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판’ 흑자 낸 진보 정당 ‘광장 정치’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06.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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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라…진보신당도 ‘길거리 방송’ 등으로 주목

▲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공동대표가 국회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무효 및 FTA 비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10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서울 세종로 네거리.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언대에 오르자 수만 개의 ‘촛불’이 일제히 ‘강기갑’을 연호했다. 강의원이 쉰 목소리로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관철시켜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주자”라고 외치자 시민들은 우렁찬 함성으로 이에 호응했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손학규 대표와 통합민주당 소속 의원 20여 명은 촛불을 든 채 이 광경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촛불 거리에서 강기갑 의원은 최고의 ‘스타 정치인’이다. 거대 정당의 어떤 거물급 정치인도 강의원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현장에서 강의원을 만나면 너도나도 사인 요청에 여념이 없다. 아예 시청 앞에 책상을 놓고 사인회를 갖기도 했다. 단발머리 여학생에서부터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주부까지 길게 늘어선 줄은 마치 유명 연예인의 사인회를 방불케 했다.

현장에 설치된 민노당 천막에서도 ‘강기갑 열풍’을 확인할 수 있다. 천막 안에는 강의원을 응원하는 메모지가 빼곡히 붙어 있으며, 강의원의 건강을 걱정해 찾아오는 시민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도 응원 물결은 넘쳐난다. 김태준씨는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정치가입니다. 항상 국민 곁에 있어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강기갑 의원은 촛불이 타오르기 전부터 ‘준비된 스타’였다. 지난 4·9 총선에서 한나라당 최고 실세이던 이방호 사무총장을 꺾고 경남 사천에 진보정당의 깃발을 꽂을 때부터 인기를 예고했다. 그의 표현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지만 사천 시민들은 ‘알곡 중의 알곡’을 선택했고, 영근 알곡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의 최전선에 섰다.

‘쇠고기 청문회’에서도 그는 진가를 발휘했다. 강의원은 정부의 대외비 문건을 공개하는 등 정부의 말 바꾸기 행태를 강하게 질타하며 ‘쇠고기 정국’을 주도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마법사 ‘간달프’와 이미지가 비슷해 ‘강달프’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강의원의 대중적 인기가 올라가면서 당도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노당은 ‘반 타작’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17대 국회에서 10석을 차지했지만 18대에서는 절반인 5석만을 확보했다. 지역구에 출마해 ‘살아서 돌아온 의원’은 강의원과 대선 후보였던 권영길 의원 두 명뿐이다. 정당 득표율도 5.68%에 머물러 비례대표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강기갑 열풍’이 민노당을 제3당으로 끌어올려

총선 결과를 놓고 ‘국민이 보수화했다’는 분석이 잇따랐지만, ‘쇠고기 정국’에서 타오른 촛불의 장엄한 물결은 ‘그렇지 않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실질적인 삶 속으로 얼마나 가까이 다가섰느냐’다. 강의원이 한나라당 텃밭에서 유력 정치인을 맞상대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그는 “아시다시피 제가 똑똑해서도 아니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4년 동안 오로지 제 할 바를 열심히 했다. 이것 하나가 재산이었는데 사천 지역 서민들께서 이것을 좋게 평가해주셨다”라고 밝혔다. 실제 강의원은 농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서는 단식 농성도 마다하지 않으며 농민의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또 사천 마을 곳곳을 돌면서 지역 주민들과 직접 소통을 이어왔다.

민노당은 이러한 ‘강기갑 모델’을 전범 삼아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민생 중심의 정책을 개발하고, 서민들이 살아가는 현장 중심으로 활동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촛불 집회에서 또 한 번 확인한 ‘성장 전략’이다. 원내대표로 선출된 강의원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지난 5월 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그는 거대 양당의 원내 수장을 제치고 ‘가장 기대되는 신임 원내대표’로 꼽히기도 했다.

▲ 경남 창원시에서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현수막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노당 혁신재창당위원회가 6월1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진보 정당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무엇인지 잘 나타났다. 민노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이어 6.7%의 지지율로 제3당의 지위를 확보했다. 지난 총선 지지율에 비해 다소 높아졌지만 반등의 폭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국민의 정치 성향은 보수 정권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37.0%)와 진보(30.9%)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었다.

지지율 하락 원인에 대해서는 3명 중 1명이 ‘투쟁적이고 과격해서’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비전이 없어서’라는 응답도 비슷하게 나왔다. 이는 민노당이 서민 정당을 내세웠지만 정작 정치 일선에서는 서민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평가로 받아들여진다. 민노당의 지역 활동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다’라는 답변이 80.4%로 나타난 것도 현장과 괴리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발로 뛰는 정치’ 강조하는 진보신당도 촛불 거리에서 ‘재도약’

진보 정당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진보신당도 촛불 집회를 통해 재도약 중이다. 지난 4·9 총선에서 원내 진입에 실패한 진보신당은 원외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로 뛰는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촛불 거리는 그 자체가 정치 현장이 되었다. 진보신당 당원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칼라TV’는 시민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듣는 ‘토론의 장’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심상정·노회찬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직접 리포터로 나서 집회 현장을 방송하거나 시민들과 토론을 펼치면서 주요 현안을 집중 조명한다.

당원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와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진행하는 ‘길거리 방송’은 네티즌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경찰에 연행까지 된 진교수는 단연 ‘촛불 스타’가 되었다. 최근에는 살해 협박 전화를 받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몇 년 전 ‘헤딩라인 뉴스’를 진행해 인기를 모았던 이명선 아나운서도 진행자로 합류했다.

조대희 총괄프로듀서는 “‘칼라TV’는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인터넷 방송이다. 스태프 대부분이 자기 일을 마치고 와서 방송을 한다. 식사비 등 운영비도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진보신당이 운영하는 상황실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강제 연행 때도 도움을 줘 각광을 받았다. 법률적인 조언을 요청하는 시민들에게는 당 변호인단이 전화로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진보신당은 또 ‘진보신다방’을 운영하며 이곳을 찾는 시민들에게 무료로 차를 제공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현장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높은 호응을 바탕으로 한반도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교육 자율화 등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로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지난 6월5일에는 제2 창당을 위한 5대 실천 과제와 조직 정비 방안을 확정지었다. 진보신당은 2010년 지방선거를 정치적으로 도약할 계기로 삼고 ‘거리 정치’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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