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열지 않고도 치료 끝낼 수 있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7.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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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경색 전문의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운동 열심히 하고 음식 조절하는 것이 예방법”

ⓒ시사저널 박은숙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대표적인 인물로 북한 김일성 주석과 개그맨 김형곤씨를 꼽을 수 있다. 이들처럼 평소 건강을 각별히 챙기고 있음에도 한 순간에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은 임금이 쓰고 있는 관처럼 생겼다고 해서 관상동맥이라고 부른다. 관상동맥이 어떤 이유로든 막혀 심장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것이 심근경색이다.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심장은 마비 증세를 보인다. 촌각을 다투어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지 않을 경우 생명을 잃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심근경색의 주범은 동맥경화다. 낡은 수도관처럼 혈관에 콜레스테롤과 같은 노폐물이 쌓여 내부가 좁아진다. 이때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는 협심증이 생기는데 방치하면 부풀어오른 노폐물이 어느 순간 파열하면서 혈관을 막아 심근경색을 일으킨다.

치료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혈관을 넓혀주는 스텐트(stent) 시술을 받으면 된다.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스텐트 시술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박교수는 최근 관상동맥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인 ‘레프트 메인(left main)’도 스텐트 시술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 의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레프트 메인은 외과적 수술 외에 다른 치료법은 금기로 여길 만큼 치료가 어려운 부위였다. 이런 금기를 깨고 심근경색 치료의 새로운 기원을 열어가고 있는 박교수를 만나 구체적인 치료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레프트 메인이란 얼마나 중요한 부위인가?

펌프질을 해서 혈액을 온몸에 보내려면 근육덩어리인 심장도 다른 장기처럼 혈액이 필요하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는 크게 왼쪽과 오른쪽 혈관이 있는데, 왼쪽 혈관은 나뭇가지처럼 다시 두 가닥으로 나뉘어 있다. 혈관 입구에서 두 가닥으로 갈라지는 부위까지를 레프트 메인(좌관동맥 주간부)이라고 한다. 왼쪽 혈관은 심장의 3분의 2에 혈액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므로 어떤 이유로든 레프트 메인이 막히면 심장 대부분이 괴사하고 만다. 돌연사의 주요 원인이다.

레프트 메인이 막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반 혈관처럼 동맥경화로 막힌다. 콜레스테롤 등 노폐물이 혈관에 쌓이면서 점점 혈관이 좁아진다. 노폐물이 쌓인 것을 죽상반이라고 하는데, 죽상반이 어느 순간 파열되면서 혈관을 꽉 틀어막는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피가 응고되어 딱지가 생기는 것처럼 혈관에도 죽상반이 파열되면 피가 응고된다. 이런 이유로 혈액을 심장에 공급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 심근경색이다. 심근경색이 레프트 메인에서 발생하면 다른 곳에 심근경색이 생긴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치명적이다. 환자를 빨리 병원으로 후송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 외에 별도리가 없다. 노폐물이 쌓이는 데 20~30년이 걸리지만 노폐물이 터져 혈관을 막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에 사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심근경색을 치료하는 최선의 방법은 스텐트 시술이다. 스텐트는 작은 금속 그물망이다. 볼펜에 들어 있는 용수철처럼 생겼다. 허벅지에 있는 대동맥을 통해 심장의 관상동맥까지 스텐트를 삽입하고 부풀려서 동맥경화로 좁아진 혈관을 넓힌다. 그런데 이 시술을 받은 환자 중 20~30%에서 혈관이 다시 좁아지는 재발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약물을 도포한 스텐트다. 최근 스텐트 시술 이후 재발률이 5%대로 떨어졌다.

아직도 이 시술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부위가 바로 레프트 메인이다. 이 부위의 치료법은 외과적 수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지난 수년간 레프트 메인에 심근경색이 생긴 1천명이 넘는 환자에게 스텐트 시술을 했다. 그 결과를 외과적 수술법과 비교했다. 스텐트 시술로 치료받은 환자의 3년 생존율은 92.1%였다. 가슴을 여는 개심 수술의 생존율이 92.2%인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지난 4월 박교수의 연구 논문이 세계 최고 권위 의학저널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게재되었다. 보통 세계 최고의 과학 전문지라고 하면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떠올리지만 의학자들은 <NEJM>을 더 중시한다. 지난 4월까지 국내의 연구 결과가 <NEJM>에 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의료계는 박교수의 연구 결과를 “노벨의학상을 받을 만큼 값진 쾌거”라고 평가하고 있다.)

▲ 노폐물이 쌓여 좁아진 혈관을 스텐트로 넓히는 그림.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이점이 있나?

외과적 수술을 하려면 전신 마취는 물론 가슴을 절개해야 한다. 수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술 후 퇴원하기까지 한 달 정도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텐트 시술을 하면 전신마취와 가슴 절개를 하지 않는다. 허벅지에서 동맥으로 스텐트 관을 삽입해 치료하므로 수술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 정도로 짧다. 시술 후 2~3일 만에 퇴원할 수 있다.

다른 것은 다 접어두고라도 가슴을 여는 것과 그렇지 않은 방법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자명해진다. 특히 심근경색을 치료하는 환자들이 주로 노인인데, 이들의 40%는 심혈관 수술을 받은 후 어떤 식으로든 ‘인지 기능(cognitive function)’에 손상을 입는다. 한마디로 정신적 장애를 겪게 되는데 심하면 치매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치료 효과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수술을 받은 환자 삶의 질도 고려해야 한다.

모든 레프트 메인의 심근경색을 스텐트 시술로 치료할 수 있나?

레프트 메인 중에서도 여러 곳이나 애매한 곳에 심근경색이 생기면 여전히 외과적 수술이 최우선 치료법이다. 그러나 레프트 메인에 심근경색이 생긴 환자의 70~80%는 스텐트 시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본다. 세계 심장 전문의들은 현재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레프트 메인 스텐트 시술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상당 부분 진행되어 있으며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의학 교과서에서 레프트 메인의 심근경색에 대한 치료법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텐트 시술을 미리 해서 심근경색을 예방할 수는 없나?

그 점이 심혈관질환 학계의 최대 관심사다. 현재는 심근경색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스텐트 시술)이 나와 있는 셈이다. 이제는 심근경색을 예방하는 쪽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어떤 상태의 죽상반이 언제 파열할 것인가를 밝혀내면 심근경색을 예방할 수 있다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파열할 조짐이 있는 죽상반을 발견해 스텐트 시술을 하면 최소한 급사는 막을 수 있다. 아직까지 뾰족한 성과는 없지만 세계적인 심장 전문의들이 앞다투어 죽상반 파열을 미리 알아내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심근경색의 증상은 무엇인가?

나이가 들면 피부가 늙는 것처럼 혈관도 노후된다. 20세가 지나면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내부에 노폐물이 쌓이는 동맥경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30~40대면 누구나 동맥경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특별한 예방법이 없다. 그저 운동 열심히 하고 음식 조절을 잘하라는 얘기 밖에 해줄 것이 없다.

평상시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등산을 하거나 지하철역 계단을 오를 때 가슴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죽음이 연상될 정도로 강한 흉통을 느낀다. 잠시 쉬면 이 통증은 사라진다. 이것이 협심증이다. 우리가 운동을 하면 심장은 평소보다 더 많은 혈액이 필요하다. 평소보다 많게는 10배 이상의 혈액이 필요하다. 혈액이 더 공급되어야 함에도 관상동맥에 동맥경화가 생겨 심장에 혈액 부족 현상이 생긴 것이다.

협심증을 방치하면 혈관 내부의 노폐물덩어리인 죽상반이 파열해서 혈관을 막는다. 이것이 심근경색이다. 이때도 통증을 동반한다. 이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20분 정도 이어진다. 이때는 촌각을 다투어 병원으로 가야 한다. 심근경색이 나타날 경우 10명 중 4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병원으로 오는 6명 중에서도 2명은 시간이 지체되었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

얼마나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심근경색으로 흉통이 느껴지면 최소한 1시간 내에 병원으로 가야 한다. 일부 환자는 청심환이나 심장 약을 먹고 버티려고 한다. 이런 행동은 구급법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더욱 위급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

빨리 병원으로 가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물론 12시간이 지난 환자도 살아나는 경우가 있지만 정상적인 삶을 기대할 수는 없다.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누구?

1979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6~1988년까지 연세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의 연구 강사로 재직했다. 1989~1993년 서울아산병원 내과학교실 조교수로 근무했고 1992~1993년까지 미국 베일러 의대에서 심장질환을 연구했다. 1995부터 현재까지 서울아산병원에 몸담고 있다. 2000~2002년까지 대한순환기학회 학술이사를 지냈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 심혈관연구재단 이사장과 대한순환기학회 이사직을 겸직하고 있다. 2005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유럽심장학회의 심장 중재 시술 분야에서 ‘올해의 의사’로 선정되었다. <알기 쉬운 심장병 119>(2003년) 등 여러 권의 저서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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