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대의의 복원 여당부터 시작하라
  •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 ()
  • 승인 2008.06.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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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정치’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72시간 연속 촛불 집회’로까지 확산하는 양상이다. 촛불 집회 참가자는 다양하다. 유모차에 갓난아기를 태운 젊은 엄마와 아빠, 초등학생 또는 중학생 아들딸의 손을 잡은 아빠와 엄마, 여럿이 어울려 나온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이들에게 촛불 집회 현장은 생활과 놀이 문화 그리고 정치가 어우러진 곳이다.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정치 체제다. 따라서 거리의 정치는 ‘정치의 실패’와 ‘대의(代議)의 실패’이기도 하다. 이는 정당이나 의회 그리고 선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견 표출, 집약, 조정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영역’이 사라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 집회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시작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의 의사 소통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들은 생활과 건강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럼에도 정당은 퇴행적인 위계 질서와 조직 문화에 갇혀 있다. 한나라당은 친박 인사들의 복당 여부와 당권 경쟁이 최대 관심사였다. 당과 여권 내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이 전부였다.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국민에게 ‘대안 세력’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최근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지지도가 상승하지 않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정당이 자신들의 대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정당의 실패’다.

이렇다 보니 18대 국회는 개점 휴업 상태다. 국회법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최초의 임시회 집회일은 임기 개시 후 7일로 하고, 후반기 원 구성을 위한 집회일은 전반기 의장단 임기 만료 5일 전까지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8대 국회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반쪽짜리 개원식을 치렀다. 여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은 돌아오라”고 외쳤고, 야당들은 의사당 앞에서 ‘재협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며 장외정치를 계속했다. 다양한 민의를 수렴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각계각층 국민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풀어주어야 하는 ‘민의의 전당’은 없었다. ‘의회의 실패’다.


CEO형 대통령에게는 ‘하의상달형 여당’의 필요성 더 커

계속 이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우리 정치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 ‘정치의 복원과 대의의 복원’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치 기능과 여당 역할의 인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동체의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집약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이 역할을 해야 할까? 여당이다. 한나라당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민심을 대변하는 여당의 역할을 인정하고 시의적절하게 적극 수용해야 한다. 단기적인 업적을 중시하는 CEO형 대통령에게는 ‘하의상달형의 여당’이 더욱 필요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당과 의회 그리고 선거는 정부와 국민의 소통을 담당한다. 정치의 복원과 대의의 복원은 여당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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