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촛불에 기름 들이부은 말, 말, 말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6.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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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실직하고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과 서민, 어려운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참가한 것 같다.”
- 6월3일 롯데호텔에서 열린‘제18대 국회의원 당선 축하 리셉션’에서


인사말치고는 너무 과했다. 현실에 대한 인식 차이가 지구와 안드로메다만큼 멀었다. 이번 촛불 집회의 특징 중 하나는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명품 숄더백에 굽높은 구두를 신고 행진하는 여성도 숱하게 보였다. 이의원에 따르면 그들 역시 ‘백수’인 셈이다.

여의도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두고 이상득 의원의 책임을 따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민심을 요동치게 만든 ‘고소영’ ‘강부자’ 내각 인선의 책임이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게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박비서관은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만 11년을 했다. 이의원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내각 인선에서도 느껴진 국민과의 간극은 이번 쇠고기 정국에서도 좁혀지지 않는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미국 정부로서는 재협상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한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고시 연기에 실망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미국 쇠고기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더 배우기 바란다.”
- 6월3일 유명한 외교통상부장관을 만나고 나온 자리에서


버시바우는 반대 여론에 밀린 정부가 “조금만 양보해달라”라고 읍소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게다가 우리나라 국민의 소양을 한방에 무시해버렸다. “와전이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6월3일 촛불 집회에서 국민대책회의의 사회자가 “먼저 들를 곳이 있다”라고 말했을 때 주위에서 “미대사관?”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외교관들은 어떤 사안에 대한 평가를 요구받을 때 추상적으로 받아치거나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자칫 자신의 말 실수가 본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인데, 버시바우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협상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지금 국민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권위 있는 단체의 말보다는 일부 주부협회에서 나오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더 믿는다.”
- 6월3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말로 생긴 구설에 자주 오르는 전여옥 의원이 이번에도 도마에 올랐다. 촛불 집회를 두고 여러 발언들이 나오는 가운데 전의원은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출범식에서는 참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발언 이외에도 주목받을 만한 이야기를 또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되는 것을 절실히 바라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 6월3일의 이 발언이 언론의 눈길을 끈 것은 당연하다.
권위 있는 단체는 정부 쪽 전문가를 이야기할 텐데, 전체적인 반응은 “도대체 누가 전문가인데?”로 모아진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미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육류수출업계의 결의도 ‘답신’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재협상이든 수출 자율 규제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 6월5일 과천청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6월3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국민이 걱정하고 다수의 국민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들여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밝혔다. 대책을 내어놓으면서 원인도 자체 진단했다. “국민의 눈높이를 우리가 잘 몰랐던 점이 적지 않다. 오늘을 계기로 새롭게 시작하는 심정으로 일해달라.”

정운천 장관은 심기일전해 6월5일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바로 미국 육류수출업체의 ‘자율 규제’. 말이 자율 규제지 수출업체 중 하나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수출하기 시작하면 나머지 업체가 손가락만 빨고 있을 리 없다. 정운천 장관은 국민의 눈이 신발 밑창에 붙어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일까. 최근에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 정장관을 불쌍하게 여기는 반응마저 나온다. 한 네티즌의 위로다. “정장관님, 시키는 대로 하느라고 수고 많네요.”

방송인 정선희

“나라 물건을 챙겨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리 광우병이다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면서 촛불 집회에 참석하더라도 환경오염을 시키거나 맨홀 뚜껑을 가져가는 사소한 일들이 사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다.”
- 5월22일 MBC <정오의 희망곡> 방송 중


정선희는 이날 방송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한 청취자의 사연을 전하다가 너무 앞서 나갔다. 큰 것만 챙기다가는 작은 것을 챙길 수 없다는 교훈을 전하려고 했지만, 하필 큰 것이 촛불 집회였다. 도둑질과 촛불 집회를 연관시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도둑질 같은 상식적이지 않은 일에 촛불 집회를 거론한 이유가 뭐냐?’ ‘잃어버린 자전거 사연이랑 촛불 집회가 무슨 상관이냐’라며 청취자들의 항의가 줄을 이었다.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것 외에 경제적인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선희가 판매하는 화장품은 홈쇼핑에서 방송 보류를 당했고, 정선희가 진행하는 <정오의 희망곡>의 협찬사들 중 일부 업체는 청취자들의 항의로 협찬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최근에는 ‘DJ를 하차하라’는 압박까지 받고 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

“쇠고기 문제는 너희끼리 떠들어 대. 어디 감히 국회의원 앞에서….”
- 6월1일 서울 고덕동 근린공원 강동구청장 보궐선거 유세 현장에서


시민 김 아무개씨가 갑자기 유세장에 대고 “쇠고기 문제나 잘 해결해달라”라고 이야기했다. 순간 열 받은 김충환 의원. 실언을 했다. 게다가 김의원의 운전사 등 한나라당 유세단 4명은 김씨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입술과 옷이 찢기는 봉변을 당했다. 다치기는 김씨가 다쳤는데 잡혀간 것도 김씨였다. 경찰은 “내가 지금 야당 의원인 줄 알아?”라는 김의원의 고함에 눌려 폭행당한 김씨를 유세 방해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김씨의 이야기는 인터넷을 배회했고,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김의원의 블로그로 출동한 네티즌들은 ‘김씨는 순수한 여론 광장인 인터넷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오염시키고 있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블로그는 놀이터가 되었다. 김의원 사무실의 관계자들이 열심히 댓글을 지우고 있지만, 이미 8천개를 돌파한 네티즌들의 비판 댓글은 1만개를 향해 쾌속 진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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