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도 키우고 매출도 늘리고 “군침 도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8.06.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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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인수 앞두고 재벌들 총력전 /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에게는 양보 못해”

지난해 자산 총계 8조3천억원에 순이익 3천2백억원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을 잡기 위해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포스코, 삼성중공업에 이어 그룹 차원에서 인수를 선언한 GS, 한화, 두산, STX 등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놓고 일대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대우해양조선의 인수 가액은 대략 8조원 정도. 이는 국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의 금액이다. 재벌들이 이런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이 회사를 인수하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 조선업계 3위권 업체로 기술 수준이 뛰어나고, 국내 재벌 판도를 뒤바꿀 만큼 덩치(자산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자산 규모로 재계 순위 12위인 한화가 9위로 뛰고, 7위인 GS는 5, 6위인 롯데와 포스코를 앞서게 된다. 6위인 포스코가 인수하면 5위로 오른다.

이 인수 후보군에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현대중공업의 선택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선두를 지키고 있는 조선업체다. 굳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내 2위이자 세계 2위인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것은 위협적이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의 매출액은 15조원대, 삼성이 8조원대, 대우조선해양이 7조원대였다. 1위와 2, 3위의 매출 규모 차이는 크지만 조선업계는 현재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현대중공업과 함께 양강 구도를 이루게 된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자칫 선두 자리를 넘겨줄 수도 있다.

인수 가액 8조원으로 국내 인수ᆞ합병 사상 최대 규모
이런 상황을 현대중공업이 방관할 리 없다. 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면 현대중공업도 가만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공식적으로 대우조선해양에 ‘관심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기업 간 인수전이 가열될 경우 현대중공업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선업 분야 전문가인 신영증권의 조용준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 경우 현대중공업이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후보들 중 포스코가 6조원대의 내부 자금을 확보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이 4조원, 삼성중공업이 2조원가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이 풍부한 이들 회사 중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포스코다. 포스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선언한 후발 주자들과 전략적 제휴를 포함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할 만큼 주도 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포스코에 비해 상대적 열세를 보이고 있는 GS나 한화, 두산 등은 인수 자금을 모으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GS와 한화는 한때 계열 유통사를 매각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한화측은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를 매각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GS도 “기업 인수 자금을 마련한다면서 지금 계열 기업을 팔겠다고 나서면 언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라면서 매각설을 부인했다.

GS나 한화, 두산 등 10위권 안팎의 중견 그룹들은 총수가 직접 나서 인수전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 2005년 LG그룹과 분리된 이후 소규모의 유통 채널을 신설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던 GS는 매우 적극적이다. GS는 그동안 인천정유, 현대오일뱅크, 하이마트 등에 입질을 했다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대한통운 인수도 중도에 포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GS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계열 분리 직후 30여 명의 전담팀을 꾸려 준비해왔다고 밝히고 있을 정도다. 지난 4월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임원 모임에서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되는 사업은 모든 역량을 투입해 꼭 성사시켜야 한다”라며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허회장이 직접 나서 배수진을 친 것이다. GS 관계자는 “후판이나 엔진을 공급하는 포스코, 두산 등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경우 부품 또는 원자재 구매 라인을 수직적으로 계열화하는 데 불과하다. GS는 에너지가 주력 업종인 만큼 대우조선해양을 갖게 되면 영업망 확대나 수주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GSᆞ한화ᆞ두산, 그룹 총수가 직접 지휘 나서
한화도 김승연 회장이 직접 뛰고 있다. 지난 4월 그룹 글로벌 경영전략회의에서 경영기획실장인 금춘수 사장은 “제2 창업이라는 각오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총력을 기울여달라”라는 김회장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어 지난 6월14일 금사장이 기자들을 강원도 속초의 리조트에 불러모아놓고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 현재 8조2천억원인 대우조선해양의 매출액 규모를 2017년 35조원으로 키울 전략을 세워놓았다”라고 밝혔다. 한화의 이런 복안이 실현된다면 대우조선해양이 대한생명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을 이루게 되는 셈이다.

최근 과감한 변신으로 그룹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한 두산그룹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두산은 1996년 OB맥주를 매각하고, 2001년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 2003년 고려산업개발(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 2007년 밥캣 등을 인수해 최근 10여 년 사이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은 대우종합기계다. 대우종합기계와 대우조선해양을 합치면 예전 대우그룹 시절의 대우중공업이다. 이는 중장비와 건설을 같이 하는 현대중공업의 포트폴리오와 비슷하다. 중장비 분야에서 현대중공업에 밀리던 두산은 밥캣을 인수하면서 역전시켰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까지 인수하면 과거의 대우중공업을 재현하며 현대중공업의 아성을 넘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두산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지난 2005년 형제간의 불화로 돌출된 두산산업개발 분식 회계 건으로 인해 박용성 회장 등이 실형 선고를 받은 것이 약점이다. 오너의 윤리적 결함이 지적되면서 이후 두산은 인수·합병 시장에서 배제되었다. 최근 중앙대를 인수해 교육 사업을 하게 된 것은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오너 일가의 범법 사실을 문제 삼고 있고,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뒤 대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해 노사 갈등을 유발한 점 등을 들어 두산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참여를 반대하고 나섰다.
대우조선해양의 우선협상대상자는 늦어도 9월 초까지는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큰 매물을 놓고 벌이는 재벌들의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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