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는 ‘우리’가 접수한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07.0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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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 안팎에서 ‘우리금융’ 출신들 약진 두드러져
ⓒ시사저널 임영무


금융계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가 이루어졌다. 안주머니를 차고 있어서 믿을 만한 인사들로 채우는 것이 당연했다. 그 믿을 만한 인사들은 대부분 대통령과 같은 출신 지역이나 학교 사람들로 채워졌다. 공교롭게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모두 상고 출신들이다. 그러다 보니 금융계는 대통령 동문들이 파워 인맥으로 부각되었다.

금융계의 주요 요직은 정권과 친한 금융계의 인사들이 한 자리씩 차지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목포상고,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상고, 이명박 대통령은 동지상고 출신들이 핵심 그룹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는 부산상고 출신 은행권 사람들의 모임인 ‘백은회’가 파워그룹을 형성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백은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대표, 최연종 전 한국은행 부총재, 정형배 전 한국산업은행 조사부장 등도 백은회의 일원이다. 백은회 멤버들은 금융권의 ‘감사’ 자리에도 대거 진출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수희 NH투자증권 감사, 오재찬 서울보증보험 감사, 박철용 신용보증기금 감사, 김영길 제주은행 감사 등이 부산상고 출신들이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의 백은회는 ‘금융계의 청와대’라고 불릴 만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백은회의 ‘꽃 피던 시절’도 일장춘몽이 되었다.

박병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청와대 경제수석 발탁이 상징적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금융계는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항의 동지상고 출신들이 금융계 전성 시대을 맞이한 것이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이대통령의 동지상고 5년 후배다. 장지활 SC제일은행 상무가 동지상고 출신이며, 이휴원 투자은행(IB) 그룹 담당 부행장도 동지상고 출신이다. 동지상고 출신 금융계 인사들은 동문들의 금융계 요직 발탁에 대해 “대통령의 후광이 아니라 능력이 검증된 인사”라고 항변해왔다. 이대통령이 나온 고려대 경영학과출신들도 핵심 대열에 끼어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이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 중 가장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다음으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배정충 삼성생명 부회장, 김남구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등이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들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명박 정권의 금융계 핵심 실세 그룹은 우리금융 출신들이다. 금융계 수장 자리를 우리금융 출신들이 장악하다시피 했다. 금융계에서는 ‘동지상고 위에 우리금융이 있다’라는 말까지 나돈다. 우리금융 출신들의 통칭인 ‘우리회’가 무섭게 금융계 핵심부를 파고들고 있다.

황영기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오는 9월에 출범하는 KB금융지주 회사의 회장으로 내정되었다. 이로써 자산 3백조원을 돌파한 금융권 ‘빅 3’ 중 두 곳을 우리은행 출신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향후 금융권 판도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황 전 회장은 오는 8월25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KB금융지주회사의 회장으로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황 전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과 우리은행장,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경제 살리기 특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낙하산 인사’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민은행 노조는 7월4일 성명을 내고 “황 전 회장이 과거에 삼성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고 각종 불법 비리에 연루되는 등 도덕성과 경영 능력이 의심된다며 취임을 저지하겠다”라고 밝혔다. 황 전 위원장은 이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우리은행이 서울시 금고은행을 맡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교분을 쌓았다고 한다. 한때는 금감위원장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다. 그만큼 신임이 두텁다는 뜻이다.

ⓒ연합뉴스


새 정부 들어서서 최근까지 임명된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전광우 금융위원장,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 박해춘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이종휘 우리은행장, 송기진 광주은행장 등이 모두 우리은행 출신이다.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보좌하는 청와대 경제수석에도 박병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임명되었다. 우리금융 내부에서도 우리금융 산하 최고경영자 4명이 모두 우리금융 출신이다. 이대우 수출입은행 감사도 우리금융 사람이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 1기 전략총괄(CSO) 부회장을,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우리금융에서 재무총괄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 가운데 이팔성 회장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오르면서 박병원 전 회장과 박해춘 행장의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금융계에 나돌고 있다. 이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후배로 오래 인연을 맺어온 인물이다.

경위가 어떻든 박 전 회장의 청와대 경제수석 발탁은 우리은행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희망이다. 경제수석 자리는 ‘경제 대통령’을 내세우는 이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힘의 크기가 다르다. 앞으로 우리금융의 민영화와 금융 산업 재편 과정에 힘을 보태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우리은행, 현 정권 업고 ‘1등 은행’ 탈환 자신

지난 6월에 취임한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이종휘 행장이 취임하자 우리은행 내에서는 내부 출신 인사의 발탁을 반기고 있다. 두 사람은 콤비를 이뤄 ‘3년 내 자산 규모 2배 달성’ ‘우리나라 1등 은행’ 등을 기치로 내걸었다. 여러 가지 정황상 현 정권 하에서 ‘1등 은행’ 탈환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 이면에는 우리은행 출신들이 국내의 경제계와 금융계의 요직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금융계는 지금 우리금융의 천하가 된 셈이다. 우리금융은 지난 2001년 금융지주회사로 출범한 지 8년여 만에 금융계 최고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본래 금융지주회사는 대형화·겸업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되었지만 내부에서 적잖은 파열음을 겪었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뀌면서 은행이 설립된 후 최고의 ‘꽃 피는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금융 출신들이 금융계의 주요 직책을 맡은 것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회사 내에서도 이번 기회에 최고 은행으로 만들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노력하는 만큼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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