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사연 녹여낸 ‘뽕짝’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07.0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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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박자> 작사가 김동찬의 노랫말에 담긴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한국전쟁 기념일, KBS 웨딩홀에서 작사가 김동찬씨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한국전쟁 전후 태생들로 보이는 ‘아줌마,아저씨’들이 많이 초청받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태어날때부터 분단과 가난의 설움,눈물의 씨앗을 먹은 그들은 ‘뽕짝’이라고 불렸던 트로트를따라 부르며 슬픔을 삭이고 고난을 달래며 살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뽕짝’을 아직도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나 보다. 김동찬씨는 40년 동안 일해온 노랫말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뽕짝, 우습게 보지 마라’라고 호통치듯 말문을 열었다. 우선 김씨의 ‘뽕짝론’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부른다. 발음부터 고급스럽지 않다. 듣기만 해도 우습고, 어딘가 저속한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나마 좀 낫게 부르는 사람은 ‘성인 가요’라는 표현을 쓴다. 물론 트로트의 주팬층은 40~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삶의 쓴맛, 단맛, 매운맛까지 볼 만큼 다 보고 나름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온 사람들이 ‘뽕짝’의 팬들이다.

시끌벅적한 댄스 가수에 열광하는 10대나, 살랑거리는 반주와 서양식 바이브레이션을 좋아하는 20~30대는 이해할 수 없는, 조금은 투박하고, 꺾고 떨고 튕기는 트로트의 맛을 100% 이해하는 나이는 40대에서 60대다.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뽕짝의 맛’. 맛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안다지 않는가.”

‘툭 터놓고 탁 깐’ 이야기 또한 트로트 같아

하지만 김씨의 추억 속에 천대받았던 트로트는 이미 세대의 벽을 부수었다. 지난해 봄 <복면달호>라는 영화는 트로트에 청춘을 바치는 젊은이들의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루며 트로트의 참맛이 뭔지알렸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 장윤정씨는 <어머나>로 남녀노소 불문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트로트가수가 아니라도 젊은 가수들이 트로트 분위기 나는 노래를 내놓아 또래 팬은 물론 중년층의 감성까지 흔들고 있다.

한국의 10대, 20대들이 트로트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년을 넘어서야 뽕짝을 좋아하게 된다’라는 고정 관념을 깨뜨린 지 오래다. 김씨는 “최근 들어서 비주얼 그룹이나 힙합 뮤지션까지도 너나 할 것 없이 ‘뽕짝’ 음반을 제작하는, 시대 역행적인 시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오래 들어 오고 귀에 익은 음악의 저력이 드러나는 때가 찾아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KBS 효과감독이기도 한 김씨는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써낸 가사들을 들고 가요계 언저리를 맴돌다가, 결국 <네 박자> <봉선화연정> <둥지> <사랑의 이름표> <신토불이> 같은 인기곡들의 작사가로 이름을 얻었다. 이 책은 김씨가 쓴 5백여 곡의 가사들을 정리하면서 그 가사들을 쓰게 된 사연과 노래에 얽힌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다. 김씨의 이야기를 평소 직접 들어 가사보다 더 재미있는 가사 뒷이야기를 혼자만 듣고 흘려보내기 아쉽다고 생각을 한 지인들이 책을 내게 한 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트로트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취지도 한몫했다.

김씨는 “트로트에서는 숨기지 않는다. ‘척’도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자기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한다”라며 책에 밝힌 내용들 또한 ‘툭 터놓고 탁 깐’ 이야기임을 암시했다. 위선적이고 남의 눈치나 보는 답답한 사람들에게 그는 <네 박자> 한 번 더 들어보라고 권한다. ‘내려 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인 것’을 알고 자신있게 솔직하게 살라는 것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그가 풀어놓는 사연들에는 ‘사랑도 있고 이별도있고 눈물도 있다’. 그가 들려주는 40년 세월 이야기들이 ‘한 구절 한 고비 꺾고 넘을 때’ 독자들도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그는 출간 기념회 인사말에서 강조했다. 그렇게 ‘우리네 사연을 담은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에 공감하면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짝”이라며 맞장구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치고 힘겨운 인생살이를 위로하는 서민을 위한 노래처럼 보이는 이 <네박자>를, 김씨는 반항 심리를 담아 썼다고 한다. ‘뽕짝’을 무시하고 ‘뭣좀 있다’며 으스대는 ‘하이클래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잘난 사람도, 지가 못난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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