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망령’ 또 살아나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6.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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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상장 폐지 건수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불성실 공시 법인 지정 건수도 거래소의 4배

▲ 코스닥 시장에 퇴출 바람이 불면서 상장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위는 한 증권사 앞에 설치된 상징물. ⓒ시사저널 황문성
코스닥에 퇴출 바람이 불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벌써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업체가 시장에서 쫓겨났다. 증권선물거래소 집계(6월10일 기준)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 폐지된 코스닥 업체는 총 16곳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퇴출된 업체가 7곳임을 감안하면 불과 반 년여 만에 지난해보다 2.3배나 늘어났다.

손재식 증권선물거래소 홍보팀 대리는 “16개 업체 중 세 곳은 거래소로 이전하거나 M&A(인수·합병)로 인해 상장이 폐지되었다. 그렇다 해도 지난해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코스닥 업체의 상장 폐지가 급증한 것은 안팎으로 악화되고 있는 경제 상황의 여파로 풀이된다. 고유가와 고환율에 따른 세계 경기 동반 하락에 자본 조달 능력이나 마케팅이 취약한 코스닥 기업이 먼저 ‘유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상장 자격 못 갖춘 기업 수두룩해 퇴출 더 늘어날듯

그러나 한편에서는 코스닥 기업의 투명하지 못한 경영 관행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김용상 증권선물거래소 상장제도팀장은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코스닥에 등록된 업체 중에서도 자격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업체가 또 퇴출될지 걱정이다”라고 토로했다.

김팀장에 따르면 코스닥 등록 기업 중에서 상당수가 현재 퇴출 대상이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곪을 대로 곪은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해 버티고 있다.

김팀장은 “최근 몇 년간 기업 상장이나 퇴출 요건이 많이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코스닥 기업의 경영 관행이 많이 투명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여전히 증자나 외부 차입, 혹은 사명 변경 등을 통해 교묘하게 퇴출을 피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코스닥 등록법인이 갖는 프리미엄 때문에 퇴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변칙 경영을 하는 기업들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코스닥 기업을 인수해 우회 상장을 노리는 기업이 적지 않다. 이들 기업에 프리미엄을 얹어 경영권을 매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상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래서 변칙 경영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시장에서 버티려는 기업들이 있다”라는 것이다.

코스닥 업체의 퇴출은 최근 몇 년간 감소세를 보여왔다. 지난 2004년(40곳)과 2005년(40곳)을 정점으로 2006년 10곳, 2007년 7곳으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상장 폐지 기업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반등 장세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지수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이런 징후로 보고 있다. 임태근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신용 경색 우려가 줄어들면서 코스피지수는 최근 한때 1천8백선을 회복했다. 하반기까지 2천선을 재탈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코스닥지수는 여전히 6백30~6백50선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시장에 대한 신뢰가 많이 훼손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코스닥이 상승세를 타지 못하는 것은 NHN, 메가스터디, 태웅, 하나로텔레콤 등 시가총액 상위 업체들의 부진도 한몫하고 있다. 이들 종목의 주가는 기관의 매도 공세가 지속되면서 한 달째 횡보 중이다. 그러나 시장이 신뢰를 상실하면서 이런 약세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부 업체의 경우 노골적으로 공시 위반이라는 ‘악수’를 택하기도 한다. 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6월10일 기준으로 코스닥 기업의 불성실 공시 법인 지정 건수는 53건으로 거래소 11건을 크게 앞서고 있다. 이 가운데는 최근 1년간 불성실 공시 지정 횟수가 1.5회 이상인 곳도 11개사에 달했다.

지난 6월9일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된 케이에스피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6월2일 대주주인 서울레저그룹이 연루된 8백51억원 규모의 횡령 및 배임 사건 발생을 확인하고도 1주일이 지난 6월9일에야 공시를 냈다.

마스터테크론, 아이메카, 쏠라엔텍, 플러스프로핏, 테스텍, 쓰리소프트, 티티씨아이 등도 모두 비슷한 이유로 최근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쓰리소프트의 경우 2년간 공시 위반 횟수가 3번이나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미국 코넛티켓 소재 세인트로렌스시웨이(STLS) 사와 태양광 사업에 나섰다고 밝혔다. 당시 이 회사는 “STLS 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음으로써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차세대 태양전지 핵심 기술을 고스란히 이전받게 되었다”라고 공시했다.

그러나 문제의 STLS 사가 NASA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사회를 통해 조용히 사업을 중단했다. 소송 관련 공시도 지연시켜 주가는 반 년여 만에 10분의 1 토막이 났다.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투자자 피해 막기 위해 관련 법 정비 서둘러야”

이렇듯 최근 들어 코스닥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제재가 사실상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과거의 경우, 2년 동안 불성실 공시가 3회면 상장 폐지되는 이른바 ‘삼진아웃’ 제도가 운영되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현재는 단 하루 거래가 정지되는 것이 벌칙의 전부다.

관련 업계에서는 투자자 피해 예방과 시장 투명성 확보를 위해 관련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관계자는 “걸릴 것을 각오하고 공시를 위반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증권선물거래소측도 현재 정부와 함께 제도 강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김용상 팀장은 “정부에서도 현재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기업의 코스닥 상장 및 퇴출 규정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현재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2006년 폐지된 ‘삼진아웃제’를 복원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섣불리 건드렸다가 시장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제도 개선 자체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김팀장은 “상장 기업의 퇴출 자체가 투자자 피해로 직결되는 만큼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관련 제도가 가시화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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