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도 바꿔도 지워지지 않은 ‘형님’의 그림자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6.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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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편에서 이상득계 건재 과시/교수 그룹 지고 관료들 대거 입성

ⓒ연합뉴스


국정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그림이 크게 바뀌었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 전원이 교체되었다. 하지만 감동은 없었다. 사람을 바꾸는 데 소극적인 이명박 대통령도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의 힘에 떠밀려 대개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이 출범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청와대 상층부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면서 향후 이명박 정권의 행로가 주목되고 있다.

정권 출범과 함께 야심차게 추진하려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좌초했고, ‘한·미 FTA’ 또한 비준이 불투명하다. 공기업 민영화는 뒤로 밀렸고 국민통합도 공허한 수사가 되었다. 지지도가 20%대로 떨어진 가운데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더디다. 외부적으로는 고유가 파고가 서민 경제 밑바닥을 바탕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이런 상황에서 이대통령이 어디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찾아 난국을 헤쳐나갈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 때문에 이대통령이 사람을 바꾸면서 전략적인 구도를 가지고 실행에 옮긴 것인지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른바 국정의 ‘그랜드 디자인’ 속에서 사람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측면에서 ‘사람을 바꾼’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사람을 통해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다.

메시지 분명치 않은 물갈이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는 넘어갈 수 있겠지만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둔 내년 말 정도까지 이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이라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피동적으로 이루어진 이번 내각과 청와대 개편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핵심적인 문제는 ‘경제 성적’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개편된 청와대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 가지다. 교수의 시대가 가고 관료의 시대가 왔다는 것과 여전히 ‘이상득계’가 청와대 핵심을 이루며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모습을 드러낸 이명박 청와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교수’였다. 비서실장을 맡은 류우익 실장을 비롯해 박재완 정무수석, 김중수 경제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박미석 사회정책수석 등이 교수 출신이었다. ‘교수 청와대’에 비판적인 여론이 일자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나서 “이들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사람들이다. 베스트 중의 베스트를 뽑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대통령의 말은 현실화하지 못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 논문 표절 의혹 등이 줄줄이 제기되더니 급기야 대개편의 홍수에 대부분 떠내려갔다. 개편에서 자리를 옮긴 박재완 수석의 경우는 학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관료, 국회의원을 지내 현장 경험이 있다는 차별성이 있다. 그동안 여권 내부에서는 교수 출신 수석들과 관련해서 관료들에 대한 장악력과 현안을 파악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 개편 결과는 애초 제기되었던 “교수 출신들은 실무에 밝지 못하고 쓴소리를 잘 하지 못하며 추진력이 약하다”라는 평가를 확인해주었다.

ⓒ연합뉴스

교수들이 떠난 자리를 메운 것은 관료들이다. 박병원 전 재정경제부 차관이 경제수석으로, 김성환 외교통상부 2차관이 외교안보수석으로, 강윤구 전 보건복지부 차관이 사회정책수석이 되었다. 역대 정권을 보면 관료들은 보통 후반에 중심부로 진입했다. 초반에는 정권 나름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친위 그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가 개혁 피로도가 극점에 달하고 문제가 노정되면서 관료들이 마무리를 하는 수순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출범 초부터 정권이 위기에 몰리면서 관료들의 진출이 빨라졌다.

관료들의 진출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일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맥·학맥 등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료 조직은 강한 일체감이 있다. 일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정권이 추진하고자 하는 이른바 개혁 작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는 점이다. 정권 핵심부에서 장기적인 국정 운영 플랜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관료들의 핵심부 진출은 오히려 관료들에게 포위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은 개혁의 후퇴로 나타난다. ‘이명박 정권’이라는 색깔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청와대 개편을 깊이 들여다보는 이들은 ‘이상득’에 주목한다. 이의원의 비서실장을 지낸 장다사로 정무1비서관이 민정1비서관으로 이동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이 있을 때 내부 사정·감찰 기능을 기획조정비서관실에 뺏겼던 민정수석실은 이번에 그 기능을 다시 가져왔다. 민정1비서관실은 이와 함께 민심 동향을 파악하는 일도 맡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이번 개편을 계기로 국무총리실의 사정 기능을 흡수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과거 민정수석실 이상의 힘을 갖는 쪽으로 개편이 이루어졌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국면으로 빠르게 중심 이동
정무수석 비서관이 된 맹형규 전 의원도 이의원과 친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박영준 전 비서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정인철 기획조정비서관은 박 전 비서관이 만든 선진국민연대의 대변인을 지냈다.

한나라당은 청와대와 내각 개편 이후 빠르게 전당대회 국면으로 옮아가고 있다. 뒤늦게 친 박근혜계인 허태열 의원이 뛰어들면서 박희태-정몽준 양강 구도에 변화가 일고 있다. 현재까지 한나라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박희태 전 의원과 정몽준·김성조·허태열·박순자·공성진·진영 의원 등 일곱 명이다. 현재까지 당심에서는 박 전 의원이, 민심에서는 정몽준 의원이 앞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여권 지도체제가 꾸려진 이후 당 조직이 중심이 되어 한마음으로 움직이면 지금과는 다른 국면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대통령 또한 보수 그룹의 재결집을 통해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체제 개편은 당내 박근혜 그룹과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자유선진당 세력을 끌어안지 않은 ‘이명박 세력’의 단결에 그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보수 세력의 대동단결’이 얼마나 힘 있게 추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갈수록 조직화하는 반대 세력들의 움직임도 변수다. 무소속 친박 인사들과 친박연대 소속 의원들까지 끌어들이는 거대 여당 한나라당이 국회 활동을 어떻게 하느냐도 민심의 향배와 관련해 주목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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