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한결같이, 회장 일이 내 일”
  • 이 은 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07.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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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 김영대 회장 수석비서 전성희씨, ‘국내 최고령 최장수 비서’ 성공 비결 책으로 펴내

1960년대에 약학대학을 나오고 4개 국어에 능통했던 여성이 자신이 모시는 회장의 구두를 직접 닦고 찾아오는 손님들의 커피를 손수 타준다고 하면 믿겠는가. 또, 비서이면서 회사를 대표해 외국에 나가 합작 기업 설립을 성공시켰다면 믿겠는가.

대성 김영대 회장의 수석비서인 전성희씨(65)는 하찮은 일부터 회사의 명운을 좌우하는 일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국내 최고령이자 최장수 비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6월30일,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녀가 비서로서 한평생을 보내며 성공한 비결을 담은 <성공하는 CEO 뒤엔 명품 비서가 있다>라는 책을 펴냈다.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전씨를 지난 7월3일 서울 인사동 대성 본사 응접실에서 만났다.

전씨는 보자마자 기자의 손에 들린 우산을 챙겨 받아 복도 한 구석에 펼쳐놓았다. 괜찮다고 하자 “가실 때 젖은 우산 가져가는 것보다 낫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책에서 그토록 강조한 비서로서의 ‘센스’가 느껴졌다. 그녀는 회장이 연필이 필요하다고 하면 지우개까지 챙겨주는 남다른 센스를 발휘했다고 한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재원인 전씨가 대접받기는커녕 남을 대접해야 하는 비서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그녀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10년간 미국에서 보석 공장에 다녔다. 같이 일한 사람 중에 경기여고-서울대 법대 나온 여자도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남편이 박사 학위만 따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꾹 참았다. 1979년에 드디어 남편이 서울대 교수로 채용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입국했지만 시간 강사였다. 결국, 우아한 교수 부인의 꿈은 날아가고 다시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남편인 고 심재룡 서울대 전 철학과 교수가 원망스럽지 않았냐고 묻자 전씨는 “내 팔자다. 오히려 남편 덕분에 하와이도 다녀왔지 않았냐”라며 활짝 웃었다. 6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안을 가지게 된 비결이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씨가 전공을 살려 세브란스 병원에 들어가려던 찰나 남편이 대성산업 상무 비서직을 권했다. 남편의 대학 동기이자 당시 상무였던 김영대 회장이 기혼자 비서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전화 받고 심부름이나 하는 젊고 예쁜 비서가 아닌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는 파트너이자 동료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 김회장의 생각도 모른 채 며칠 도와주면서 돈이나 벌자는 생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곧 재미가 붙었다.

입사 후 10년째에는 직접 독일 회사와 합작기업 협상 나서

“내가 내놓은 차를 마시며 흡족해하는 김회장의 표정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입사할 당시 회장님이 프랑스 회사와 제휴를 추진 중이었는데 같이 불어를 배우자고 했다. 공부에 목말라 있었던 데다 경쟁하며 공부하니 그것마저 재미있었다.”

전씨가 꼼꼼한 성격을 발휘해 김회장의 잦은 실수를 막아주자 이들 사이에는 금방 두터운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김회장과 30년을 함께했다.

전씨에 대한 김회장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입사한 지 10년이 되던 1989년에는 대성산업을 대표해 독일 헨켈 사와의 합작 기업 설립 협상자로 그녀를 보냈다. 석 달간의 시장조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덕분에 대기업을 물리치고 협상을 성공시켰다. 국내 최고 화학 전문 기업인 대성C&S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전씨에게 ‘창사 멤버’라는 칭호가 돌아왔다. 남편의 도움이 컸다.

전씨는 “서울대 교수였던 남편 인맥을 총동원해서 헨켈 사가 요구하는 것을 다 해주었다. 보고서도 남편이 다 읽어보고 잘못된 것은 고쳐줬다.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이번에 낸 책도 봐주면서 고쳐줬을 텐데…”라며 4년 전 작고한 남편을 회상했다.

김회장의 기분에 맞춰 차를 내놓고 밤이든 주말이든 전화만 하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간다는 전씨의 이야기를 책에서 접했다. 그래서 “피곤하지 않냐”라는 우문을 던졌다. 전씨는 “내 일과 회장 일을 따로따로 구분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김회장과 목표가 같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내 일이 곧 김회장 일이다. 피곤하기는커녕 즐겁다”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시사저널 박은숙

후배 비서들에게 매뉴얼북 만들어준 셈

그런 그녀에게 김회장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자존심을 밟았을 때”라는 짧지만 의미심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전씨는 “1982년도에 김회장이 쎌틱 사와 제휴하는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불어 공부를 해두라고 했다. 4개월간 죽어라 공부했는데 어느 날 불어를 잘하는 젊고 예쁜 여자를 고용하더니 그 친구를 보내더라. 미안하다는 말도 없어 서운했다”라며 속내를 내비쳤다. 전씨는 아직 은퇴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정년 퇴직할 65세이지만 회사도, 본인도 그만둘 마음이 없다. 2000년부터 전씨 밑에 비서를 1명 더 고용했지만 김회장이 은퇴하는 날까지 자신이 끝까지 모실 생각이다. 전씨는 “후배 비서는 김회장이 즐겨쓰는 전화번호를 컴퓨터로 정리해놓고 나는 수첩에 적어뒀다. 김회장이 급히 찾을 때 컴퓨터보다 수첩이 훨씬 빠르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하더라도 아날로그가 더 유용한 것이 있다. 주위 분들이 우스갯소리로 명예 회장비서까지 하라고 말한다. 그것까지는 못하더라도 김회장과 함께 아름다운 은퇴를 맞고 싶다”라고 말했다.

책 출판과 함께 전씨에게 전문 비서 교육 강의가 줄을 잇고 있다고 했다. 당장 이번 주 토요일인 7월12일, 한 그룹에서 진행하는 비서전문컨설팅 강의에 나간다. 인하공전 비서과에서도 강의 요청이 왔지만 올해는 너무 바빠서 내년으로 미루었다. 모교인 이화여대에 최초로 비서학과가 생긴 만큼 모교에 교수로 가고 싶지 않냐고 묻자 “제가 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이번에 책을 낸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도 비서 매뉴얼북을 만들어 후배 비서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30년 동안 승진 한 번 없이 비서 일만 한 것이 억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대성 김민홍 고문이 불쑥 끼어들어 말한다. 그는 “남자였으면 계열사 사장 정도는 했다. 여자라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현실을 꼬집었다. 전씨는 “김회장이 상무에서 회장직까지 오르면서 승진하는 동안 나도 같이 승진한 셈이다. 평생 한 우물만 팠기 때문에 이런 각별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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