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피랍’ 1년 ’ 샘물’ 은 어디로 흘렀나
  • 김회권.김지혜 기자 ()
  • 승인 2008.07.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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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랍자ᆞ샘물교회의 근황과 해외 선교 활동의 변화 추적
ⓒ연합뉴스 ⓒ시사저널 박은숙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해 샘물교회 신도 23명이 납치된 지 1년이 지났다. 21명은 살아서 이 땅을 밟았지만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는 주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살아 돌아온 21명은 지난 1년을 침묵하며 지냈다. 피랍자들과 샘물교회에게는 고통스런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샘물교회와 교인들에게 쏟아진 비난은 엄청났다.

샘물교회는 지난 7월13일부터 42일간 ‘하나님과의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새벽 기도회를 열고 있다. 7월13일은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 날이고, 42일은 그들이 피랍된 기간이다. 샘물교회의 한 목사는 “새벽 기도회의 취지가 남다르다. 앞으로 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회 내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사건과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여전히 그때 사건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샘물교회의 한 여신도는 “모든 신자들이 아프가니스탄 사태 자체를 언급하기 꺼려한다. 언론에 잘못 실리면 샘물교회는 물론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1명의 귀환자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복귀했다. 샘물교회의 한 교인은 “피랍자들 모두 교회를 잘 다니고 있다.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은 아니지만 그들끼리 따로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지는 않는다”라고 그들의 근황을 설명했다. 이들은 돌아온 직후 안양과 속초 등지에서 약 3주에걸쳐 치료를 받았다.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피랍자 대표였던 유경식씨(56)는 샘물교회 강도사로 활동하면서 최근 계간지 <본질과 현상> 여름호에 ‘아프가니스탄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아픔’이라는 제목으로 피랍 과정과 사건들, 이후의 감회 등을 자세히 서술했다. 유씨는 이 글에서 “왜 멀쩡한 사람들을 환자 취급 하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중에야 우리가 심각한 수준의 ‘외상성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유씨의 경우 불면증을 겪었고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고 한다. 샘물교회의 한 교인은 “다른 피랍자들의 경우에는 우울증이나 집중력 저하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전했다. 지금은 피랍자들 모두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어 3개월에 한 번 정도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다.

피랍자 개개인의 생활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석방을 양보해 화제가 되었던 이지영씨(37)는 다시 대학에 들어가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성은(25)·이영경(23) 씨 등도 다니던 대학에 복학했다. 함께 납치되었던 송병우(34)·임현주(33) 씨는 지난 1월에 샘물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박은조 목사는 “21명 모두 잘 적응하고 있고 교회에도 잘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피랍자들, 외상성 스트레스 증후군 앓아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아프가니스탄 납치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망자에 대한 안타까움도 커지고 있다. 샘물교회에서는 42일간의 새벽기도회와 함께 7월25일부터 27일까지 순교 1주년 기념 예배가 열린다. 고(故)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를 기리는 행사다. 샘물교회는 평소 장애인 관련 활동을 많이 했던 심씨를 기리기 위해서 장애인 복지시설인 ‘심성민 홈스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 머물 식구들은 이미 들어온 상태로 8월3일에 개소식을 갖는다. 샘물교회의 이헌주 목사는 심씨와 함께 장애인 관련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이목사는 “고인이 된 심씨의 뜻을 이어받아 샘물교회와 말아톤 복지재단이 함께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을 만들었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행사들을 두고 배목사와 심씨, 양측 유족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분당 샘물교회의 부목사였던 배목사의 유족들은 외부와의 연락을 삼간 채 여전히 샘물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배목사의 부친인 배호중씨는 제주 영락교회의 장로로 7월25일의 순교 1주년 기념 예배에서 연단에 올라 인사말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심성민씨의 부친 심진표 경남도의원은 여전히 교회에 대해서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특히 심성민씨의 보상 문제가 지지부진한 것을 두고 “이 고통을 교회가 모르는 척하는 것이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심씨 부친의 주장에 대해 샘물교회측은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박은조 목사는 “우리에게 법적인 책임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하겠는데, 그런 것은 아니어서 보상금이 아니라 위로금 차원에서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한 액수를 제시했다. 그런데 부친께서 성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샘물교회 교인들의 피랍을 계기로 기독교의 선교 활동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관심사가 되었다. 샘물교회의 선교는 더욱 주목받았다. 샘물교회는 지난 4월 네팔에 선교단을 파견한 것이 뒤늦게 드러나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당시 네팔은 ‘여행자제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샘물교회측은 “장기 선교사들의 자녀를 돌보는 사람이 필요해 나간 것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샘물교회는 올해에도 여름 방학을 이용한 단기 선교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처럼 위험한 곳이 아니라 안전한 나라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곧 철회되었다. 샘물교회의 관계자는“목사와 장로들이 회의를 갖고 논의한 결과, 올해에는 단기 선교를 자중하자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다.

샘물교회 신도의 아프가니스탄 납치 사건은 선교 활동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일으켰다. 한국 교회의 해외 선교 활동가는 장기 선교사를 기준으로 1979년 93명에서 2007년에는 1만5천명으로 급증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선교 대국이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질적인 성장을 등한시했다는 교계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피랍자의 1년, 샘물교회의 1년, 그리고 기독교계의 1년은 한국 교회가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고난의 행군이 되었던 것일까.

ⓒ연합뉴스

위험 지역 단기 선교 자제…못 말리는 선교 열정은 여전

서양에서는 1년 미만의 선교를 단기 선교라고 말하는 반면 한국에서의 단기 선교는 보통 2주 내외 정도 머무르는 선교 활동을 통칭한다. 엄밀히 말하면 선교 여행이다. 한기총의 한 관계자는 “단기 선교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현지에서는 단기 선교사들이 왔다간 뒤의 악영향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짧은 체류 기간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와 맞추어 소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선교연구원측의 말처럼 “위험한 곳은 자제하는 중이다”라는 것이 긍정적인 현상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공격적인 선교도 계속되고 있다. 금지 국가나 위험 지역의 선교사들 숫자를 문의하기 위해 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 문의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장기 선교사들의 숫자는 알고 있으나 말할 수 없다”였다. 한기총의 한 관계자도 “아직도 아랍권에는 장기 선교사가 있으며 샘물교회 사건 이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사건이 보여준 한국 교회의 무모한 선교 열정은 또다시 무모한 도전으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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