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들의 ‘항복’이냐, 반전이냐
  •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 ()
  • 승인 2008.07.2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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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증시, ‘미국발 금융 위기’까지 덮쳐 휘청…국내 금융기관들도 거액 물려
ⓒ로이터

코스피지수 1천5백선이 방어선이 될 것인가.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최근 주식시장에 또다시 미국발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추가 침체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투자 심리가 항복(Capitulation)의 단계로까지 떨어지고 있다.

서브 프라임 위기는 미국에서 발생했지만 지난 1년 동안 한국 증시가 그 후유증을 앓았다. 1년 전 발생한 베어스턴스 관련 헤지펀드의 파산으로 서브 프라임 위기가 확산된다는 신호가 나타나자 지난해 7월 말 이후 주가가 급락했는데, 당시에도 주가는 빠르게 반전했다. 지난 1월이나 3월에 주가가 1천5백선 근처에 도달했을 때에도 지난해 8월의 급락기만큼은 아니어도 강력한 반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가가 펀더멘털에 비해서 과도하게 하락하고 있는데도 싼값에 선투자하겠다는 움직임도 없고 거래량 증가도 찾아볼 수 없다. 전형적인 ‘항복’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여기에 이번에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아닌 프라임 모기지 시장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이로 인해 ‘대세 상승’을 믿고 외국인 매도에도 굴하지 않고 국내 증시에 장기 투자를 하겠다는 내국인 투자자들이 적립식 장기 투자에 대한 의구심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장기 투자 자금의 유입이 없으면 주가의 장기 상승도 없다. 무기력하게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1천5백선 근처의 주가 등락이 중요한 것도 바로 장기 투자 자금이 항복했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 유동성 위기에 빠져

문제는 이런 형국에 미국발 금융 위기가 재점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산 3백20억 달러의 미국 내 2위의 모기지 업체 인디맥이 지난 7월11일 자금이 바닥나 영업 중단 조치를 받았다. 이어 13일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재무부가 파산을 막기 위해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긴급 구제책을 내놓았다.

미국의 양대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래디맥의 부실은 그동안 서브 프라임에 국한되었던 부실 문제가 프라임으로 전이되는 신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유동성 위기는 ‘제2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볼 수 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우리나라의 주택금융공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기관이다. 부동산을 담보로 주택저당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빌려주고, 개인의 주택을 담보로 노후 생활자금을 연금처럼 지급해준다. 12조 달러 규모인 미국 모기지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하고 있으며, 신규 대출의 80%가량을 제공하고 있다.

부실 대출 증가로 ‘AAA’ 등급으로 평가받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면서 미국 S&P500 지수의 금융업종 지수는 6.1% 포인트나 폭락하기도 했다.

불똥은 우리나라로도 튀었다. 금융계는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 가운데 3백70억~4백억 달러가량을 이들 기관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 외환보유액의 15%에 해당되는 규모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발행한 채권에 투자한 규모가 5천5백억원에 이르고, 국민연금도 1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 금융기관들도 미국 대형 투자은행들이 그랬던 것처럼 매입한 부실 채권의 가격 하락에 따른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부실 채권에 물린 국내 금융기관이 고백성사를 해야만 하는 시간이 온다면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고통의 시간이 올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미국 모기지 업체의 부실이 계속 확산된다면 FRB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고 미국의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자극해 달러 가치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 달러 가치 하락은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유가 상승을 다시 촉발할 수 있다. 이 경우 국제 유가의 추가 상승과 함께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금리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금리 상승으로 인해 국내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소비가 둔화되는 등 금융시장이 악순환 고리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처지에 몰릴 수 있다. 국내 증시도 이러한 현실에서는 주가가 많이 하락했음에도 강력한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금융기관 실적 발표가 또 다른 뇌관 될 수도

미국 금융시장에서 양대 모기지 업체의 부실 위험은 보루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동안 서브 프라임 부실로 인해서 투자은행이나 상업은행에서 약화된 주택금융 기능을 양대 모기지 업체가 일정 부분 보완해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체 모기지 자산 중 48% 정도를 이들이 떠맡고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투자자들이 양대 모기지 업체의 부실 위험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미국의 양대 모기지 업체의 파산 위험은 점차 안정화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책 당국이 비록 세금을 동원한 대책이라는 비난은 있지만 적극적인 구제책을 내놓으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들 양대 모기지 업체의 파산 위험도 낮아지고 있다.

물론 양대 모기지 업체에 대한 구제책이 나와도 다가올 금융기관의 실적 발표가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남는다. 그러나 미국 금융기관의 실적 손실은 2분기에도 불가피하지만 지난 1분기 대비로 보면 절반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어 새로운 충격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미국의 금융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얻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제 유가 상승과 인플레 이슈가 미국의 금융 위기 논란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희석되고 있다.

문제는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미 1천5백선에서 항복이 나타나고 있는데, 미국의 금융 위기로 인한 항복 심리였다면 이제 반전 심리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반전의 강도는 강하지 않을 수 있다.

종목별로 본다면 반전 가능성이 큰 영역은 수출주다. 이들 종목은 주가가 1천5백선으로 하락하면서 지난해 10월 이후의 상승분을 대부분 완벽하게 반납했다. 하반기 실적이 다소 둔화될 여지가 있다고 해도 연간으로 보면 반도체 종목은 31%, 자동차 종목은 36%의 이익 개선이 예상된다. 때문에 지난해 10월과 유사한 수준으로 회귀한 현 주가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내수주에는 인플레 압력이 완화될 4분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인플레 압력이 여전히 내재해 있다는 점이 내수주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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