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알고 이명박은 몰랐던 것
  • 김재태 편집부국장 ()
  • 승인 2008.07.0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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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전에 대통령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전공한 한 학자가 한국의 대통령 계보에서 발견되는 일정한 패턴을 연구해 다음 대통령에는 현실주의적인 인물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해 주목된 적이 있었다. 줄곧 이상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온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역작용이 투표 행위에 반영되리라는 근거에서였다. 그 선거에서 실용을 최대 가치로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 그의 예측은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적중한 셈이다.

이상주의자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유일한 업적’이라는 평까지 들을 만큼 많은 곡절을 겪었으나, 그에게는 이대통령을 앞서는 강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타고난 승부사 기질이다. 측근 비리 등으로 위기에 직면했을 때 느닷없이 재신임 카드를 꺼내들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인사에서도 용의주도했다. 노골적으로 자기 인맥 감싸안기에 나서면서 ‘패’를 아주 일찌감치 내보인 이대통령과는 달리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나중에 갖가지 위원회 등을 만들어 공신들을 서서히, 드러나지 않게 챙겼다.

그러나 이른바 ‘언론과의 전쟁’에서는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줄곧 주류 언론과 불화하면서 ‘조·중·동’과 끝없는 갈등을 빚었다. 조·중·동을 앞장서서 공격하면 여론의 힘을 얻어 일정 정도 전과를 올리리라고 보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권력자인 자신이 총대를 멤으로써 오히려 대중에게 권력에 의해 핍박받는 언론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특정한 매체가 자의든 타의든 권력과 맞서는 상황이 되면 상업적으로 손해 볼 것은 없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친절하게도 시위대의 공격에 시달린 조선일보를 방문해 논란을 빚었던 것처럼, 권력과 친근한 모습을 보일 때 언론은 더 궁지에 몰리는 법이다.

국제 유가가 1백50달러를 향해 치닫고 북한 핵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가 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이 시시각각으로 조여오는 격랑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중심은 벌써 두 달이 넘게 뻥 뚫려 있다. 정치가 뚫려 있고, 행정이 뚫려 있고 국민의 마음이 휑하게 뚫려 있다. 수시로 도로가 끊기는 광화문의 풍경은 그 뚫린 중심을 상징하듯 여전히 위태롭다. 마치 중첩된 분노와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원형 탈모의 형상과 같다. 이처럼 단단히 교착된 국면은 그 불가측성 때문에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촛불 시위가 그만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쇠고기 추가 협상에는 만족하지 않는 국민의 중첩된 마음이 그 딜레마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제는 이 불편한 상황을 누군가 나서서 끝내야 한다. 길은 두 갈래다. 국민이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는 마음으로 져주거나, 정부가 과감하게 민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쇠고기 정국보다 더 높고 강고한 것은 ‘불신의 장벽’이다. 그것을 허물고 새롭게 나아가려면, 또한 재협상이 그다지도 어려운 것이라면 정권을 걸고서라도 국민투표와 같은 정공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는 한 방법이다. 때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여주던 승부사 기질이 명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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