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고 또 떼는 다단계, 거리 위 인생 피눈물 뺀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06.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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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관 그대로 남긴 채 파업 푼 화물연대, 표준요율제 도입돼도 지켜질지 의문…대기업 물류 자회사도 뒷거래 ‘관행’

ⓒ연합뉴스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간 지 1주일 만에 파업을 풀었다. 화물연대는 이번 파업에 들어가면서 표준요율제 도입과 다단계 주선 개선, 유가보조금 지원, 운송료 인상, 노동기본권 인정 등을 요구했다. 정부는 내년에 표준요율제를 시범 운영하고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표준요율제는 화물연대가 내년 7월 도입을, 정부는 2010년 1월 도입을 주장했었다.

정부는 다단계 주선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6월과 7월에 화주들을 집중 단속하고 12월까지 연구 용역을 맡겨 화물 유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화주와 주선 업체, 운송 업체, 화물 차주 등의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양측이 합의한 내용을 보면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선에서 끝났다. 핵심 쟁점이었던 표준요율제 도입과 다단계 주선 개선은 큰 틀에서 ‘노력하겠다’는 의지만 재확인했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2003년 제1차 파업 당시와 흡사하다. 화물연대의 운송거부투쟁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는 화물연대측 요구를 적극 수용하겠다고 해 투쟁이 마무리되었다. 표준요율제 시행은 그동안 꾸준히 나온 말이다. 표준요율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일단 화주들이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화주들이 백번 양보해서 표준요율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또 다른 편법이 생길 수 있다. 표준요율제를 지키는 것처럼 하면서 이면 계약을 통해 리베이트 등이 오갈 수 있다. 이럴 경우 음성적인 다단계가 형성될 소지가 있다. 결국, 이번에도 파업 뇌관은 제거되지 않고 불씨를 남겨두게 되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되어왔다. 지난 2003년 1차 파업 이후 화물 운송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당시에도 화물연대는 다단계 주선 근절, 지입제 폐지, 경유가 인하 등을 요구했다.

2003년 파업 이후에도 병폐 그대로 둬 또 파업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는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을 모면하는 데 급급해 미봉책으로 위기를 비켜갔다. 그나마 화물연대의 요구에 생색을 낸 것은 ‘등록제 폐지’다. 당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는 영업용 화물차에 대해서는 개별등록을 법으로 금지했다. 화물운송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5대 이상의 차량이 등록된 법인업체에서만 운수 사업이 가능했다. 개인 차주들은 운송회사의 명의(지입)를 빌려서 운수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운송회사들은 명의를 빌려주고 그 대가로 지입료를 받았다. 여기에 별도로 담보와 수수료까지 요구했다.

정부는 이러한 지입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2004년 1월부터 화물차 등록제를 폐지했다. 등록제가 폐지되면서 개인 화물 차주들의 개별 운송 영업이 법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대신 업무개시명령을 도입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운송을 거부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경우 강제력을 동원해 현장 복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등록제 폐지가 지입제의 폐해를 근절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다단계 운송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기형적으로 땜질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별 사업자들이 대폭 늘어나 가뜩이나 공급이 넘쳐나는 화물운송 시장이 더욱 비대해진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반해 물류기반시설인 차고지, 화물터미널, 전용휴게소 등이 조성되지 않거나 턱없이 부족하고, 화물운송정보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화물운송의 효율성은 더욱 떨어졌다. 경기 침체로 인한 물동량 감소와 유가 인상 등에 따른 화물 차주들의 수입은 마이너스 구조로 변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간한 <2007년 화물자동차운송·주선 업체 실태조사>를 보면 개인 사업자들이 법인 운송회사에 지입 형태로 소속되어 있는 비율이 97%에 이르렀다. 이 보고서만 보아도 등록 대수 폐지가 화물 운송의 순기능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물 운송업의 가장 큰 병폐는 다단계 운송 구조다. 현재 우리나라의 화물 운송 구조는 ‘화주→주선 업체→운송회사→화물차’의 단계를 거친다. 여기서 ‘단계’는 단순한 징검다리가 아니다. 화물이 이동하면서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뒷거래가 만연되어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시사저널 황문성


화주 기업의 화물 운송 의뢰는 운송업자보다 주선 사업자에게 의지하고 있다. 자사의 물량 배송 업체를 선정할 때에는 공개 입찰 방식보다는 수의계약이나 친인척, 퇴직 임직원 등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물량을 주고 주선 업체나 운송 업체로부터 일정 수준의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물량을 사이에 두고 뒷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개인 화물 차주들은 화물 정보가 취약하다 보니 주선 업체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대부분 영세 업체들인 화물 운송사들은 하청·재하청을 반복하면서 운송 단계가 더욱 늘어난다. 이렇게 해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꼬리를 문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화물 차주들 사이에서 불만이 적은 편이다. 운송회사가 취급 능력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받아다가 다시 다른 운송회사에 하청을 주면 중간에 다른 주선 업체가 끼어들어 수수료를 챙기는 일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화주와 차주를 중개하는 화물 중개 업체들이 생겨났으나 대부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들 업체에 배차 기능이 없어 책임있는 화물 중개를 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지만 기존에 이루어졌던 화주와 주선·운송 업체들 간의 은밀한 뒷거래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다단계 실태를 단적으로 보면 우선 차량이 없는 사업자(브로커)가 화주 업체와 접촉해 로비 등을 통해 물량을 확보하고, 일정 정도의 수수료를 공제하고 재주선하는 등의 몇 단계를 거치면 실제 차주에게 제공되는 운임은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화주와 차주가 적정한 가격 맞출 수 있어야”

SK내트럭 이임철 부장은 “기존에 관행처럼 이루어진 계약관계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가 어렵고 가격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화주하고 차주가 적정한 가격을 맞출 수 있도록 요율 지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다단계 구조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다. 대형 화주들은 2000년대 초부터 물류 자회사들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삼성전자 로지텍), LG(범한 판토스, 하이로지스틱스), 현대자동차(글로비스), 롯데(롯데로지스틱스) 등 상위 그룹사들은 대부분 물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들은 주선 업체나 다름없다. 자체 직영 차량을 확보하지 않은 채 모기업의 물량을 가지고 물량 장사를 하고 있다. 모기업의 물량을 확보한 후 주선 업체에게 재하청하면서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 구조다. 전체 운송료의 약 7~8%를 수수료로 떼고 있다. 대기업은 자본금 1억원이 예치된 통장과 사무실만 있으면 주선 업체를 설립할 수 있다. 3백만원 정도만 있으면 주선업 면허를 매수할 수도 있다.

대형 화주들은 자사의 임원들이 퇴직할 때 보험 성격의 물량을 떼준다. 해당 임원은 일명 ‘페이퍼 컴퍼니’로 불리는 주선 업체를 차린 후 수수료를 받는다. 화주의 친인척들이 주선 업체를 차린 후 영업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회사들은 대형 화주나 물류자회사들의 관계사가 된다. 이럴 경우 화주에 의해 3단계(화주-물류 자회사-주선회사)가 기본적으로 만들어진다. 실제로 대형 화주들은 생산 공장에서 서울로 화물을 보낼 때 물류자회사를 통해 대형 운송회사 혹은 자회사 관계사와 계약을 한다. 자체 차량을 확보하지 못한 자회사나 관계 회사는 화물차가 부족하면 주선 업체를 통해 다른 운송사에 운송을 의뢰한다.

하청을 받은 다른 운송회사도 화물차가 모자라면 재하청을 주고, 하청, 재하청을 하다보면 5~10%의 수수료가 빠져나간다. 화물 차주가 손에 쥐는 것은 실제 운송료의 70% 정도다. 화물 차주들은 3~4단계의 알선 과정에서 주선 업체가 몇 개 끼어들면 전체 운송비용의 30%가 수수료로 빠진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기업 물류 자회사인 ㅅ사의 관계자는 “물류 자회사는 모기업의 물류 효율을 높이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이 화주와 운송사 중간에서 주선 형태의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물류 사업의 발전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물류 자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주선 업체들이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가족, 전직 임원 출신들이다 보니 계열사 성격이 강하다. 이들 사이에서 운임 조정, 리베이트 제공 등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화주와 택배사, 인터넷쇼핑몰과 택배사의 물량 계약시에도 리베이트(백마진)가 따라붙는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택배비 2천5백원을 받으면 이 중 30%에 달하는 7백원을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화주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대기업 택배사를 비롯한 중소형 규모의 택배사까지 백마진 영업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백마진 영업 경쟁이 심화되어 평균 10%의 리베이트 규모가 40%대까지 치솟고 있다.

화물차 없이 영업하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들은 사실상 내부자 거래를 하고 있다. 모기업의 배송 물량이 80% 이상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 물류 자회사가 정상 거래가 아닌 독과점 거래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문제다. 모기업의 물량은 물론 협력 업체나 하청 업체들의 물량까지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경우 최초 운송비의 20~40%가 대형 화주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공제된다. 운송료가 열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견 택배사인 ㄹ사의 간부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은 화물차가 없는데 운송회사와 계약하고 있다. 그 운송회사는 자기 차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지입을 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가 화물업계 다단계 병폐의 주범이다”라고 말했다.

대기업 ㅅ사는 물류 자회사를 통해 운송사에 주는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운송료가 58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화물연대 경인지부는 지입 차주들이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이 36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ㅅ전자가 건넨 돈의 약 4%가 중간에 사라지는 셈이다. 지입 차주들은 운송 업체들에게 알선 수수료를 주는 데다 운송 업체로부터 받는 어음을 할인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떠안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하도급 결제 관행도 문제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은 수백~수천 대의 차량을 지입받은 후 장부상 결제는 현금을 지급한 것처럼 처리하고 실제로는 운송비 결제를 서너 달 미루면서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유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기업의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등의 창구로 악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ㅎ그룹은 2001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5년간 물류 자회사를 통해 7백53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들통이 났다. 물량 밀어주기 등 부당내부자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제3, 제4의 화물연대 파업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특히 다단계 운송 구조를 개선시키지 않으면 화물 차주들의 운송료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밖에 없다. 물류업계는 다단계 구조를 개선시키는 것이 화주나 차주들이 모두 사는 길이라고 말한다. 화물차의 공급 과잉 상태도 정리해야 한다. 이것은 정부와 화주, 운송·주선회사, 화물 차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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