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방편적인 고유가 대책은 해법 아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7.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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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정부 정책에 쓴소리…“한국 경제, 당분간 위기 지속될 것”
ⓒ시사저널 박은숙

”유가가 치솟으면서 정부가 최근 ‘컨틴전시 플랜’(위기관리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임시 방편일 뿐이다. 고유가 상황에 맞는 상시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정부의 유가 대책에 쓴소리를 내뱉었다. 현원장은 현재의 국제 유가 상승이 수요와 공급, 정치적인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여기에 투기 세력까지 뒤엉켜 생겨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고유가 문제에 장기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정부가 미봉책에 매달리고 있다고 질책했다.

“일각에서는 투기 세력이 잠잠해지면 유가가 진정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다. 중국, 인도 등 신흥 시장의 고도 성장으로 인해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산유국과 소비국 간의 이견으로 인해 공급 능력 확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진국의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도 미미해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기 세력 빠져도 고유가 상황 지속될 것”

현원장은 얼마 전 석유 전문가들이 모인 국제 회의에 다녀왔는데 이 자리에서 석유의 치밀한 수요·공급 관리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류와는 동떨어지게 정부는 현재 오르락내리락하는 유가의 동향에 허둥대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중요한 것은 유가가 얼마일 때 무슨 대책을 시행하느냐가 아니다. 고유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는 상황 분석을 정확히 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에 따라 만성적인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 근본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현원장이 지적하는 것은 현재 고유가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기 침체, 원·달러 환율 급등, GDP 성장률 하락, 물가 상승세 확대, 신규 취업률 감소 등 어느 한 가지 좋은 것이 없다. 특히 그는 내수를 중심으로 생산량이 급격히 둔화되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제조업의 생산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들어 소비가 줄어들면서 재고량이 늘고 있다. 2분기에는 재고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고량 증가가 다시 생산량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기대 심리는 최근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통상적으로 90선에서 오르내리던 향후 경기전망지수가 최근 60대 아래로 하락했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취업자 증가세도 지난해 28만명에서 올해 20만명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신규 고용창출 인력이 몇 명인지 기억하는가. 연간 60만명이다. 임기 내 3백만명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평균 취업 인구가 2천3백만~2천4백만명이다. 이 중 1%인 23만~24만명만 늘려도 그런대로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용 인력을 새로 60만명 늘린다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공약이다. 말 그대로 선거용에 불과하다.” 그는 취업률 하락의 원인으로 서비스 부문의 저조를 들고 있다. 제조업의 고용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걷는 상황에서 고용 창출 효과는 서비스 부문에서 기대해야 하지만 정부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업을 적극 육성해야 고용 창출의 길이 열린다. 교육, 의료, 법률 등을 유망한 서비스산업으로 인식하고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정부는 이익 집단의 이해에 걸려 거의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도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경기 침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올 하반기를 넘어 내년까지도 경기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나 기업도 이에 맞춰 대비를 해야 한다.”

이렇듯 최근 들어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상황이 너무 나쁘게 돌아간다. 현원장은 “무엇 하나 손쉬운 해법을 찾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선진국 경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시적인 경기 부양은 안 된다. 1, 2차 오일쇼크 당시 일부 선진국이 경기 부양을 시도했다가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 금융 유동성 위기설도 나오는데 세밀한 분석을 통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회 불안 요소를 미리 제거할 필요도 있다.”

현원장은 우리 경제가 불안한 국면에 있어도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성장 잠재력 강화 방안으로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서비스산업과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한·미 FTA 비준, 법질서 확립 등을 제시했다. 이 중에서도 공기업 민영화를 우선적인 요소로 꼽았다.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민간에게 넘겨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진흥’이나 ‘관리공단’이 들어가는 이른바 비영리 기업의 경우는 민간에 매각하는 대신 재정비를 서둘러 경영 합리화를 해나가야 한다.”

그는 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로 ‘법질서 준수’를 강조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2007 골드만삭스 성장 환경 순위’를 제시했다. 요컨대 골드만삭스는 매년 주요 나라들을 상대로 성장 가능성을 점검해 순위를 매기고 있다. 평가 항목은 ▲거시경제 안정성(인플레이션, 재정 적자) ▲거시경제 환경(투자율, 무역 의존도) ▲기술력(PC, 인터넷 보급) ▲인적 자본(진학률, 기대 수명) ▲정치 환경(정치 안전, 반 부패, 법 준수) 등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8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4위), 홍콩(15위), 일본(17위)에 뒤지고 있다.

법질서만 준수해도 GDP 1% 상승 효과 있어

“사실 한국은 기술력이나 거시경제 등에서 세계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 있다. 마지막 항목인 정치 환경 부문에서 크게 뒤처지면서 전체 순위가 떨어졌다. 이 부문만 끌어올린다면 GDP를 1% 정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원장은 정치 환경을 이른바 ‘사회자본(Social Capital)’으로 표현했다. 그는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못지않거나 일부는 이미 선진국을 능가했지만 사회자본에서는 미흡한 요소가 많다고 했다.

“최근 외국 손님이 찾아왔다. 버스 카드로 지하철과 버스, 심지어 택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국내 환경에 적지 않은 감명을 받고 돌아갔다. 그러나 ‘사회자본’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법이나 룰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이 엉망이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다. 촛불 집회 당시 그들이 개원도 하지 않고 거리로 나온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사회나 주주총회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가 법정에 서서 회사 문제로 사법적인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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