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될까 ‘이무기‘로 변할까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7.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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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당•청 일체화’ 선언한 박희태 대표 체제 출범 경제 살리기에 성과 없으면 ‘거대 여당’이 짐 될 수도
ⓒ시사저널 임영무


이런 적이 없었다. 과반수가 넘는 거대 여당에다가 대통령 계보로 분류되는 국회의원이 100명이 넘고 지도부 또한 그런 흐름과 발맞춰 구성된 여당이 탄생한 것은 처음이다. 이런 새로운 여당의 탄생은 앞으로 한나라당이 지게 될 책임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일지를 짐작하게 한다. 과거에도 한나라당은 ‘공룡’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제야말로 진정한 ‘공룡’이 되었다.

7월3일 전당대회를 통해 들어선 2년 임기의 ‘박희태 대표’ 체제는 당·청 일체화를 선언했다. ‘당·정 분리’를 명문화한 당헌·당규를 고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박대표의 공언이 현실화하면 당·정·청이 일체화하는, 그야말로 보기 드문 거대 권력이 등장하는 셈이다. 여권은 집권 4개월이 넘은 지금에서야 내부 체제를 정비했다. 순항한다면 이번 ‘박희태 체제’는 2010년 실시되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 그 결과를 평가받게 된다.
집권 초기 개혁을 힘 있게 몰아쳐야 할 청와대가 인사 파동과 촛불 집회를 거치며 추동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 한나라당의 역할이 더욱 주목되고 있다. 이어질 내각 개편과 관련해서도 한나라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그 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권 권력의 중심에 한나라당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복당’ 마무리되면 개헌 빼고 뭐든 할 수 있는 막강 의석 확보

진용을 갖춘 한나라당은 우선 3개월을 끌어온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인사들의 복당 문제를 발빠르게 처리하는 수순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30일 연 제4차 복당심사위원회에서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와 홍사덕 의원을 비롯한 친박연대 의원 아홉 명과 친박 무소속연대 의원 두 명 등 11명에 대한 복당 및 입당 여부를 새 지도부에 맡기기로 결정한 바 있다. 복당심사위원회는 이미 친박연대 박종근·송영선 의원과 친박 무소속연대 이해봉·이인기·김태환 의원 등 다섯 명에 대해서는 복당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현재 1백53석인 한나라당이 1백70석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의석 숫자면 이제 개헌을 빼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어떤 법안이든지 만들고 없앨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국회법으로만 따지면 모든 상임위원회도 다 장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의석 비율로 따져서 야당에 상임위원장을 나눠주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지난 17대 국회 때도 한나라당은 야당이었지만 법사위원장과 재경위원장을 맡았다. 이번에는 처지가 바뀐 민주당이 같은 요구를 하며 한나라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른바 ‘알짜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의도 주변에서는 결국,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부에 미치는 한나라당의 힘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당이 정책을 리드해가겠다. 정책조정위원장을 이미 실력 있는 인물들로 포진시켰다”라고 말했다. 홍대표의 말마따나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중심이 된 정책팀은 각종 정책을 좌우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경제 분야를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당에서 정부에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정부가 잘 듣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박희태 대표가 평소 정치인들이 내각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는 점도 앞으로 정부에 미치는 한나라당의 영향이 더 커질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 박대표는 평소 “정치력을 갖춘 정치인이 입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심의 바다에서 사는 정치인들이 정부에 참여하면 민심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다”라고 말해왔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정치인들의 내각 진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어질 내각 개편에서 정치인들이 진출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폭이 문제인데 ‘총리는 유임시키는 개각’으로 방향이 잡혀가는 분위기다. 한총리는 지금까지의 ‘자원외교 총리’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총리로서 다시 역할을 부여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에 끌려가거나 야당과 공조 못하면 힘 빠질 것

그러나 한편으로 ‘거대 여당’은 짐이기도 하다.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 안에서 ‘공룡이 몽골 기병에게 졌다’는 평가가 나온 적이 있다. 의사 결정 구조가 지체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른바 ‘대세론’ ‘규모론’에 젖어 민심을 살피는 데 소홀히 한 결과 대선에서 졌다는 성찰이었다. 현재의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당대표를 선출하는 토론 과정에서 현재의 난국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당·정·청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등과 관련해 후보들 간에 심도 깊은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성 공격과 계파에 따른 줄 세우기가 도마에 올랐다. 집권 여당 당대표를 뽑는 과정치고는 정국 전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라고 평가했다.

‘박희태 대표’ 체제의 탄생으로 당이 청와대에 끌려가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꾸준히 제기된다. 박대표를 비롯한 홍준표 원내대표,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가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당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 때 국민은 당을 외면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국회의원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힘이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된다. “고분고분한 여당이 아닌 꼿꼿한 여당이 되겠다”라고 말한 박대표의 실천에 한나라당의 미래가 걸려 있다.

한나라당의 힘은 특히 야당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도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 현재 ‘거리의 정치’를 하고 있는 민주당을 국회로 끌어들이고 공존하면서 의회 정치를 활성화할 때 힘이 커질 것이다. 야당들은 벌써부터 단독 개원 등을 거론했던 한나라당을 빗대 “의회 독재를 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통령보다 의회의 독주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거대 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가 국민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당도 체제 정비를 마쳤기 때문에 안팎의 이런 견제 흐름은 더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당 내부를 어떻게 화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가도 한나라당의 힘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며 한나라당 내부의 계파색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박근혜’ 문제는 박대표 개인과의 친소 문제를 넘어선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계파 갈등 문제는 잠복기를 거쳐 2010년 지방 선거 공천 문제 등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당·청 일체화를 통해 권력의 중심에 선 한나라당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얼마나 성과를 거두느냐일 것이다. “살기 힘들다”라고 폭발하는 국민의 아우성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민심의 분노가 한나라당을 향해 쏟아질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인내심이 벌써 바닥을 보이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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