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보다 날 새는 ‘초여름 밤의 열기’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8.06.0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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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유로 2008/우승 후보는 스페인ᆞ독일…크로아티아 등 다크호스 이변 나올까

6월7일, 스위스와 체코의 대결을 시작으로 ‘유럽의 월드컵’ 유로 2008이 막을 올린다. 축구 잘하는 나라가 많은 유럽에서 험난한 예선을 통과한 ‘엄선’된 팀들의 토너먼트인 까닭에, 한 경기 한 경기의 수준과 밀도가 FIFA 월드컵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 바로 그 대회다. 잠 못 이루는 6월의 밤을 선사할 유로 2008을 미리 그려본다.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보면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리스였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의 ‘대타’로 출전한 덴마크가 불세출의 수문장 피터 슈마이켈을 앞세워 왕좌에 오른 적도 있지만, 그리스의 우승은 그보다 더 놀라웠다. 이것은 물론 ‘이변’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팬들은 이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특히 유럽 클럽축구 무대에서 경합하는 정도가 옛 시대에 비해 더 심해져 있는 요즈음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유럽 리그의 선수들은 자국 리그와 컵뿐 아니라 예전보다 경기 수가 늘어난 챔피언스리그 혹은 UEFA컵의 살인적 일정들을 소화한다. 만만치 않은 클럽의 수효 또한 늘어나서 사실상 매 경기가 어려운 경기다. 유럽 클럽 무대에서의 성공이 선수 개개인에게 실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니는 작금의 상황에서, 결국 선수들은 각자의 클럽을 위해 온 힘을 쏟은 후 국가 대항전으로 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특히 클럽 대항전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은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 시즌 막판까지 가슴 졸이는 승부들을 치러야 했던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일수록 남아 있는 에너지는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선수들에게 팀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악영향은 커질 수 있다.

유로 2004 결승전에서 그리스에게 패한 뒤 포르투갈의 스콜라리 감독이 호나우두 선수를 위로하고 있다.

클럽에서 진 빠진 선수들 많으면 불리해

2002 한·일월드컵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떠올려보면 알기 쉽다. 당시 우승 후보 1순위로 평가받던 프랑스는 틀림없이 그 월드컵의 ‘가장 실망스러운 팀’으로 기록된 채 집으로 돌아갔다. 4년 전 유로 2004에서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유럽 최상위 리그를 보유한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4강에 오르지 못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유로 2004 첫 경기 선발 선수들을 대상으로 직전 시즌 소속 클럽에서의 출장 횟수 평균을 집계할 때 스페인이 전체 1위(46경기), 잉글랜드가 2위(45경기), 프랑스가 4위(42경기)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변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유로 축구이지만 그래도 ‘액면가 전력’의 우위를 자랑하는 팀들이 있으니 이름하여 우승 후보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가 꼽는 이번 대회의 ‘3강’은 스페인과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다.

예선 탈락한 잉글랜드와 더불어 ‘국가 대항전의 역사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이력을 지닌 두 팀 중 하나’인 스페인은 이번에까지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 경우 ‘정말로 안 되는 팀’으로 낙인찍히게 될 듯하다. 현재의 멤버 구성 및 선수들 각각의 시즌 활약도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특히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 세스크 파브레가스(아스널), 마르코스 세나(비야레알),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바르셀로나), 세르히오 라모스와 이케르 카시야스(이상 레알 마드리드)가 펼쳐보인 소속 클럽에서의 활약상은 괄목할 만한 수준.

라울과 구티(이상 레알 마드리드)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아쉬움이 스페인 팬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을 공산이 크기는 하지만, 주력 선수들 대다수가 최절정기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스페인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전통적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하는 ‘지역 감정’도 요즈음의 스페인 선수들에게는 그렇게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다. 다만 스페인의 진짜 약점-이것도 잉글랜드와 유사하다-은 플레이 스타일 및 전술상의 융통성 부족이라 할 만한데, 미드필드에서의 ‘소득 없는 패스 게임’의 연속이 바로 그것이다. 감독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독일월드컵에서의 실패를 거울 삼을 필요가 있다.

유로 2008 국제친선축구대회에서 스위스의 요한 폰탄텐(왼쪽)과 독일의 미하엘 발락(오른쪽)이 볼을 다투고 있다.

스페인의 약점은 전술상 융통성 부족

이번 유로에 임하는 독일의 최대 강점은 일단 ‘대진운’이다. 지극히 어려운 조에 포함되었던 유로 2000(포르투갈, 루마니아, 잉글랜드, 독일), 유로 2004(체코, 네덜란드, 독일, 라트비아)의 아픈 기억과는 달리, 크로아티아, 폴란드,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경합하는 독일이 조별리그 단계에서 실패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이 단계를 통과하고 나면 A조 국가들이 있다. 포르투갈, 체코, 터키, 스위스가 도사리고 있지만 독일에게는 충분히 희망적이다. 지난 대회와 달리 이번 유로에서는 A, B조 팀과 C, D조 팀의 만남은 오직 결승전에서만 이루어진다. 물론 유로에서 만만한 상대는 하나도 없으나, ‘대진이 친절할 때 그 행운을 확실히 거머쥐는 것’이야말로 독일의 강점이자 특기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강력 우승 후보의 대열에서 독일을 제외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부상 등의 사정에 기인해 주전급 선수들이 뛰어온 클럽 경기 수가 다른 국가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 이는 다른 팀 선수들보다 독일 선수들이 좀더 ‘신선한’ 상태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아스널의 벤치를 데웠던 수문장 옌스 레만 및 클럽에서의 경기력이 최고조가 아니었던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독일이 안고 있는 불안 요소다.

마르코 마린(보루시아 뮌헨글라드바흐), 저메인 존스(샬케)와 같은 선수들이 경험 부족의 이유로 제외된 것도 약간은 아쉽다. 프란체스코 토티(로마), 알렉산드로 네스타(밀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 챔피언’ 이탈리아는 독일월드컵 시절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분데스리가를 평정한 루카 토니(바이에른 뮌헨)의 최전방, 월드컵 일등 공신 안드레아 피를로(밀란)와 ‘젊은 피’ 다니엘레 데 로시(로마)의 중원, 파비오 카나바로(레알 마드리드)와 마르코 마테라치(인터)의 노련한 수비, 카시야스 부럽지 않은 쟌루이지 부폰(유벤투스)이 이탈리아의 골격을 유지하는 한, 그 어떠한 팀도 이탈리아를 쉽게 물리칠 수 없다. 여기에 ‘악동’ 안토니오 카사노(삼프도리아)를 가세시킨 감독 로베르토 도나도니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카사노가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이탈리아의 공격에 ‘예측 불가능성’을 더해줄 만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카나바로와 마테라치의 더 높아진 연령이 결정적인 순간 실점을 허용할 확률을 높이고 있다는 대목은 아주리 군단의 틀림없는 불안 요소다. 또한, 어느 한 팀도 강력하지 않은 팀이 없는 ‘죽음의 C조(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루마니아)’에서 탈출하기 위해 출혈이 예상된다는 점도 문제다.

‘3대 우승 후보(?)’ 이외에도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는 그들이 ‘좋은 날’이라면 그 어떠한 상대도 무너뜨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시즌을 보낸 포르투갈의 간판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번 유로를 어떻게 치를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크호스’ 셋을 거명하자면 크로아티아와 루마니아, 러시아다. 주 득점원 에두아르도(아스널)의 공백이 아쉽지만 토트넘의 새로운 영입 선수 루카 모드리치와 니코 크라니챠르(포츠머스)가 버티는 크로아티아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직력이 매우 좋다. 루마니아 또한 ‘죽음의 조’에서 의외의 생존자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했다. 아드리안 무투(피오렌티나), 크리스티안 키부(인터)에다 새로운 스타 도리안 고이안(스테아우아)의 존재가 팀 전체에 믿음을 준다. 외관상 다소 부족한 전력이나 감독 거스 히딩크의 ‘비길 데 없는 토너먼트 경험’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러시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러시아 클럽 제니트가 이룩한 UEFA컵에서의 놀라운 성공 또한 선수들의 자신감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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