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날개’ 디자인을 디자인하라
  • 양형욱 (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08.06.03 15: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ᆞLG “디자인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해마다 막대한 돈 쏟아 부으며 ‘올인’

보르도 TV’ ‘벤츠폰’ ‘블루블랙폰’ ‘초콜릿폰’ ‘프라다폰’ ‘휘센 에어컨’…. 삼성과 LG가 글로벌 시장에 선보여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글로벌 넘버1’ 전자제품들이다. 이들 제품의 공통점은 경쟁사가 생각하지 못했던 ‘창조적 디자인’이 적용된 것.

“디자인은 21세기 기업의 마지막 경쟁력”이라고 말했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말처럼 디자인은 글로벌 기업의 필수 경영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1.7%)이 디자인을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인식했다.
특히 한국의 간판 라이벌 대기업인 삼성과 LG는 ‘디자인 경영’에 ‘올인’하고 팽팽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성과 LG는 자존심을 건 ‘디자인 경쟁’ 속에서 독특한 디자인을 내세운 대박 제품을 속속 내놓으면서 ‘전자 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삼성과 LG의 디자인 경영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비결은 최고경영진이 직접 주도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디자인은 글로벌 기업의 필수 경영 요소

삼성의 경우 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당시 이회장은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이로 인해 신경영 차원에서 디자인 경영이 시작된 것. 이후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 삼성은 지난 2001년부터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디자인경영센터를 조직하는 등 디자인 경영에 전력 투구한다. 이를 통해 CEO 주재의 디자인위원회를 통해 주요 디자인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해나갔다.

특히 2005년에 삼성그룹의 디자인 경영은 또 한 번 도약한다. 이건희 회장이 ‘제2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독창적 디자인과 유저 인터페이스 체계 구축’ ‘디자인 우수 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 문화 조성’ ‘금형 기술 인프라 강화’ 등의 전략을 제시했다.

LG도 구본무 회장이 디자인 경영의 전면에 나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구회장은 지난 3년여에 걸쳐 강력한 디자인 경영을 이끌어 디자인 경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구회장은 지난 2006년 4월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와 LG화학 인테리어디자인 센터를 방문했다. 올해 5월에도 서울 역삼동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를 2년 연속 방문하는 등 디자인 경영에 고삐를 조이고 있다.

구회장의 디자인 경영은 계열사 CEO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특히 LG전자 남용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남부회장은 지난해 ‘2010년 글로벌 톱 3’ 달성을 위한 6대 전략 방향 중 하나로 ‘기술 혁신과 디자인 차별화’를 꼽았다. 초콜릿폰, 샤인폰, 아트디오스 등과 같은 디자인 경쟁력을 갖춘 전자제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여 ‘글로벌 톱 3’에 진입한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LG생활건강 차석용 사장도 창조적 디자인 역량 확보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한국 기업 중 글로벌 시장에서 디자인 능력을 가장 먼저 인정받은 곳은 삼성이다. 삼성은 일찌감치 디자인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글로벌 디자인 능력을 확보했다. 삼성은 미국, 일본, 중국, 영국, 이탈리아 등에 7개의 해외 디자인센터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디자인 인력만 4백50여 명이다.

삼성과 LG는 디자인 경영에 몰입하고 나섰다. 왼쪽은 전자제품 대리점에 전시된 각종 TV.

삼성은 단순히 상품 디자인 개발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컬러, 소재 및 뉴비즈니스 개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연간 연구개발(R&D) 투자에 6조원가량을 쏟아붓고 있고, 이 중 상당 부분을 디자인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이같은 삼성전자의 디자인 경영에 대한 노력은 풍성한 결실로 돌아오고 있다. 최근 산업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재단이 선정하는 세계 일류 상품 보유 현황에서 삼성전자가 28개로 국내 1위를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 2006년 출시한 보르도TV가 대박 행진을 거듭하면서 세계 디지털TV 시장의 트렌드를 바꿨다. 보르도 TV는 삼성전자가 와인잔 모양을 형상화해 5각형으로 LCD TV를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가 보르도 TV를 출시한 이래 해외 경쟁사들은 잇따라 보르도 모방 제품을 출시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보르도 TV의 후속인 크리스털로즈 TV 시리즈도 올해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판매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에서도 지난 2004년 출시한 블루블랙폰이 1천2백만대 팔려 디자인 삼성의 명성을 떨쳤다. 앞서 승용차 벤츠와 연계한 명품 디자인으로 평가받은 ‘벤츠폰’도 1천3백만대가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올해 들어서는 터치스크린형 휴대전화인 ‘햅틱’이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또 하나의 밀리언셀러 제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뛰어난 디자인의 개인용 초소형 흑백 레이저 프린터 ‘스완’과 복합기 ‘로간’을 선보여 역시 화제를 모았다. 이들 제품은 애플숍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보르도 TV, 세계 디지털TV 시장 트렌드 바꿔

LG는 몇 년 새 삼성을 능가하는 디자인 경영 능력을 보여주었다. LG는 경영진의 디자인 경영 의지에 힘입어 단기간 내 글로벌 디자인 분야 신흥 강자로 우뚝 섰다는 평가다. LG는 이미 휴대전화, 에어컨 등의 디자인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다.

LG전자는 지난 2006년 6월 디자인을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디자인 경영’을 선포했다. 이후 개발 초기 단계부터 디자인을 주축으로 상품 기획, 설계, 마케팅 등 관련 부서가 협업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또, 해외 디자인 조직도 지역별 고객 특색에 맞게 바꿔나가고 있다.

LG화학도 지난 2006년 서울 논현동에 2천6백40여 ㎡(8백평) 규모의 인테리어 토탈 전시장인 ‘LG화학 인테리어 디자인센터’를 개관했다. 이 센터는 LG화학에서 생산하는 창호, 바닥재, 벽지 등 각종 인테리어 자재를 전시하는 동시에 고객의 소리를 듣는 창구로도 활용하고 있다.

최근 LG화학 디자인연구소도 전시장과 같은 공간으로 옮겼다. 또, 중국 현지에 디자인연구소를 개설하는 등 해외 디자인 역량 강화에도 힘쏟고 있다. LG생활건강의 경우 디자인센터 조직을 창조적인 활동 중심으로 완전히 바꿔나가고 있다.

LG는 디자인 능력을 향상키기 위해 해외 유명 디자이너나 선진 디자인기업과의 협력에도 발벗고 나섰다. LG전자는 휴대폰 부문에서 항공, 자동차, 가구, 주방기기 등 분야 10여 개 해외 디자인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나 진행 중이다. LG화학도 중국을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글로벌 디자인 네크워크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LG생활건강의 경우 지난해부터 7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아웃소싱전략팀을 신설해 해외 디자인 아웃소싱을 진행하고 있다.

LG는 올해 창립 61주년을 맞아 디자인 경영을 한층 강화하고 나섰다. LG는 올해 디지인 경영에 1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앞서 LG는 지난 2006년 7백80억원, 2007년 8백80억원을 투자하는 등 디자인 분야에 투자를 늘려왔다. 이런 자금과 인력을 바탕으로, LG는 계열사별로 △LG전자가 전자제품 감성 디자인 △LG화학이 인테리어자재 디자인 △LG생활건강이 화장품의 고객 중심 디자인 등을 중점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