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신화 버리고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나라가 선다
  • 염재호 (고려대 교수) ()
  • 승인 2008.06.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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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의 민주성 외면해 총체적 위기 자초…국정 철학과 비전 다시 가다듬고 새 출발을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 만에 총체적인 국정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 국민 담화와는 달리 보다 진솔한 이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기자회견 형태로 진행되었다. 당선 직후 청계천에서 열광하던 사람들의 환호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데, 6월10일 청와대 뒷산에서 이순신 동상이 있는 광화문을 바라보며 <아침이슬>을 듣는 이대통령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촛불 집회로 촉발된 국정 운영의 실패는 가히 총체적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도 미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정책 이슈 하나의 잘못으로 정권 퇴진하라는 주장까지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가 급등 및 원자재난 같은 외적 요인뿐 아니라 이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나타난 외환 급등, 물가 대란, 화물연대 및 건설노조의 파업 등 다양한 국정 운영의 난맥상은 보수 아마추어 정부라는 비판을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몇 가지 심각한 위기의 신호를 간과한 것이 총체적 시스템 붕괴까지 오게 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청와대 및 내각 인사에서 나타난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한계에 대한 시그널로 보였다. 실력만 있으면 되었지, 친소관계나 어느 정도 흠이 있으면 어떠냐고 국민의 기준을 무시한 것이 문제였다. 둘째, 총선 과정에서 나타난 친박근혜 진영에 대한 공천 문제도 국민의 심기를 편하게 하지 못했다. 그들을 지지한다기보다는 대통령의 통 큰 리더십을 기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에 흠이 갔다는 것이다. 셋째,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정부가 사전에 정책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어차피 결론은 뻔하다고 성급하게 추진한 것이 문제다.

심각한 위기의 신호 간과해 시스템 붕괴

이것은 정책의 결과나 효율성보다는 정책결정 과정의 민주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간과한 심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뜩이나 대운하 강행 추진에 대한 우려가 내재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한·미 FTA라는 결론을 위해 광우병 위험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향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의 상실을 가져온 것이다.

정책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정책은 사전에 합리적인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은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적 변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끌고 나가면서 추진하는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아주 쉬운 정책도 있지만 다차 방정식에 미분, 적분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도 많다. 또한, 진행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튀어나와 이를 통제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몬(Herbert Simon) 교수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내용적 합리성보다는 절차적 합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공의 신화는 실패의 본질이 된다는 것도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깨달아야 한다. 최근 ‘지식경영’으로 유명해진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郞) 히토츠바시 대학 교수가 약 20여 년 전 일본 방위대학 교수로 있을 때 젊은 조직론 전공 교수들과 쓴 <실패의 본질>이라는 책이 있다. 일본이 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과 연합국과의 전투에서 번번이 패전했는가 하는 것을 조직론의 관점에서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중국 내륙의 전투뿐 아니라 노몽항 전투 등 대부분의 전투에서 마지막에 처절하게 참패한 이유를 그들은 러일 전쟁과 청일 전쟁의 승리 신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러일 전쟁에서 일본 해군은 대규모의 함포를 장착한 군함 때문에 시베리아 끝까지 와서 전투를 한 러시아 군을 패퇴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신화는 일본 해군으로 하여금 세계에서 가장 큰 함포를 장착한 야마토(大和) 군함을 진수시켰고, 이를 통해 미군과의 태평양 전투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견했다. 하지만 이미 레이더 기술을 갖고 있는 미군과 일본의 단순하고 무모한 함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결국, 야마토호는 제대로 전투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침몰되고 말았다. 육군도 사령관들이 청일 전쟁에서 보여준 일본군의 뛰어난 사기와 정신력이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서, 치밀한 전략과 사전 준비보다는 정신력을 강조하고 무모하게 전투에 임해서 결국은 매 전투마다 실패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연합뉴스

정책 특성 다른데 같은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돼

서울시장 재임 중에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해 결국은 성공으로 평가된 청계천 복원 사업, 중앙차로제 실시 등의 신화는 이제 버려야 한다. 국정은 시정보다 훨씬 복잡하고 이해 관계자도 많다. 또한, 청계천의 경우 손해 보는 사람은 제한적이고 이익을 보는 사람은 많은 정책적 특성이 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경우에는 국민 건강의 위험이라는 관점을 강조하게 되면 손해 보는 사람은 전 국민이고 이익을 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미 FTA 등을 통해 받게 되는 국민의 이익은 장기적이고 간접적이다. 정책의 특성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차원에서 접근하면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잘못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스타일의 문제였지 방향이나 목표의 잘못은 아니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민영화 등의 문제까지도 포기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급한 마음에 국민에게 유가 인상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의 조치를 편 것은 현명한 정책 대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에너지 위기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대안이 필요한 시기다. 수조 원의 세금을 감면해 주어도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몇십 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책 효과는 기대한 만큼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기업이나 공공 기관들에서 지난해보다 에너지 절감 효과가 나타나게 될 때 이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형태로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것이 좀더 효율적이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다. 케네디 대통령도 취임 초반에 정책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 피그스만(Bay of Pigs)의 실패는 케네디로서는 정말 뼈아프고 창피한 실패였다. 외교안보 참모들과 군 장성들의 말만 듣고 쿠바 혁명 이후에 그곳에서 망명한 인사들을 훈련시켜 카스트로 정부를 축출하기 위해 쿠바에 침투시켰다가 전원 체포되는 어리석은 군사전략 정책이 초기에 있었다. 외교 정책 결정 사례에서 흔히 인용되는 소위 ‘집단 사고(groupthink)’의 문제였다. CIA는 이들의 훈련이 완벽하고 이들이 자생적인 쿠바 난민으로 구성된 반혁명군이기 때문에 미국의 지원은 은폐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육군이나 해군 장성들도 적극적으로 쿠바침공의 정책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군사작전 과정에서 나타날 문제점에 대해서는 함구했다는 것이다.

결국, 케네디는 이러한 문제를 절실하게 인식하고 다음번에 나타난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 해결에서는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에게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주문하고 참모들과의 논의 과정에서 사사건건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대하는 역할을 맡게 했다. 마침내 쿠바 미사일 위기 13일간의 상황은 핵무기 개발에 대한 미국의 대응으로서 쿠바 침공이라는 강공의 정책이 아니라 소련에서 핵무기 건설 부품이 반입되는 선박을 막는 해안 봉쇄 정책이라는 유연한 정책으로 해결이 되었다. 초기의 실패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정운영 방식에서 잘못된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국정 철학과 비전을 다시 한 번 가다듬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내용을 변경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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