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로 해왔는데도 이렇게 좋은 결말을 맺다니…”
  • 김진령.반도헌 기자 ()
  • 승인 2008.07.0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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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서 ‘독창회’ 갖는 가수 조영남씨 / “음대 출신인 내게 의의 있는 일”

▲ ⓒ시사저널 황문성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씨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노래를 부른다. 대중 가수가 국내 클래식 무대 중 최고의 자리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것은 각별하게 받아들여진다. 조용필씨가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적이 있으나 그의 이번 공연과는 달리 보아야 한다고 클래식 마니아들은 말한다. 조씨는 오는 8월1일 ‘2008 조영남 독창회-40년 만의 귀향’이라는 이름으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그는 이날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Di Provenza il mar)’와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E lucevanle stelle)’ 두 곡의 아리아도 부른다. 서울대 음대 재학 시절 교내 오페라 무대의 주역을 도맡았지만 일찌감치 ‘키 때문에’ 성악가의 길을 포기했다고 한다. 조영남씨를 만나보았다.


원래 테너였나?
테너와 바리톤 두 음역을 다했다. (성악을) 그만둔 이유는 테너, 바리톤 다 하면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잘 안 되어서였다. 테너를 하기에는 고음이 안 나오고 바리톤을 하기에는 저음이 풍부하지 않고. 외모도 주인공이 아니고. 얼굴은 안 나와도 키는 주인공 키가 되야 하는데, 내가 키가….

콘서트홀 공연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 스스로에게 의의가 있다. 그런대로…. 이렇게 엉터리로 해왔는데도 또 이렇게 좋은 결말을 맺는구나.

미술, 그림, 책 열심히 하는데 왜 음반은 안 내나?
음반 안 내도 가수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어서 언제 냈는지 기억이 안난다. (웃음) <화개장터>가 마지막일 것이다. 내 딴에는 (<화개장터>를발표한 것이) 동서화합을 위해서 역사적인 큰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
다. 징그러운 동서 화합, 우리 때는 정말 동서 갈등이 굉장했다.
인간 관계가 넓은 것 같다. 작가 김홍신씨가 가사를 쓴 곡을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부른다고 하던데. 김한길(국회의원)이가 미국에서 막 오고, 나도 미국에서 막 오고, 한길이랑 내가 별볼일없고, 홍신이가 <인간시장>을 쓴 상태에서 함께 만나 거의 삼총사로 지냈다. 당시부터 친했다. 그러다 둘 다 정계로 갔다.

본인도 정계로 나설 법한데.
생리적으로 난 모사를 못한다. 성격이 그렇다. 그들은 천하의 모사꾼들이야, 둘째가라면 서러울 거다. (웃음) 대신 나는 인간 관계가 넓다. 정치는 성향을 드러내는 것인데 나는 성향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두루 사귈 수 있었다.

자유인 기질이 넘치는데 신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의외다.
부모님 양쪽 집안 모두 평양의 유명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나도 태어나면서부터 믿을 수밖에 없었다. 철이 들면서 왜 기독교를 믿어야 되나. 조상 대대로 기독교에 굴복을 하고 살았나. 그런 측면에서 한 번은 공부해야겠다, 내가 알아보리라. 그래서 유학을 갔고, 그 결과물이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책이다.

왜 목사는 되지 않았나.
목자 자격증이 있지만 도저히 못하겠더라.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한테 내가 설교하는데 예쁜 여자가 들어오면 다 까먹고 딴 생각할 게 뻔한데 어떻게 목사를 하냐고 그랬다. 같이 공부했던 30명 중 나 하나만 목사가 안 되었다.

2005년 ‘친일 논란 발언’ 이후 “주위와 어울려 사는 법을 알았다”라고 말했는데. (조씨는 지난 2005년 초 출간된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 선언>을 통해 ‘일본에게 얻어맞은 지 100년이 되었지만 대국이 된 일본에게서 배울 게 많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가 방송 진행에서 물러나는 등 큰 논란을 빚었다.)
내 인생에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 파동이 없었으면 혼자 잘난 척하고 독주하면서 뛰다 끝났을 것이다. 그 파동을 겪으면서 직장 날아가고, 사회로부터 파문당하고.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제 페이스를 찾았다고 할까. 헐떡거리면서 살아오다가.

다른 말로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표현해도 되나?
보수적으로 돌변했다기보다 순리에 굴복한 것이다. 젊은 놈들은 순리를 역으로 가고 싶어 하거나 맞서고 싶어 하는데. 그런 폭풍우가 도저히 맞서서 될 일이 아니지. 맞서는 것보다 굴복하는 것이 편하더라고.

진정한 ‘중년의 세계’가 그때부터 열린 것인가?
그것은 좋게 평가한 것이고. 푸르름이 꺾인 거지, 스스로 낙엽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시사저널 황문성


그 발언이 친일 논란을 일으키리라고 뻔히 알았을 텐데.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내 속을 털어놓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게 내가 편하니까. 감추는 것보다 털어놓는 것이 자유스럽다.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서 털어놓았다. 사회가 만든 한계, 정서를 넘었던 거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해 쌓고 있는 경계를 훌쩍 넘어버린 거지.아무도 얘기를 안 하니까 갑갑했다. 누구든 앙숙 관계에서 벗어나 좀더나은 방향으로 일보 전진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하더라. 나
는 광대니까 내가 한 번 해보자. 미친 척하고 해보자. 총대를 멨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요즘 촛불 시위에 대한 생각은?
왜 없겠나. 좋게 해석한다. 선진국, 더 나음, 진정한 OECD로 가는 길목에서 이런 아픔이라는 것, 한 번은 겪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970년대 이래로 우리 사회는 늘 시위에 시달렸는데.
그게 싫은가. 그게 싫으면 살지를 말아야지. 우리 삶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나와 풍파를 견뎌야 하는 것이 숙명인데. 언제는 안 그랬나. 이렇게 사는 거지.

성격이 긍정적인 것 같다.
굉장히 긍정적이지. 이런 게 싫으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민가라. 거기서 살아봐. 재미없어서 이게 사는 건가, 돼지인가 소인가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너무 평화로우니까. 나는 철들고 50년 가까이 살았는데 늘 이랬다. 조용한 적이 없다.

책도 내고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원하는 것은 다 해보면서 산 것 같다. 아직 못한 게 있나?
하고 싶은 것 거의 다 해봤다. 뭘 더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백남준 선배가 먼저 해놨다. 죽기 바로 직전에, 연애가 한 번 하고 싶다고 대답하셨다. 그거밖에 없잖아?

연애도 끝이 나게 마련이고 다시 시작하면 반복되는 것인데.
그럼 죽을 거 알면서 왜 사나. 뒤가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연애를 못하지. 애 낳으면 어떡할까, 여자가 엉기면 어떡하나 먼저 생각한다, 그럼 연애 못한다. 그냥 그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만나는 것이다.

여자친구나 연애가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살아있으니까 배고프잖아. 그런 거랑 같지.

남자친구와의 우정은 연애와 다른가?
남자친구와의 우정은 비즈니스다. 여자친구와의 만남은 전혀 다른, 오락이기도 하고 가장 평안한 상태라고 본다. 이게 잘 안되니까 기도나 종교로 가는 것이다. (웃음)

(인터뷰는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한강이 동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거실은 화실 겸 노래 연습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널찍한 거실에 나무로 소박하게 짠 탁자가 있었고, 벽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한다는 ‘흑싸리 동산’에 공산명월이 두둥실 떠오른 <호밀밭의 파수꾼> 등의 그림이 포개져있었다.)

이 탁자는 직접 만든 것인가?
가구를 다 내가 만들었다. 집은 좋은데 가구가 후지다. 나는 공간과 어울리라고 만들었는데.

그림 작업은 언제 하나?
놀면 뭐 해, 틈틈이 한다. 내 작업은 여자친구들이 안 놀아주는 시간에 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화투패를 다룬 그림이 많다.
화투보다 더 좋은 테마를 발견 못한 것이지. 나는 화투를 우리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일본에서 온 건데. 아이러니다. 재밌다.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일본 오락 기구는 그렇게 좋아해서 죽은 사람 시체 앞에서도 3박4일 화투를 치고 있다. 내가 바둑판, 소쿠리, 태극기도 주요 소재로 다뤘지만 사람들은 내가 화투만 그린 줄 안다.

그중에서 흑싸리패를 유독 사랑하는 것 같다.
화투 중 제일 괄시받는 것이 흑싸리다. 숫자 4라고 죽음을 떠올리겠지만 화투에서 흑백의 미학이 가장 아름답게 구현된 것이 흑싸리다.

지금 하는 작업은?
(창가에 놓인 10여 개의 작은 화분을 가리키며) 저 화분은 신이 만드는 것이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화투패로 만든 꽃나무를 가리키며) 이것은 신에 도전해서 내가 만들어본 것이다. 화투판의 사계절. 1월부터 12월까지. 어떻게 보면 신한테 엉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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