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말할 걸 그랬지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8.07.1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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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내 사랑하나?”…“나는 당신의 조강지처야”

1970년대의 한국은 베트남 전쟁이 화두였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 젊은이들을 배에 태워 거의 날마다 베트남으로 보냈고, 국민은 배에 탄 맹호부대 용사들에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살아서 돌아오라고 흔들었지만 죽어서 돌아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라는 노래를 불렀다. ‘남의 전쟁’을 위한 베트남 전쟁은 아직도 우리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사랑받지 못했지만 남편 찾아 월남으로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지옥의 묵시록> <햄버거 힐> <하얀 전쟁> 등 명작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는 이들 영화처럼 전쟁 자체를 고발하지 않고 있다. 한 여자의 개인사에서 가족사로, 다시 전쟁이라는 세계사로 외연을 확대시키면서 사람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감독은 <왕의 남자> 이후 음악에 많은 관심을 두면서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을 스크린에 옮겼는데 <님은 먼 곳에>도 예외는 아니다. 197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 김추자의 노래가 시종일관 화면을 넘나들면서 중년 관객들을 향수에 빠지게 한다.

시골 마을에서 시집살이를 하는 순이(수애 분)는 시어머니의 닦달로 한 달에 한 번씩 군대에 간 3대 독자 남편 박상길(엄태웅 분)에게 면회를 간다. 아내 몰래 애인을 둔 상길은 순이가 탐탁지 않고 “니, 내 사랑하나?” 하고 묻는다. 고참에게 시달리던 상길은 애인의 절교 선언에 사고를 치고 월남 파병을 선택한다. 면회를 간 순이는 말도 없이 떠난 남편의 소식을 듣고 시어머니에게 버림받는다.

아들을 찾아 월남으로 가겠다는 시어머니 대신 나선 순이는 위문공연단 ‘화이 낫 밴드’를 운영하는 정만(정진영 분)을 만나 드디어 배에 오른다. 관객들은 상길에게 사랑받지도 못하는 그녀가 왜 남편을 찾으러 사지로 뛰어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설정이라고 해도 억지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순이가 왜 월남으로 향했는지 완벽하게 해소된다. 그래서 죽음을 무릅쓰고 월남에 갔구나. 영화에는 김추자의 노래 <늦기 전에>를 시작으로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이어지는데 한국군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이 역을 수애가 잘 소화해내고 있다. 사기꾼에 가까운 밴드 마스터 정만 역 정진영의 천연덕스런 연기도 일품이고 노래와 전쟁이 버무려진 영화는 유쾌하게 흘러간다. 상영 시간이 두 시간이 넘지만 지루하지 않다. 죽을 때까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이기도 하다. 15세 이상 관람이 가능하니 아이들 데리고 베트남 전쟁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 7월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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