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으로 통하는 ‘진실의 문’ 아고라로 듣고 아 프리카로 본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6.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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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토론방ᆞ개인 방송 사이트, 새로운 대안 언론으로 주목…현장 ‘천연 정보’ 교류 활발

▲ 이제는 집회 현장의 모습을 집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아프리카 BJ 장요한씨가 촛불 집회를 취재하고 있다. ⓒ시사저널 황문성

2002년 네티즌들은 현실 세계로 처음 뛰어들었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는 12월14일의 ‘10만 범국민 평화 대행진’은 네티즌 ‘앙마’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광화문을 촛불로 밝게 수놓았다. 근조의 꼬리표가 메신저마다 달렸고 정보가 커뮤니티를 통해 발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온라인까지 연결되었다. 과거의 아날로그 집회와는 다른 광장 문화의 모습을 우리 사회에 각인시키는 계기였다.

2008년에는 또 다른 ‘앙마’가 있었다. 지난 4월6일 다음 아이디 ‘안단테’를 사용하는 황 아무개군(17)은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청원하는 서명을 ‘아고라’에 제안했다. 4월17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지만 “국민 주권과 맞바꾼 졸속 협상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서명에 동참하는 네티즌들이 늘어났고, 5월4일에는 100만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는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온라인 광장이다. 고대 그리스의 중심에 위치한 아고라에서 그리스 시민들은 정치와 사상을 자유롭게 토론했다. 그 어원을 빌린 다음의 아고라에서도 수많은 네티즌의 의견이 교류된다. 사람이 아니라 의견과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아고라는 쇠고기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부와 대척점에 섰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이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동안 아고라에서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진보 매체의 글이 ‘펌질’당하며 전파되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두고 정부가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넘어갈 때 아고라에서는 우희종 서울대 교수,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의 구체적인 반박글이 확산되었다.

정운천 농림부장관이 장관 고시를 강행하자 촛불을 들고 행동하자고 서로 촉구한 것도 아고라에서였다. 네티즌들은 서로의 반응을 알아보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아고라로 몰려들었다. 아고라는 온라인 시위의 밥상을 제공했을 뿐 음식을 장만한 것은 네티즌이었다. 최영재(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다음 아고라는 직접민주주의적 성격을 띤 곳이다. 정보를 공유하고 틀린 정보와 맞는 정보를 추려내며 의견을 교환한다. 민주적, 대안적 공간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고리언들, 촛불 집회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정치 토론

이런 아고라를 정부는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까. 지난 주말 집회에 참여했다가 연행된 한 시민이 ‘라디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데 경찰이 ‘당신 아고라 회원이냐’고 묻더라. 한 시간 조서 작성하는 동안 아고라 들어가는 방법을 설명하는 데 30분이 걸렸다. 위에서 내려온 매뉴얼에 포함된 질문이라고 하더라.” 촛불 집회를 놓고 보수 언론들도 이미 배후설을 접었다. 소통이 어려웠던 과거에는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 집회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모바일과 인터넷이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대에는 집회의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오직 정부만이 의견과 피드백만이 난무한 아고라를 집회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아고리언(아고라 이용자들)들의 결집된 힘은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EBS <지식채널 e>는 지난 5월12일부터 16일까지 매일 1회씩 인간 광우병의 사례 등을 보여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방송을 계획했다. 1회와 2회는 정상적으로 나갔지만 14일분 방영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의 사내 게시판 글이 아고라로 이동하면서 “상부의 압력에 의해 중단된 것 아니냐”라는 외압설이 제기되는 등 온라인은 들끓었다. EBS는 사과와 함께 15일부터 정상적으로 남은 후속편을 방영했다. 정부의 대운하 계획을 폭로한 김이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지키자는 운동,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에 항의하는 운동 등도 아고라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아고리언들은 오프라인에서도 힘을 낸다. 지난 6월3일 열린 촛불 집회에서 박 아무개씨(27)는 아고라의 깃발 아래 서 있었다. 광화문에 모인 아고리언들은 대략 20명. 박씨는 비 때문에 꺼진 촛불을 다시 붙이며 “아고라는 선동하는 곳이 아니라 소통하는 곳이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선동당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다른 아고리언은 “감정적인 의견도 나오지만 이성적인 의견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전경으로 제대한 네티즌이 전경의 약점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오히려 그것을 나무라며 비폭력적인 집회를 해야 한다는 댓글이 더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집회가 잠깐 소강 상태에 이르자 아고리언들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즉석 정치 토론을 벌인다. 한 아고리언이 “민노당은 그나마 열심히 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힘에서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니 정장 차림의 아저씨가 “그럼 민주당은?”이라고 묻는다. 민주당에도 날선 비판이 날아든다. “재·보궐 선거를 의식해서 이제야 뛰어든 것 아니냐.” “숟가락만 얹는 것도 기술적으로 얹어야지 너무 티 난다.”

그제서야 정장 차림의 남자는 “나는 민주당 아무개 의원의 보좌관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다”라며 신분을 밝혔다. 민심을 듣기 위해 은근슬쩍 섞여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이야기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5·18 때문에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라며 아고라를 높이 평가했다.

최영재 교수의 평가도 비슷하다. 그는 “아고라의 경우 민주적 공론장으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해결을 도모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언론의 기능이나 역할의 측면에서 볼 때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대안적 매체의 가능성을 체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제도권 언론이 결정적 위기를 맞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촛불 집회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개인 방송이 주로 이루어지는 ‘아프리카’다. 6월3일 거리에서 만난 BJ(인터넷 방송 자키) 장요한씨(24)는 내장용 웹카메라가 설치된 노트북을 한 손에 들고 헤드셋을 낀 상태로 중계를 하며 촛불 집회를 돌아다녔다.


아프리카 BJ “나만의 방식으로 소외된 곳 찍는다”

그가 집회 현장에서 주로 찾는 곳은 텔레비전 카메라에 나올 만한 곳이 아니다. 집회 현장에서 소외받거나 카메라가 잘 비추지 않는 곳을 찍는다. 장씨는 “아프리카를 통해 보기만 하다가 직접 집회에 나왔는데 하루하루가 충격의 연속이었다. 기자들도 사실을 알리려고 하지만 그 이면에도 감춰진 진실이 있고, 그것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장씨가 들고다니는 장비는 내장용 웹카메라가 달린 노트북, 외장배터리 두 개, 헤드셋, 그리고 무선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해 준비한 30기가짜리 와이브로가 전부다. 집회 중계를 하기 위해 모두 새로 장만했다.

뉴스 가치와 방송 시간에 얽매이는 기성 언론과 달리 아프리카 BJ는 자신의 기호에 따라 움직인다. 장씨는 자신의 뉴스 가치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난 5월31일 집회가 끝날 무렵 청운동에 있었는데 전경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고 사람들은 연행되었다. TV 카메라는 모두 연행된 사람을 쫓아가는데, 나는 마지막까지 인도에 있는 사람을 연행한 여경들을 쫓아갔다. 그중 한 여경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인권이 있으니 카메라 치우라고. 그래서 나도 말했다. 저 연행당한 사람들은 인권이 없냐고. 그러니 아무 말도 못하더라.”

아프리카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다. 아프리카를 운영하는 나우콤의 자료에 따르면 촛불 집회가 절정에 이르기 시작한 5월25일부터 6월2일까지 아프리카를 통해 집회 현장을 지켜본 사람은 총 4백68만명에 이른다. 특히 지난 6월1일 일요일의 동시 시청자 수는 최고 10만명에 달했다. 만만치 않은 영향력이다. 촛불 집회를 생중계한 BJ의 숫자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내보내는 화면을 다시 재전송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대략 2백명이 넘는다고 나우콤측은 추산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위력은 집회 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다. 황용현씨(61)는 아프리카 방송을 하고 있던 장요한씨에게 다가와 “이거 아프리카냐?”라고 되물었다. 기자가 아프리카를 아냐고 묻자 “진중권씨 방송을 가끔 봤다”라며 인터뷰를 자청한다. 지나가는 청소년들은 장씨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파이팅입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나의 대안 언론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현장에서 알 수 있었다. 나우콤 홍보실의 김미령 대리는 “정제되지 않는 정보가 직접 전달된다는 점이 주목을 받는 것 같다. 그리고 방송 중에 채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용이하다.”라고 아프리카의 장점을 설명했다.

아고라와 아프리카는 서로 도우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아프리카를 찾는 사람에는 아고리언이 많다. 아프리카에서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는 BJ들도 아고라에서 주로 정보를 얻는다. 아고라는 주류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와 반대되는 내용들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이고, 아프리카는 방송 카메라가 보여주지 않는 곳을 시청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비슷한 성격의 두 곳이 촛불 집회를 통해 새로운 대안 미디어로 떠올랐다.

인터넷 여론이 정보의 편향성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황근 교수(선문대)는 “한국의 인터넷 공간은 다른 의견이 교차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기 확신을 하는 성격이 강하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퇴출된다. 이런 속성이 정상적인 공론장으로 작동하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물론 반대의 이야기도 있다. 최영재 교수는 “악의적인 소문이 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초기 현상이라고 본다. 대안 언론으로서 정착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이런 것들이 걸러지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기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고라의 메인으로 걸려 있는 글은, 아이디 ‘세숫대야’가 쓴 ‘촛불 집회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이다. 삐딱하게 바라보는 글도 메인에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고라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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