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ᆞ김홍도가 왜 살아 돌아올까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06.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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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두 천재 화가의 삶, 드라마ᆞ영화로 복원

▲ 드라마 은 동명 원작소설(위)을 재구성한 것이다. ⓒ시사저널 임영무
조선 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동시대를 살았으면서 조선 시대 인간 군상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냈던 두 천재의 이야기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가 그것이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일본의 천재 풍속화가 토슈샤이 샤라쿠가 김홍도일지 모른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학설을 영화화하는 <샤라쿠-조선 밀정>도 제작을 앞두고 있다.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에서 오원 장승업을 다룬 바 있으니 조선의 3대 화가인 ‘삼원’이 모두 극화되는 셈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뿌리깊은 나무>의 작가 이정명이 지난해 발간해 인기를 모은 베스트셀러 동명 원작소설을 드라마로 재구성한다. 문근영이 신윤복 역을, 박신양은 김홍도 역을 맡았으며 지난 4월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총 75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바람의 화원>은 20부작으로 기획되어 9월부터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김민선, 김영호가 각각 신윤복과 김홍도로 분하고 추자현이 합류한 <미인도>는 <식객>의 전윤수 감독의 연출로 얼마 전 촬영을 시작했다.

두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인물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는 만큼 유사점을 지닌다. 여성 연기자 문근영과 김민선을 캐스팅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신윤복이 여성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이같은 설정은 이미 원작소설 <바람의 화원>에서 보여준 것이다. <미인도>는 원작이 없지만 소설이 나오기 전에 이미 같은 설정으로 기획에 들어갔기 때문에 표절 시비에서는 자유롭다.

신윤복을 남장 여자로 가정한 만큼 드라마와 영화 모두 스승과 제자이자 라이벌 관계인 두 인물 사이의 긴장감에 로맨스를 첨가한다. 차이가 있다면 드라마가 정조를 끌어들여 궁중에서의 암투와 사도세자 죽음의 배후를 도화서를 중심으로 한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나간 반면에, 영화는 화원이 되기 위해 여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신윤복의 사랑 이야기를 극의 중심에 놓는다는 점이다.

팩션의 인기와 ‘정조 재해석’ 열풍이 뒷받침

<바람의 화원> <미인도> <샤라쿠-조선밀정>은 모두 팩션(facttion) 작품이다. 팩션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가 신윤복을 여자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고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팩션의 특성 때문이다. 팩션은, <다빈치 코드>가 소설과 영화 모두에서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소설·드라마·영화 업계 전반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팩션 형식에 담아내기에 좋은 소재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김홍도, 신윤복이라는 인물과 이들의 작품을 알고 있지만,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는 부분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특히 신윤복은 <근역서화징>에 나오는 두 줄을 제외하고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화원인 신한평의 자재이고 ‘속된 그림을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라는 후문만 떠돌 뿐이다(소설 <바람의 화원> 서문 참조). 김홍도는 그나마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는 편이지만 그가 샤라쿠일지 모른다는 학설이 제기될 만큼 충분치는 않다. 기록이 적다는 것은 작가가 상상력을 투영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설 <바람의 화원>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림에 대한 작가의 독자적인 해석과 상상력이 결합되어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얼개를 구축해냈기 때문이다.

▲ 드라마 에서는 문근영(왼쪽), 영화 에서는 김민선(오른쪽)이 신윤복 역을 맡았다.
 
김홍도, 신윤복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정조에 대한 재해석 열풍의 연장선에 있다. 이는 김홍도, 신윤복이 정조 시대의 인물이라는 점과 <바람의 화원>에서 정조를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최근 종영된 MBC <이산>으로 정점을 찍은 정조 열풍은 <한성별곡-정> <정조암살미스터리-8일> 등의 드라마와 김탁환의 <열하광인>, 이상우의 <정조대왕 이산> 등의 소설 등이 쏟아지면서 안방과 서점가를 뒤흔들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궁중과 조정의 암투, 숱한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즉위해 개혁 정치를 펼쳤지만 독살설이 나올 정도로 의문의 죽음을 맞은 정조의 인생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정조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김홍도, 신윤복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다. 이들은 화가로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역사 인물이다. 김홍도가 서민들의 일상을 단순화된 배경에 거친 붓 터치로 활기 있게 묘사했다면, 신윤복은 기생과 양반의 모습을 섬세한 묘사로 차분하게 그려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데 표현 방식이나 화법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던 두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를 도화서라는 새로운 배경 안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산>에서 처음으로 도화서와 화원들의 이야기를 선보였던 이병훈 감독은 지난 6월10일 <이산>의 종방연에서 “조선 시대 도화서라는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면서 김홍도를 다루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바람의 화원>의 편성과 캐스팅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이 아쉽다”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퓨전 사극 등이 역사 인식 왜곡한다” 우려도

지금 방송가와 영화계에서는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 외에도 ‘사극 열풍’이라고 할 만큼 많은 수의 사극이 제작, 방영되고 있다. KBS <대왕 세종>처럼 비교적 정통 사극에 가까운 작품도 있지만 소재와 형식 면에서 기존 사극을 많이 벗어난 퓨전 사극이 대부분이다. 안방에서는 이준기가 주연한 SBS <일지매>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고, KBS <최강칠 우>는 6월 17일부터 방송을 시작한다. <일지매>는 이승기를 주연으로 내세워 MBC에서도 제작 중이다. SBS의 <일지매>는 캐릭터만 가져와 재구성했고, MBC의 <일지매>는 고우영의 원작만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의 경우처럼 같은 소재 다른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크린에서는 블록버스터 <신기전>이 개봉 대기 중이고 조인성 주연의 <쌍화점>, 여균동 감독의 복귀작 <1724 기방 난동 사건>도 제작이 마무리 단계다. 이 중에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강변칠우’ 사건(벼슬길이 막힌 서자 7명이 악행을 저지른 일)을 바탕으로 한 <최강칠우>, 세종대왕 시기에 개발된 로켓포 신기전을 다룬 <신기전>은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팩션 작품이다.

퓨전 사극과 팩션 열풍 속에서 이들 작품이 책보다는 드라마와 영화로 역사를 접하는 청소년들의 올바르고 정확한 역사 인식을 방해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역사 교육이 등한시되고 있는 요즘 역사에 관심 없는 청소년들의 관심을 돌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정명 작가는 “잘못 아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보다 나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외면하기보다 허구의 이야기로라도 그 시대와 인물을 접하고 흥미를 가진다면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서적이나 탐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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