서는 침출수가 솟아나와 마을 주민들이 심한 악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마을 주민 정 아무개씨는 김제시청에 냄새가 나지 않게 조치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김제시는 관할이 아니라며 농업진흥청에 미루었다고 말한다. 이러는 사이 열흘 정도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방치되어 인근 논밭으로 흘러들어갔다. 정씨는 “작은 구덩이에 많은 닭을 묻으면서 침출수가 역류했다. 시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관할을 미루다가 나중에 톱밥으로 덮고 목초제와 탈취액을 뿌렸다. 냄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AI 발생 지역 주민들에 대한 예방 관련 홍보 거의 없어

<시사저널>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는 매몰지 바로 옆에 파와 딸기를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AI 발생 지역 주민들에 대한 예방 홍보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제시 용지면 장신리에서는 살처분 매립지에서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살균을 위해 사용한 생석회와 사체에서 나오는 메탄가스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발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는 가축 전염병이 발생할 때 환경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매몰법을 연구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전북도 내의 환경전문기업인 ㅊ사가 개발한 ‘바이오스톤’ 제품을 사용해서 시범적으로 매몰한 결과 악취와 침출수 문제 등이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밝혔다. 전북대학교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김진상 부소장(교수)은 “친환경법으로 매몰을 실험한 결과 탈취 효과가 우수하고 살균·소독 등의 효과가 증명되었다”라고 강조했다.

AI가 발생한 지역의 주민들은 지하수 오염을 우려하며 상수도 개설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상수도 설치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북 익산시의 경우 지난 2006년에 AI가 발생한 지역에서 아직까지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고 있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익산시는 해당 2천7백60세대 중 1천3백77세대만 상수도를 설치해 주었다. 국고 보조금 74억100만원, 시비 9억5천2백만원이 들어갔지만 9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전북도나 시의 재정 상태가 열악해 중앙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한다.
익산시청 상수도과 박병진 계장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어 시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민들의 사정을 감안하면 빨리 조치를 취해주고 싶지만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속만 태우고 있다. 올해 발생한 지역에도 25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제시와 완주군의 경계 지역에 있는 가축 방역 검문소.

살처분 매몰시에는 플라스틱 재질의 계란 용기까지 묻는다.

현지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2차 AI 발생시 닭 2만8천5백 마리와 계란 60t을 땅에 묻었던 전북  익산지역의 한 농가는 1천5백만원을 들여 지하 암반수를 팠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매몰 후 악취와 침출수, 지하수 오염 등으로 숱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매몰지에는 지금도 썩은 물이 고여 있었고 악취가 났다.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실에서는 살처분 후 환경 오염 방지와 주민들의 상수도 설치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손의원은 “AI 발생 후 매몰하는 것이 세계 공통적인 방법이지만 최상의 방법인지 의문이다. 현행 매몰법을 환경 오염 방지와 자연 친화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민 건강을 해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서 대안을 마련하겠다. AI 발생지역에 한해서는 국가가 의무적으로 상수도를 연결해 개인 급수를 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라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양계 농가들의 피와 같은 닭과 오리가 최근 5년여 동안 1천만 마리 이상 살처분되었다.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국가 차원의 방역 대책, 예방책 등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탁상 행정이 지속되면 더 큰 재앙이 닥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때는 닭과 오리가 아니라 국민이 위험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